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단편 '누에는 고치속에서 무슨 꿈을 꾸는가'로 문단에 데뷔한 중견작가 은미희씨(46)가 등단 이후 첫 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이룸)를 펴냈다. 표제작을 비롯한 10편의 작품은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인물과 그들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쓸쓸함에 대해 그리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상실감이나 마음을 다 주어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배신감,평생을 두고 그리워하지만 단 한 번의 만남도 허락되지 않는 이에 대한 보고픔 등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처가 은미희만의 감성적 언어로 형상화 돼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말단 공무원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J는 어느날 친구 P로부터 종수의 죽음소식을 듣는다. 세 사람은 모두 친구 사이. 어린시절 종수 아버지의 부(富)를 질시하고 부러워했던 이들은 종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들과는 다른 '가진 자'라는 이유로 모임에서 따돌리기 일쑤였다. 세월이 흘러 종수네 집은 망하고 친구들은 떵떵거리는 부자가 된다. 그러자 친구들은 더 이상 곁에 둘 가치가 없는 종수를 외면한다. 그러던 중 종수의 죽음소식을 접한 이들은 장례식장을 찾는데 그 곳에서 뜻밖에도 살아있는 종수를 만난다. '편린,그 무늬들'의 주인공 성모는 대학 시간강사다. 교수가 되는 길은 멀고 나날이 반복되는 일상에 그는 점차 지쳐간다. 자연스레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제자와 열정 없는 내연의 관계를 맺고 아내와는 특별한 감정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어느날 성모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내와 흡사한 모습의 한 여인을 발견한다. 소설가 임철우는 "은미희에게 현실의 세상은 비의 천지다. 비에 끝없이 침몰해 가는 현실의 벼랑 끝에서도,그의 주인공들은 한사코 황금빛 사막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