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다원적으로 발생하는 사회현상을 모자이크처럼 재조합하고 그 이면에 깔려있는 의미를 부각시키며 문제의식도 함께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사회가 지향해야 할 옳은 방향성을 찾고 그 위에 스스로 실천해 가는 것이 지식인들의 소명이다. '대통령님 그냥 내버려두시죠'(도서출판 은행나무,8천5백원)의 저자 양봉진은 한국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 썼던 글들을 다시 다듬고 큰 주제별로 묶어 더 큰 그림을 보여준다. 경영학(재무관리)을 전공하고 강단 금융계 언론계에서 폭넓게 활동한 탓인지 저자의 관심사는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는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국내외 시각을 대비시키면서 비판적이지만 찬찬히 그리고 일관성 있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직 언론인의 글답게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도전적인 제목부터 골라 읽다가 순식간에 책을 다 읽어버렸는데 '사단장이 보초나 서는 나라' '논쟁을 즐기는 미국인' '촌스러운 한국 외교' '한국적 인식의 오류' '한국호는 또 침몰하는가' 등의 도발적인 소제목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용어라기보다는 자연스레 입 밖으로 튀어나온 감탄사임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저자가 한국경제의 문제점들을 깊이 체득하고 있고 이를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재미와 함께 그의 글은 뚜렷한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책 제목에서처럼 책 전반에는 시장경제 중심의 사고가 녹아들어 있다. 미국경제의 장점과 실체를 '해고할 수 있는 자유'와 '악어의 눈물'과 같은 언뜻 대립되는 주제를 그것도 가까운 페이지를 사이에 두고 병립시킬 수 있는 것도 저자의 명확한 시장경제관 때문이다. 사실 정부주도의 경제 사회 운용이 단기에 고도성장이라는 득(得)을 가져왔다면 이러한 시스템이 경제주체들의 몸에 배게 된 것은 분명한 실(失)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4년 간의 구조조정이 정부 주도로 진행됨에 따라 민간 부문이 타율적이고 피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 또한 심각한 문제다.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가 정부가 직접 관여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고 앞으로 더욱 복잡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외환위기'가 아니라 '신뢰위기'이며 이는 민간자율능력 함양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 사회운영에 직접 간섭할 것이 아니라 민간을 믿고 자율에 맡기면서 단지 감시자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쓸모없는 규제와 간섭은 무능과 부패를 양산한다는 점을 설득과 여러 예증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가장 급속하게 변화했던 지난 3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한 발짝 벗어나 있었다. 즉 좀 더 객관적이고 넓은 시야를 갖고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대상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균형감각까지 갖춘 지식인이다. 독자들은 급변하는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할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최흥식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