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 권호걸의 통합논술 뽀개기 ⑨
관심문제에서 착각하기 쉬운 유형을 살피자


1. 들어가며

우선 지면을 시작하기 앞서 지난번에 광고했던 '카페' 개설에 관한 답신을 해준 학생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부족한 지면의 글을 보고도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아직 카페 개설 여부는 확정짓지 않았지만 답변을 준 학생들에게는 어떤 모양이든 보답을 할 생각이다.

카페 맴버 모집은 3월 말까지 받을 생각이다.

그러니 생각이 있는 학생은 이메일을 보내 신청하기 바란다.

이미 광고했듯이 개방형 카페가 아닌 폐쇄형 카페로 갈 생각이니 가입을 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신청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오늘은 관점 문제를 다뤄볼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관점 문제에서 착각하기 쉬운 유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에 따른 대비를 알아보자.

2. 관점 문제를 풀 때 꼭 참고해야 할 사항

긴급조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을 영구화하는 과정에서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유신헌법을 근거로 내려진 초 법적 규제 장치이다.

직업이 없던 정 아무개씨는 1974년 1월 동네 이웃들에게 "삼선 개헌과 긴급조치 등은 다 새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 현 정권이 무너지는 징조로 보인다"고 말했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정씨는 대법원에서 7년형이 확정됐다.

<한양대 모의 논술고사> (2007년 5월)

2007년 1월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재판한 법관 492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2007월 2월 6일 △△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X=판사의 명예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명예·인격권은 국민이 누리는 권리이지 국가기관의 권리가 아니다.

판사는 판결문에 이름을 남기고 무한책임을 지게 돼 있다.

반헌법적이고 반인권적인 판결이 내려짐으로 인하여 훼손된 것은 그 판결을 받은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할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최후의 보루로서 국가기관인 판사가 누가 봐도 위헌적인 처벌조항을 그대로 적용한 이상 그들의 명예나 인격권 침해를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감이 있다.

▲K=긴급조치 시행 초기에 판사들 중에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지방으로 좌천되고 옷을 벗은 경우도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판사 명단만 공개한 것은 또 다른 여론 재판이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판결문이 공개되어 있다는 것과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 판결만을 수집하여 관련 판사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공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30년 전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다.

내가 먼 고대에 살았다면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칼로 찔렀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지금의 잣대로 볼 수 없다.

그 때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사람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이번 명단 공개로 역사의 비겁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Z=원칙적으로 판결문은 공개하게 되어 있다.

판결문을 공개하면 법관 명단도 알려진다.

긴급조치 위반 사건은 우리의 사법 역사에서 아픈 상처다.

아픈 상처를 덮어두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판결문과 법관 명단 공개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K=과거사위는 철저하게 비정치적이어야 한다.

특정 대선 주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고 조용하게 진실 규명을 했어야 했다.

그래야 정치적으로 휘말리지 않고 권위가 설 수 있다.

법원과 검찰을 장악하려는 의도도 있지 않은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Y=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정치적 악용의 소지가 있다하더라도 이는 엄밀히 볼 때 부작용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화해와 사회 통합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목적을 위하여는 어느 정도 감수하여야 할 것이고, 적절한 방법으로 방지책을 강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X=국가기관에서 하는 모든 일이 사실 대선 주자들의 대선 레이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일 수 있다.

그럼 대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유신 청산은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K=검사 명단 공개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무한정 확장되면 의도하지 않은 인적청산이 이뤄지게된다.

화해로 가려면 인적청산은 참아야한다.

복수는 복수를낳는다.

사실은 인적 청산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Y=인적 청산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과거를 밝혀내 새로운 통합을 하자는 것이다.

[논제 1] 다음 제시문은 긴급조치 위반 사건 관련 판사의 명단 공개와 관련된 글이다.

명단 공개를 둘러싼 견해 대립의 두 가지 쟁점을 제시하시오.

그리고, 그 쟁점들에 대하여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어떤 견해를 취하고 있는지를 서술하시오.(450~500자)

위 문제를 풀 때, 많은 학생들이 '명단 공개를 둘러싼 찬성, 반대'를 하나의 쟁점으로 다루는 답안을 작성했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문제를 보면 '명단 공개를 둘러싼 견해 대립의 두 가지 쟁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명단 공개를 둘러싼 대립'은 쟁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명단 공개 여부를 놓고 대립하는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을 밝히는 것이 이 문제에서 요구하는 사안이다.

따라서 답안은 두 대립된 의견이 어디서 충돌하는지를 밝혀주면 되는 문제이다.

보통 이런 문제를 풀 때는 제시문의 요점을 써놓고 생각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가 어떤 강의를 들을 때, 같은 내용과 같은 선생님일지라도 판서가 병행되는 강의는 훨씬 이해하기가 쉬운 걸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정확한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아마도 '에너지'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써놓고 생각하는 것과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써놓고 생각하면 일단 판서한 내용에 대해서는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판서가 없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내용까지도 머릿속에서 구상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데 쏟는 에너지가 분산된다.

이 설명이 어느 정도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논술 문제를 풀 때 늘 이 방식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 써보자.

