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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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완성차업체 르노가 전기차 사업부인 암페어를 분할한 뒤 기업 공개(IPO)할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며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르노를 비롯해 완성차업계에선 전기차 시장 한파를 대비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인 모습이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르노는 올해 1분기로 예정되어 있던 암페어 상장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추후 상장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르노 관계자는 WSJ에 "현재 주식 시장이 혹독한 탓에 르노그룹과 주주, 암페어의 미래를 위해 IPO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암페어가 지닌 현금 창출 능력이 충분한 상황에서 모험하지 않겠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르노는 암페어가 자체적인 자본조달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IPO를 통한 광범위한 자본조달 필요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또 르노 그룹의 현금 창출 능력도 예상보다 탄탄해서 IPO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해명이다.

르노는 당초 2022년 전기차와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던 사업부인 암페어를 분사할 계획을 세웠다. 2년 내로 IPO에 성공한 뒤 르노 그룹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IPO를 시행하기에 앞서 르노는 작년 11월부터 암페어를 실질적인 별도 회사처럼 운영해왔다. 당시 르노가 예측한 암페어의 기업가치는 최대 100억유로(약 14조원)였다.

르노가 IPO를 철회하면서 닛산과의 동맹관계도 약화할 전망이다. 티에리 피통 르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결정으로 전기차 부문은 프랑스 르노만 투자하고, 일본 동맹인 닛산과 미쓰비시는 전기차 투자에서 발을 빼게 된다"며 "일본 닛산과 미쓰비시가 여전히 전기차 투자 옵션을 갖고는 있지만 이들이 투자에 나설지 여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르노가 암페어 IPO를 철회한 배경엔 전기차 시장 축소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둔화하면서 암페어도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앞서 스웨덴 전기차업체 폴스타는 지난 26일 전기차 수요 감소로 인해 직원 15%를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포드는 전기차 픽업트럭인 F-150 생산량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테슬라는 지난 24일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성장률이 작년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25일에는 미국 5000여개 점포를 대표하는 딜러들은 미국 정부에 전기차 전환 정책을 서두르지 말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수요가 부진한 탓에 재고가 쌓여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르노도 이러한 시장 상황을 고려해 IPO를 철회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루다 데메오 르노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가 유럽의 주요 시장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에는 변함이 없다"며 "유럽 당국의 탈(脫)탄소 정책 기조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며, 전기차도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