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요즘 우리네 삶의 주변에선 '하이브리드'의 확산이 눈부신 듯하다.

잡종이란 뜻의 하이브리드란 용어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생물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개념이다.

이 하이브리드가 동물이나 식물 간의 잡종 교배를 넘어,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확대돼가고 있음에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실제로 문화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바 클래식과 팝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크로스 오버 뮤직,가야금으로 연주하는 17세기 바로크 시대 작곡가 파헬벨의 작품 캐논(Cannon),전통적 고급예술 장르인 오페라를 스펙터클한 대중적 쇼로 전환시킨 '운동장 오페라',독일 안무가 파니 파우쉬가 창시한 무용과 연극의 결합 탄츠테아터(Tanztheater),예술ㆍ상업ㆍ다큐멘터리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현대 사진,일식에 중식을 가미한 퓨전 레스토랑 등 하이브리드의 실례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락과 정보,교육과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예술적 속성까지 아우르는 TV의 하이브리드성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고,인터넷 세계 속에서 진화 중인 하이브리드성은 가히 눈부신 수준이라 일컬어 손색이 없다.

오늘의 인터넷은 정보 수집을 위한 매체로서의 기능은 기본이요,메일 송수신 및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폭증의 통로이자,음악 영화 게임 등 각종 오락을 소비하는 놀이터일 뿐만 아니라,상품 판매와 구매가 교차하는 프로슈머들의 활동 공간이자,독자이면서 작가인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키기까지 했다.

결국 동양과 서양,전통과 현대의 문화들이 시공을 초월해 한데 섞이고,클래식과 브레이크 댄스의 만남이나,영화와 CG(컴퓨터 그래픽)의 결합처럼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면서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조합과 혼성을 이뤄내는 상상력이야말로 오늘의 하이브리드 문화를 작동시키는 근원적 에너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이질적 요소의 결합을 가능케 한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그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임은 물론이다.

이에 더해 초국적 기업의 확산을 통해 야기된 세계화 및 이주(migration)의 확산은 타 지역과의 문화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이질적 문화의 접촉을 통해 흡수된 타문화는 자국문화와 어우러져 새로운 변종을 낳음으로써,특정 문화의 고유한 성격을 모호하게 만드는 문화적 잡종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교류와 접목,그리고 공유를 통해 사회와 문화의 하이브리드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 확실시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일상 속에도 하이브리드성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일 게다.

최근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촉발된 촛불시위의 축제화는 이의 흥미로운 예가 될 것이요,지리멸렬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이벤트를 연출해냄으로써 삶의 활력을 추구하는 10대의 생활양식 또한 하이브리드성의 파생물로 보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특별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발장단을 맞추면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인터넷 창을 여러 개 동시에 띄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10대는,존재 양식의 하이브리드성을 온몸으로 구현하기 시작한 첫 세대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획일성과 일사불란함을 특징으로 하던 삶의 양식을 뛰어 넘어 다양성의 공존 및 혼합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삶의 양식과 온몸으로 부딪치게 된 이들 10대가,정체성의 혼란 및 진정성의 교란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이브리드에 담긴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요,이들 속에서 발현 중인 잠재력을 새로운 창조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하이브리드의 가능성을 적극 모색하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