각 사람이 말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X=판사는 판결문에 무한책임을 지며,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명예나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K=시대마다 기준이 변하기 때문에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Z=역사 속에 아픈 상처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판결문과 명단 공개를 해야 한다.

K=과거사위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

과거사위의 활동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이어야 한다.

Y=정치적 의도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

사회통합이라는 큰 가치를 위해서라도 명단은 공개해야 한다.

X=유신 청산은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K=인적 청산의 의도가 있는지 걱정된다.

Y=인적 청산이 아니다.새로운 통합을 위한 과정이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각 사람들의 주장이 충돌하는 지점을 살펴보는 것이 그냥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명료하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수 있다.

주장을 쟁점별로 묶어보면 ①, ②와 나머지로 묶을 수 있다.

①, ②가 충돌하는 지점은 판사가 판결문에 무한책임을 지는지 여부이다.

흔히 학원 측의 예시답안들을 보면 명예나 인격권의 주체 여부에 대한 입장 차이를 쟁점으로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보다는 판사의 판결문에 대한 책임의 한계라는 부분이 더욱 명확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①에서는 판사의 판결문에 대한 책임 범위와 기본권의 주체로서 자격 여부, 두 가지를 다루고 있지만, ②에서는 시대 상황을 고려한 판단 기준 변화의 필요성, 한 가지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상을 고려해 볼 때, 판결문에 대해 판사가 지는 책임의 한계를 쟁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 번째 쟁점은 나머지 ③, ④, ⑤, ⑥, ⑦, ⑧에서 도출할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시중 참고서를 보면 정치적 의도의 여부를 쟁점으로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⑤번을 보면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치적 의도를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 있든 없든 개의치 않겠다는 뉘앙스다.

사회통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에 반해 K는 과거사 청산 의도의 순수성을 문제 삼으면서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차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명단 공개 의도의 순수성'에 대한 입장차라고 말할 수 있다.이상이 두 가지 논점이다.

[논술 길잡이] 권호걸의 통합논술 뽀개기 ⑨
그런데 여기까지 읽은 학생들은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이 문제와 관점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가?

관점 문제도 이와 같다.

가령 하나의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르게 설명하는 두 개의 입장이 있다고 해보자.

보통 이런 경우 관점을 말하라고 하면 서로 다른 입장이 관점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길거리를 가는데 정우성과 이병헌이 걸어오고 있다.

그것을 본 A와 B의 대화이다.

A=와 두 사람 다 너무 멋있다.

B=정우성은 그런데, 난 이병헌 멋있는 거 모르겠다.

A=왜 이병헌이 어때서?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저만 하면 멋있는 거 아냐?

B=얼굴은 괜찮은데, 키가 너무 작아서 별로야.

A=난 좋기만 하더라.

키가 좀 작으면 어때?

A와 B 관점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는 두 사람 다 멋있다는 입장이고, B는 한 사람만 멋있다고 말하는 것이 관점의 차이인가?

흔히 이렇게 답하기 쉽다.

그러나 이건 결론의 차이일 뿐이지, 관점의 차이는 아니다.

이렇게 결론이 나뉘게 된 이유를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두 사람의 의견이 나뉘게 되는 이유는, 어떤 사람을 멋있다고 평가할 때 신장이라는 요소를 고려하는 정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시문의 관점의 차이를 말하라고 하면 단순히 A와 B의 주장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이 나오게 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오늘 문제는 이와 같은 면에서 관점 문제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위 제시문에 드러난 관점의 차이는 어떤 사람을 멋있다고 평가할 때, A는 얼굴 생김새를 중요시하고, 신장이라는 요소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에 반해, B는 얼굴 생김새뿐만 아니라 신장이라는 요소도 중요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점을 따질 때 이면을 살펴보는 이유는, 이렇게 해야 관점을 가지고 다른 부분에 응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의 문제만 봐도 단순히 멋있는지의 여부만을 다뤄 준다면, 이 관점을 가지고 다른 영역을 설명하라는 문제가 나올 때 응용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그 이면적인 이유를 생각해서 관점을 말한다면 응용하기가 훨씬 쉽다.

가령 위의 관점을 조금 더 일반화시키면 A는 어느 한 부분이 괜찮으면 다른 부분은 좀 부실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으로 말할 수 있고, B는 모든 부분이 골고루 충족되어야 좋다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예에서 말하는 내용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설명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정도면 무슨 뜻인지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위의 문제에 관해 한양대 측에서 발표한 예시답안을 공개하고자 한다.

필자와는 조금 다른 논리를 펴고 있다.

여러분들이 필자의 설명을 참고로 대학 측의 예시답안을 이해했으면 한다.

왜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첫째 쟁점에 대하여, 찬성론자는 판결문은 공개되는 것이고, 판결과 관련하여 판사는 국가기관이며, 긴급조치의 위헌성이 명백하다는 이유로, 명단 공개로 판사들의 명예가 침해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는 지금의 잣대로 30년 전의 상황을 판단할 수 없고,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의 명단을 일률적으로 공개한 것은 여론재판이며, 판사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쟁점과 관련하여, 찬성론자는 명단 공개는 화해와 사회통합이라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한 것으로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는 명단 공개는 정치적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거나, 법원·검찰의 인적 청산을 노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 마치며

문제를 하나 내줄 테니 풀어보기 바란다.

