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도 안나와" 양모 폭락에…英 농부들, 양털 불태운다 [원자재포커스]
고급 소재 취급받지만 대금은 "쥐꼬리"
합성섬유 늘며 수요 줄어… 값싼 수입산도 영향


"양 260마리 분 양털이 30파운드(약 5만원)밖에 못 받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들여서 운송해야하는데 그럴 가치가 없죠"

영국에서 양모 가격 폭락에 항의하기 위해 양모를 불태우는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BBC는 14일(현지시간) "농부들이 쥐꼬리만한(measly) 양털 가격에 항의하며 양털을 계속 태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 생산되는 자연산 양모는 고급 소재로 평가되고, 이를 통해 만든 제품은 고가에 거래된다. 그러나 실제 농부들에게 떨어지는 대금은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영국 양 협회 소속인 니콜라 노블은 "농부들이 받는 '양모 수표'는 종종 1년 임대료를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1950년대 이후 영국 양모 가격 추이. 영국 환경식품농업부
1950년대 이후 영국 양모 가격 추이. 영국 환경식품농업부
영국 환경식품농업부에 따르면 영국양모마케팅위원회가 설립된 1952년 영국산 양모는 ㎏당 약 13파운드에 거래됐다. 1950년대 중반 이후 가격은 하락세다. 1990년대 들어 2파운드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6월에는 1.04파운드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국산 양모 가격이 하락한 것은 각종 합성 섬유가 개발되며 대체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20년 전세계 섬유 생산량에서 합성 섬유가 62%, 면화가 24% 비중을 차지했다. 양모 비중은 1%에 불과했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값싼 양모가 수입된 것도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피크 디스트릭트의 눈 덮인 들판에 양들이 서 있다. EPA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피크 디스트릭트의 눈 덮인 들판에 양들이 서 있다. EPA
양 사육 비용이 양털 가격에 못 미치자 농장을 정리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영국 남동부 롬니마시에서 양을 사육하던 프랭크 랭그리시는 2022년 양털 대금으로 5000파운드를 받은 반면 비용으로는 그 세 배를 지불했다. 2년 새 영국을 덮친 인플레이션으로 사료, 예방접종 등 비용이 증가한 여파가 반영됐다.

영국 양모 농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격 하락에 대응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모 운송 비용이 판매 대금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유통구조를 개선하라는 메시지를 당국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노블은 "모든 사람이 양털을 '양털을 보내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태워서 묻어 버리겠다'는 태도를 가진다면 영국산 양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위 이후 양모 가격은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당 1.45파운드끼지 오른 뒤 지난 6일 다시 1.21 파운드로 떨어졌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