유아기에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에 노출되면 조기에 생식기가 발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알려진 뒤 부모들의 관심이 커졌다.

비스페놀A는 젖병,음료수 캔 내벽,의료기기 등 투명한 재질의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널리 쓰이는 가소제로 몸 속에 들어가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의 하나다.

어린이가 조기 성숙하면 중학생을 전후한 나이에 성장 발육이 정체되고 생식기가 불완전하게 발달해 불임이 초래될 수 있다.

한양대 생명과학과 계명찬 교수팀이 지난달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아기에 해당하는 암컷 생쥐를 비스페놀A에 노출시켰더니 난소에 물혹이 생기고 배란이 일어나지 않으며 향후 난소암이 될 가능성이 높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생겼다.

수컷 생쥐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 발달 관련 호르몬의 변화가 심해 정자형성 장애 등 남성 불임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유해한 환경호르몬의 영향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후대에도 미치기 때문에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환경호르몬에 덜 노출되려면 각종 플라스틱 제품,특히 1회용 제품 사용을 줄이는 게 기본이다.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또는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첨가되는 가소제는 생식기와 내분비계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가장 흔하고 자주 접하는 PVC(폴리염화비닐) 재질은 가장 많은 가소제를 방출할 수 있다. PVC는 가열해서 부드럽게 만든 후 틀에 넣어 식히기만 하면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어 장난감,저가 저장용기,포장용 필름,건축 자재 등에 흔히 사용된다.

PVC는 가소제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내열 온도가 플라스틱 중 가장 낮아 조금만 뜨거운 음식을 담아도 다른 플라스틱에 비해 다량의 가소제가 우러나오므로 고온의 음식을 담아 먹거나 입으로 빨면 좋지 않다.

특히 식품 포장용으로 사용하는 PVC 랩이나 착색제와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해 만든 검정 비닐봉지에 음식을 장기간 보관했다가 먹는 것은 더욱 해로울 수 있다. 대형 음식점에서 김치 저장용기나 젓갈 통으로 많이 쓰는 고무 대야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들어가는 착색제에는 독성이 있는 6가 크롬,카드뮴,납이 섞여 있어 암이나 신경계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세제 비누 샴푸를 친환경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비누와 샴푸에는 환경 호르몬인 '노닐페놀'이 함유된 화학 계면활성제에 방부제,화학 색소 등이 다량 첨가돼 있다. 건강과 환경을 위한다면 가급적 이런 성분의 함량이 낮은 비누나 유기농 비누를 골라 사용하는 게 좋다.

머리 감은 후 쓰는 린스 대신 식초물에 헹구면 두피의 자극을 줄이면서 건강한 머릿결로 가꿀 수 있다. 일부 저급 주방세제는 환경호르몬 물질인 '알킬페놀류'가 발견되기도 하므로 주의한다. 또한 고성능 세척제에 들어 있는 '제올라이트'와 '형광표백제'는 체내에 들어가면 발암 성분이 되므로 설거지 및 세탁이나 청소 등을 할 때 사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화학 성분이 피부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쌀뜨물은 무공해 천연세제로 설거지에 쓰면 기름 성분을 깨끗하게 닦아 낼 뿐 아니라 손의 피부 자극도 한층 줄일 수 있다.

흔히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음료수 병으로 많이 쓰이는 폴리에틸렌프탈레이트(PET) 등은 가소제가 거의 들어가지 않으며 특히 PET는 인체에 흡수될 가능성이 없는 산화티타늄을 딱딱하게 굳히는 성형제로 쓰기 때문에 무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는 소량이라도 가소제를 전혀 넣지 않는 플라스틱은 없다. 특히 주스 같은 산성 액체 또는 고염분 액체를 담거나, 플라스틱 필름을 성형해 용기를 만드는 공정이 원활하지 않거나, 용기에 내용물을 담기 전 세척을 소홀히하면 더 많은 환경 호르몬이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 아울러 최신 가소제인 헥사몰과 최근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은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실험실적 연구 결과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오상용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산업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