다음의 제시문은 피터 싱어가 쓴 글이다.

논리적으로 굉장히 치밀한 글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논리적 문제점(최소한 두 개)도 가지고 있는 글이다.

각자 분석해 보길 바란다.

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메일을 보내 달라.

정답 여부를 가르쳐 주겠다.

권호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통합논술연구위원 mega@ed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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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을 반대하는 핵심적 논변은 형식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전제 : 죄 없는 인간을 죽이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둘째 전제 : 인간의 태아는 죄 없는 인간이다.

-결론 : 그래서 인간의 태아를 죽이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일반적인 대응은 이러한 논변의 두 번째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태아가 인간인가, 아닌가라는 문제와 연결되며, 임신 중절에 관한 논의는 종종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되느냐에 대한 논의로 간주되기도 한다.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되느냐는 문제에서는 보수주의적 입장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보수주의자들은 수정란과 아이 간의 연속성을 지적하며, 자유주의자들에게 이러한 점진적 과정 중의 어떤 단계가 도덕적으로 의미있는 구분 선인지를 지적하라고 요구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만약 그러한 선이 없다면, 우리는 초기 수정란의 위치를 아이의 위치로 올리거나, 아이의 위치를수정란의 위치로 내려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아이들이 부모의 요청에 따라 살해되는 것을 허락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일관성 있게 견지할 수 있는 입장은 지금 우리가 아이를 보호하듯이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았던 첫 번째 종류의 대응은, 이 논변의 첫째 전제는 받아들이되 둘째 전제는 거부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종류의 대응은, 어떤 전제도 거부하지 않지만 이 전제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대응 중의 어느 것도 논변의 첫째 전제를 문제시 하지 않고 있다.

인간 생명의 신성함이라는 교리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보수주의적인 논변의 첫째 전제는 그것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우리의 특별한 가치 부여에 근거하고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인간’이라는 말이 두 가지의 다른 개념, 즉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족의 구성원과 인격체라는 이 두 개념에 발을 디디고 있음을 보았다.

이 말이 이렇게 일단 분리되면, 보수주의자들의 첫 째 전제의 취약성은 명백해진다.

만약 ‘인간’이 ‘인격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게 되면, 태아가 인간이라는 두 번째 전제가 거짓임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태아를 합리적이라거나 자의식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족의 구성원’만을 의미한다고 보면, 이때는 보수주의자들의 태아의 생명에 대한 옹호가 도덕성을 결하고 있는 특징에 기초를 두게 되고, 그래서 첫째 전제가 거짓이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즉 한 존재가 우리 종족의 일원인가의 여부는 그 자체로서는, 한 존재가 우리 인종의 일원인가의 여부와 마찬가지로, 그 존재를 죽이는 것의 그릇됨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다른 특징과 상관없이 한 존재가 우리 종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그 존재를 죽이는 것의 그릇됨을 크게 좌우한다는 믿음은,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논쟁에 끌어들이기를 주저할, 종교적 교리의 유물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논점을 인정하게 되면 임신 중절 문제는 변한다.

우리는 이제 태아에게서 태아가 무엇인지를, 즉 그것이 소유하고 있는 실제적인 특징이 무엇인지를 알아볼 수 있으며, 태아의 생명을 우리 종족의 일원은 아니지만 비슷한 특징을 가진 다른 존재의 생명을 재는 것과 같은 자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친 생명(Pro-Life)’운동이나 ‘생명권(Right to Life)’운동의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모든 생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는커녕, 임신 중절에 대해서만 항변하며 정기적으로 닭과 돼지와 소의 육신을 먹어대는 사람들은 자기 종족의 생명에 대한 편향된 관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합리성, 자의식, 의식, 자율성, 쾌락과 고통 등 도덕적으로 중요한 특성들을 어느 것이든 공정하게만 비교한다면, 소나 돼지 그리고 그렇게 비웃음을 받는 닭이 어떤 단계의 태아보다도 훨씬 앞서 있는 것으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3개월 이전의 태아와 비교한다면, 물고기도 태아보다 더 의식적이라는 징후를 보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태아와 비슷한 수준의 합리성, 자의식, 의식, 감각 능력 등을 가진 동물의 생명에 부여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태아의 생명에 부여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태아는 인격체가 아닌 까닭에, 어떠한 태아도 인격체와 같은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시점에서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되는지 아직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능력이 생기게 될 때까지 임신 중절은 아무런 ‘본질적’가치를 가지지 않는 존재를 끝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이후에 태아가, 비록 자의식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의식적일 수 있는 때는 임신 중절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성의 심각한 이익은 비록 태아가 의식을 가졌다고 해도 그러한 태아의 초보적인 이익을 압도할 것이다.

실제로 아주 사소한 이유로 임신 후반기에 행해지는 임신 중절조차도, 단지 그 고기를 먹기 위하여 훨씬 더 발달된 형태의 생명을 해치는 사회에서는, 비난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