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이나 암과 같은 난치병에 걸릴 위험에 대비해 유아의 탯줄을 15년 이상 장기간 극저온 상태로 저장하는 '제대혈 보관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버려지던 탯줄이 미래의 질환을 막아줄 수 있다는 설득에 부모들은 '보험 드는' 심정으로 100만∼200만원 정도의 비용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치료의 효용성이 높지 않아 제대혈 상품 구입시 합리적 판단이 필요하다.

◆제대혈의 효용성은 혈액암에 국한=건강한 혈액을 만드는 조혈 모세포는 대개 골수와 제대혈에 존재한다.

백혈병 등 혈액암으로 혈액에 비정상적 세포가 급증할 경우에는 항암제를 투여하고 필요에 따라 혈액 전체를 교환하고 새로운 골수나 조혈 모세포를 이식해야 한다.

골수 또는 제대혈 이식은 조직 적합성 항원(HLA)의 6가지 분자구조 유전자(A,B,C 및 DP,DQ,DR 등)가 모두 일치하거나 최소한 A,B,DR 등 3가지가 같아야 한다.

그러나 골수 이식은 채취할 때 전신마취가 필요하고 골수를 뺀 후 수주간 골반의 심한 통증을 감내해야 한다.

반면 제대혈 이식은 이런 불편이 없어 선호되고 있다.

그러나 광고나 구전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달리 미래의 다른 암이나 선천성 대사장애,면역장애,간질환,뇌졸중,심장병,당뇨병,파킨슨병 등에 걸렸을 때도 제대혈이 대비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혈 업계는 향후 바이오기술이 발전하면 제대혈을 배아줄기세포처럼 분화시켜 혈관 신경 췌장베타세포(인슐린 분비) 간실질세포 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나 현 기술 수준으로는 한 번 냉동한 세포를 다시 녹여 분화시키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 제대혈로 내 병 치료는 사실상 불가능=유전적으로 문제가 있어 발병한 소아백혈병(전체의 5%가량)은 자기 제대혈에도 비정상적 유전자가 있으므로 사용이 불가능하다.

대다수 유전적 요인이 아닌 백혈병의 경우에도 타인의 골수를 이식해 치료하는 게 가장 낫고 다음으로 타인의 제대혈,불가피할 경우 자신의 제대혈을 쓰는 게 순서다.

김동욱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는 "혈액암세포를 죽이려면 HLA는 일치하되 유전자는 다른 타인의 골수 또는 제대혈을 쓰는 게 효과적"이라며 "자기 제대혈을 쓰면 면역 거부 반응이 없어 생착률은 90% 이상으로 높아지나 암세포를 살상할 타인세포가 아닌 자기세포로 인식하기 때문에 치료율이 낮다"고 설명했다.

현재 백혈병 치료율은 타인 골수이식이 70% 이상,타인 제대혈은 40∼50%,자기 제대혈은 훨씬 낮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자기 제대혈로 백혈병을 치료한 경우가 2건밖에 없고 HLA 타입이 같을 확률이 25% 안팎인 가족 간 제대혈 이식도 10여건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반해 타인 간 제대혈 이식은 300건 안팎이다.

게다가 제대혈은 한 사람 것만으로는 환자가 필요한 만큼의 조혈 모세포 숫자를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당수는 타인 두 사람 이상 분의 제대혈을 쓴다.

◆제대혈의 생존율에 대한 검증 필요=지난해 11월 오일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자신의 냉동보관 40개 제대혈을 대상으로 골수 재생 능력 여부를 확인한 결과 40∼50%가 생존력을 잃은 '초기 세포사' 상태로 추정된다고 발표해 충격을 줬다.

현재 냉동보관한 제대혈을 해동해 이식할 경우 국내에서는 70%가량이 합격품이라면 외국은 30%에 불과하다는 게 오 교수의 판단이다.

이는 제대혈 이식이 이식 후 생존 가능성에 대한 사전 검토가 부족한 채 시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 교수는 사실상 죽은 제대혈을 백혈병 환자에게 이식할 경우 치료 중 사망할 가능성이 30%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세포배양 전문가는 "국내에서는 보관 도중 폐기되는 비율이 5% 안팎에 그치지만 미국은 10∼15% 선에 이르고 있다"며 "쉽게 말해 전혀 써먹을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죽은 제대혈이 냉동고에 보관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제대혈은 보관한 기간이 길수록 이식 후 생착률이 체감적으로 떨어지게 돼 있다.

구홍회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암센터장은 "현재로선 제대혈의 생존율을 높일 획기적인 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보관 시스템에 완벽성을 기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제대혈 치료의 가능성을 인정하되 과잉 기대는 버리고 제대혈은행을 만들어 타인의 제대혈을 공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