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북극 가스전 공사 중단…美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원자재 포커스]
자국 LNG 시설 허가 보류한 미국
"러시아 LNG증산도 못하게 할 것"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에는 대형 악재

러시아 '북극(ARCTIC) LNG-2' 가스전 시설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이 프로젝트를 겨냥한 미국의 제재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서방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사실상 금지시켰다. 대신 자신이 유럽에 대한 원유, 천연가스, 석유정제제품 등 수출을 급격히 늘리며 러시아의 텃밭을 빼앗았다. 그러나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돌연 자국 기업들의 에너지 수출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선거를 앞두고 국내 에너지값을 낮추고 환경단체 등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란 관측이 나온다.

8일(현지시간)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는 "북극 LNG-2 세 번째 생산시설 건설이 중단됐다"며 "다만 두 번째 생산시설은 가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민간 가스 기업 노바텍(지분율 60%)가 주도하고 있다. 이 밖에 토탈에너지(10%), 국영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10%), 중국해양석유(CNOOC·10%), 일본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와 미쓰이 컨소시엄(10%) 등이 참여했다. 러시아는 당초 2035년까지 세계 LNG 시장 점유율을 현재 8%에서 20%까지 확대할 계획이었다.
미국 메릴랜드주 러스비에 있는 도미니언에너지의 LNG터미널  / 사진=AP
미국 메릴랜드주 러스비에 있는 도미니언에너지의 LNG터미널 / 사진=AP
당초 사업 참여자들은 250억달러(약 33조원)가량을 투입해 2026년까지 연간 660만t의 LNG를 생산할 수 있는 개별 생산시설 3곳을 순차적으로 건설해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작년 11월 미국이 러시아의 에너지·군사 등 부문을 겨냥해 북극 LNG-2 프로젝트도 제재 대상에 올리자, 사업 지분 40%를 가진 프랑스·중국·일본 에너지 기업들은 2차 제재를 우려해 프로젝트 참여를 일시 중단했다. 외국 투자자들이 본격적인 프로젝트 가동 후 연간 200만t씩의 LNG를 각각 확보하기로 했던 장기 계약은 효력을 상실한 상황이며,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자금도 노바텍이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프로젝트 지분을 보유 중인 외국 투자자들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LNG 공급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미국에 요청한 상태다.

북극 LNG-2 프로젝트의 첫 번째 생산시설은 이미 시운전에 돌입했으나 당장은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노바텍은 이곳에서 생산한 LNG를 아시아 현물 시장에 판매할 예정이지만 극지방을 운항할 수 있는 운반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이달 중에 예정했던 LNG 첫 선적도 다음 달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코메르산트는 "노바텍이 올해 말까지 한국으로부터 북극 LNG-2 프로젝트 생산물 운송에 필요한 운반선 6척을 인도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후 한국의 주요 조선업체들이 러시아와 체결한 LNG 운반선 건조를 중단하거나 계약 해지에 나섬에 따라 실제로 성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잇따른 가스전·터미널 등 LNG 인프라 건설 중단은 한국의 가스 수급에는 이중의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LNG 수출이 감소할 경우 최대의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미국은 제재를 동원해 이마저 막아선 셈이다. 제프리 R. 파이엇 미 국 국무부 에너지자원 차관보는 지난해 제재 방안을 발표하며 "러시아의 Arctic LNG 2 프로젝트를 특별히 겨냥한 조치를 취한 것은 러시아가 미래에 에너지 수출로 수익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명확하게 설명했다.
석유화학, 정유 플랜트가 밀집한 미국 루이지에나주 찰스호 주변을 걷는 바이든 대통령 / 사진=Reuters
석유화학, 정유 플랜트가 밀집한 미국 루이지에나주 찰스호 주변을 걷는 바이든 대통령 / 사진=Reuters
LNG공급 증가세가 꺾일 경우 천연가스 가격 급등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지난달 최소 17개의 액화천연가스(LNG)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인허가 절차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 인허가가 완료돼 공사 중인 기존 시설이 많아 LNG 공급은 당분간은 늘어나겠지만,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하려는 중국의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