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경제 전쟁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애플이 러시아 사용자들의 애플페이 접근을 제한한 데 이어 완성차기업 포드와 항공기업체 보잉,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도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했다.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는 게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번지면서 경제 전쟁에 뛰어드는 기업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애플은 1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에 있는 애플 사용자들은 애플페이 등 디지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러시아 국영 미디어인 러시아투데이와 스푸트니크 앱은 러시아 이외 국가의 앱스토어에서 사라진다. 애플은 우크라이나에서 실시간 교통 상황을 안내하던 지도앱 서비스도 중단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애플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에게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각종 SNS가 러시아 정부 방침을 전파하는 선전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하는 앱을 통해 민간인들의 이동 경로가 노출돼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요청에 따라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은 지난달 28일부터 러시아 언론 콘텐츠를 삭제했다. 넷플릭스는 이달부터 국영 TV 채널을 의무적으로 편성하도록 한 러시아 정부 방침을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가 애플 서비스를 중단했지만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 점유율은 15%다. 아이폰은 지난해 2억2000만대 팔렸는데 이중 러시아 매출은 2%를 차지했다. 애플의 앱스토어 매출 6억9400만달러 중 러시아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다른 기업들도 러시아 사업 철수 속도를 높이고 있다. 포드는 러시아 합작 투자사에게 현지 공장 운영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우크라이나 구호기금 10만 달러도 기부하기로 했다. 포드는 러시아에 3개의 합작 투자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보잉은 러시아 항공사에 부품이나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에너지기업 엑슨모빌은 사할린1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등 러시아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할리데이비슨은 러시아로 향하던 제품 선적을 중단했다. 나이키는 러시아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제품을 살 수 없도록 주문 서비스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월트디즈니와 워너브라더스도 러시아에서 신작을 개봉하려던 일정을 연기했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 스트라우스, 음료브랜드 코카콜라와 펩시코 등 냉전 이후 러시아의 문화 개방을 상징하는 미국 브랜드들도 러시아 시장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엔 전쟁이나 경제제재 여파를 피하기 위해 사업영역을 조정하는 기업이 많았다. 하지만 점차 평판을 관리하기 위해 대응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소비자 성향에 맞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경제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