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씨 아니에요?"

전남 곡성군 대평리에 사는 빙기연 신진건설 대표(57).경주 빙(氷)씨 종친회 총무를 맡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이름을 얘기할 때면 늘 이런 질문을 받는다.

경주 빙씨 18대손이라고 몇 번씩 강조해도 사람들은 그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빙씨가 어디있느냐며 되레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단다.

전국에 800여명밖에 없는 희귀 성이다 보니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란다.

빙 총무는 "'氷'자가 '얼음 빙'자 이다 보니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빙하기'가 나올 때마다 웃는 친구들 때문에 민망했다"며 "친척 중에는 '빙과류'가 가장 싫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경주 빙씨는 수는 적지만 '가문애'는 그 어떤 대형 가문보다 끈끈하다.

매년 4월 첫째 일요일이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종친들이 집성촌인 전남 곡성군 대평리에 모여 시제를 올린다.

이때 모이는 인원만 전체 종친의 4분의 1인 200명에 달한다.

성인 남자에 한해서만 거두는 종친회비도 420여명의 대상자 중 300여명이 매년 꼬박 꼬박 잊지 않고 낸다.

또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다니기 힘든 종친들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거둬 두 명에게 10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빙 총무는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종친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돈을 모았다"며 "2009년부터는 정례적으로 기금을 만들어 일년에 한 번씩 집안 사정이 어렵고 학업 성적이 좋은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층 종친들끼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에 '빙씨사랑'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놓고,경조사 등을 챙기고 있다.

경주 빙씨의 가문 사랑은 종친과 가문이 고리타분한 전통으로 여겨지는 요즘에 혈연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

넥슨 법무팀에 근무하고 있는 빙기완씨(31)는 "서로 만나서 그간의 일들을 얘기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며 "같이 제사드리고 밥도 먹으면서 그동안 못 했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직장인 빙창용씨(37)는 "가문 사랑이 혈연을 따져 너와 나를 가른다는 구습을 따르자는 것은 아니다"며 "종친과 가족은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위로가 되는 옛날 기억 속 고향과도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경주 빙씨의 시조는 조선 세조 때 중국 명나라 황제의 사신으로 조선에 건너와 이 땅에 정착한 빙여경(氷如鏡).세조가 그를 예우해 경주부원군으로 봉했고,그로부터 5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후손들이 전남 곡성군 대평·구성리 빙씨 집성촌에 39가구,11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통계청의 2000년 성씨·본관별 가구 및 인구 조사자료에 따르면 경주 빙씨는 전국에 726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성=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