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줄세우기로 변질…평가취지 실종"

"공교육 정상화위해 학교간 실력차 파악필요"

교육당국이 10년 전 폐지했던 초·중학교의 '일제고사'를 '학력진단평가시험'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활시킨 것을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은 "일제고사는 말만 진단평가일 뿐 성적 줄 세우기"라며 비교육적 측면에 대해 우려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일부 전교조 교사는 학생 줄 세우기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일제고사 답안지 회수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당수 교육 전문가들은 일제고사를 통해 지역·학교 간 학력 격차를 파악하고, 평가 결과를 교수 및 학습법 개발에 활용한다면 나쁠 게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를 잘만 운영하면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평가 시험은 10년 전까지 일제고사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다가 과외 촉발, 점수에 따른 줄 세우기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폐지됐다.

하지만 학생들의 초등학교 6년간 학업성취도 자료가 중학교에 전혀 올라오지 않는 데다 신입생의 학력 수준을 파악하는 일조차 금기시할 정도로 평등 지상주의가 만연해온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는 학력진단평가 실시가 과연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육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 반대 측,"학생과 학교 서열화로 과열 경쟁 및 사교육 유발"

일제고사 부활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시·도교육청이 학생 개인별 성적을 지역 단위 백분율 석차로 제공키로 함으로써 학습 부진 학생 측정을 위한 평가를 성적 줄 세우기의 일제고사로 변질시켰다고 지적한다.

꼴찌를 배려하기 위한 진단평가의 취지가 완전히 실종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교육열을 감안할 때 학생과 학교의 서열화가 시작되면 초등학교 때부터 점수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이 늘어날 게 너무도 뻔하다고 강조한다.

진단 방법과 의도,과정 등을 놓고 보면 시험으로 아이들 수준을 정확히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다는 교육청의 논리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평가에 근거한 수준별 학습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만큼 뒤처진 학생을 구제한다는 명분도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제고사 부활은 학생들을 무한 경쟁의 입시 지옥으로 몰아넣고,사교육비 부담을 늘리는 등 엄청난 부작용을 몰고올 것이므로 교육당국은 이번 진단평가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찬성 측,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경쟁력 강화 기초자료로 활용"

이에 대해 찬성 쪽에서는 "평가는 교육의 중요한 한 축인 만큼 학력진단평가는 당연한 일이며, 지난 10년간 이러한 진단평가가 발붙이지 못한 게 오히려 의아스럽다"고 주장한다.

특히 "신입생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학력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이번 학력진단평가는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경쟁력 강화의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며 크게 반기고 있다.

이들은 또 이번 진단평가는 중앙 정부가 아니라 일선학교 교육을 책임지는 16개 시·도 교육감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그만큼 학교 현장에선 진단평가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방증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교육감들이 과거 정부의 평등주의 교육정책의 폐해인 학력 저하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진단평가제를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 등 대부분 교육청은 개인 취득 원점수, 학교 평균, 시·도 평균, 시·도 내 석차 백분율 등을 제공함으로써 일선 학교에서는 평준화를 보완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준별 수업을 실시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한다.

⊙ 성적은 철저히 분석 평가하되 공개 수준은 신중히 결정해야

물론 개인별 점수와 석차 표기로 인한 부작용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1~2점을 강조해 전국 단위 서열로 한 줄로 세우는 식의 성적 공개를 할 경우 어린 학생들의 시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사교육을 조장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율과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글로벌 시대에 학생과 학교에 대한 평가를 계속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평가자료는 해당 학생과 학교의 교육목표 달성 수준이 어느 정도이며 기준에서 얼마나 부족한가를 파악하는 데 기본이 되는 까닭이다.

게다가 평준화제도가 학생의 학력을 떨어뜨리고 인재의 조기 발굴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개인의 원점수와 전국 석차를 포함해 성적을 어떤 형태로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번 평가가 개인과 학교의 학업 성취도 향상을 위한 것이라면 성적은 철저히 평가하고 분석하되 공개 수준은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43년 만에 전국 학력 테스트를 부활시키면서도 학교 서열화와 과잉 경쟁을 피하기 위해 전체적인 학력 경향을 보여주는 결과만 공표한 일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진단평가 결과가 다양한 학력 증진 대책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전국 학력진단평가=전국 또는 도 단위로 같은 학년이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로 각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으로,흔히 일제고사로 불린다.

시·도 교육청은 2월 들어 중학교 신입생과 초등학교 4~6학년생을 대상으로 각각 학력진단평가를 실시했다.

특정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평가시험은 10년 전까지 일제고사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다가 과외 촉발, 점수에 따른 줄 세우기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폐지된 바 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과 공동으로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비교연구를 말하며, 원명은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이다.

의무교육 종료 시점에 있는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의 성취 수준을 평가해 각국 교육 성과를 비교 점검하는 것으로, 2001년에 처음으로 발표됐다.

한국 학생의 과학 성적은 2000년 1위에서 2006년 11위로 급락했다.


--------------------------------------------------------

<연합뉴스 3월11일자 보도>

11일 교육부 주관으로 전국의 초등학교 4~6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진단평가가 실시됐다.

전국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식 진단평가는 1996년 이후 대부분 사라져 그동안 전국에서 1%만 표집해 치렀지만 10년 만인 올해 다시 전체 학생으로 확대됐다.

평가시험은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5과목을 대상으로 4지선다형으로 출제되며 영어 과목은 듣기평가까지 포함된다.

특히 이번에 영어 과목이 초등학교 진단평가에 처음으로 포함돼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려는 새정부의 교육 방침에 따라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각 시·도교육청 주관으로 실시된 중학교 1학년 진단평가와 달리 개인 성적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일부 교육단체는 이번 진단평가에 대해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지난주 실시된 진단평가와 함께 학교와 학생의 서열화를 부추기고 사교육을 과열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