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앞으로는 휴대폰의 메뉴 구조와 같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가능한 한 단순하고 편리하게 설계하는 게 디자이너의 주요 업무가 될 것입니다."

미국 최대 디자인회사인 티그(TEAGUE)의 존 버렛 대표(42)는 '인터페이스 디자인' 전도사다.방한 중인 버렛 대표는 28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노키아가 모토로라에 비해 시장에서의 실적이 우수하다면 그건 휴대폰의 사용 구조가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라며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만드는 것은 예쁜 겉모양이 아니라 편리한 사용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자신이 디자인한 파나소닉의 비행기용 PMP를 예로 들었다."비행기에서 10시간을 보내야 하는 8세 어린이와 80세 노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핵심 키워드는 미려한 외관이 아니라 게임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원하는 콘텐츠를 바로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메뉴 구조"라는 것.

영국에서 태어난 버렛 대표는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프랑스 엑사티스컨셉트디자인에서 일하던 중 1996년 필립스에 스카우트돼 거장 디자이너로 꼽히는 스테파노 마르자노와 함께 1990년대 필립스 가전 제품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버렛 대표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엄청나게 커질 것으로 본다"며 "인터페이스 디자인팀은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은 부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대표 자리에 오른 그가 가장 먼저 한 일도 바로 '인터페이스 디자인팀'을 신설하는 것이었다.그는 현재 12명인 이 팀을 앞으로 큰 폭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엔지니어나 리서치 전문가 등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의 참여는 제한될 겁니다.필요할 때는 이들을 포함시킬 수 있지만,제가 원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 제조업체의 디자인관에 대해서도 촌평을 내놨다."HP는 마치 40대 후반 중년층과 같은 일관성 있는 통합적 디자인을 원하는 데 방한 중 찾았던 팬텍은 '스타 제품(대박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격적인 디자인도 거리낌없이 시도하겠다는 태도여서 십대 소년처럼 느껴지더군요."

버렛 대표는 "자신만의 디자인 스타일을 찾아가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1926년 설립된 티그엔 240여명의 디자이너가 활약 중이라고.지난해 선보인 보잉의 차세대 여객기 '787 드림라이너'가 티그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