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만에 엑시트"…獨 딜리버리히어로, 경쟁사 지분 매각
국내 1위 배달 앱 배달의민족의 모회사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경쟁사인 영국 음식배달업체 딜리버루의 지분을 대량으로 매각할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정점을 찍었던 음식배달 산업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딜리버리히어로는 29일(현지시간) 보유하고 있던 딜리버루 보통주 6820만주를 전량 매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분율은 약 4.5% 수준이다. 매각 대금은 이날 종가(121.90파운드) 기준 8300만파운드(약 1405억원)가량으로 계산된다.

딜리버리히어로 측은 이번 거래를 “절제된 자본 배분의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면서 “(매각 대금은) 통상 기업 활동에 사용될 것”이라고 알렸다. 이 회사는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신속하게 진행한 뒤 오는 2월 1일께 거래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바클레이즈,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투자은행(IB)이 주간사로 나섰다.

딜리버리히어로가 딜리버루 지분을 처음 사들인 건 2021년이었다. 팬데믹 기간 음식배달업체들이 초고속 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딜리버리히어로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윌 슈 딜리버루 창업자 겸 CEO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며 딜리버루 주식이 저평가됐다고 언급했던 바 있다.
"2년 반 만에 엑시트"…獨 딜리버리히어로, 경쟁사 지분 매각
음식배달업계의 분위기는 2년 6개월 만에 바뀌었다.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으로 가계의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성장세가 꺾인 것이다. 고금리에 자금 조달 부담이 가중되면서 업체들의 수익성 압박도 커지던 상황이었다. 딜리버리히어로의 주가는 작년 한 해 60% 가까이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딜리버루 주가는 30% 넘게 올랐지만, 여전히 공모가(390파운드)를 큰 폭으로 밑돌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밝히고 나선 미국 도어대시와는 대조되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토니 쉬 도어대시 CEO는 이달 초 FT 인터뷰에서 “항시 재투자할 곳을 물색하는 중”이라며 사업 다각화 방침을 공고히 했다.

독립투자사 쇼어캐피털의 브래들리 휴즈 애널리스트는 “딜리버리히어로는 (음식배달업계에서) 몇 안 되는 잠재적 인수 주체로 거론되던 회사였다”며 “도어대시가 새로운 (인수·합병) 기회를 물색하고 나설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2021년 3월 상장한 딜리버루는 슈 CEO가 소유한 차등의결권의 만기가 가까워져 옴에 따라 지배구조에 불확실성이 드리워진 상태였다. 다만 만료 두 달 전 딜리버리히어로가 지분 매각에 나서면서 슈 CEO에겐 의결권 추가 확보의 길이 열리게 됐다. 차등의결권은 경영진이 보유한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보유하는 제도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차단하기 위해 활용된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 시장에서 운영하는 음식배달 플랫폼 ‘푸드판다’의 매각도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기준 2030년 만기가 도래하는 총부채 약 57억유로(약 8조2000억원)와 약 24억유로(약 3조5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딜리버루 지분 매각에 대해 “유동성 포지션이 소폭 개선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