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정말 나쁘다. 더 나쁘지 않았다는 점 말고는 좋은 점을 찾을 수 없다."(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
"끔찍할 정도다. 모든 게 다 올랐다."(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
"불편할 정도로 높다."(백악관)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CPI)가 10일(미 동부 시간) 아침 발표되자 뉴욕 금융시장은 경악했습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가 나오며 시장 컨센서스이던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주가부터 금리, 달러 등 정정론에 기반해 책정되었던 시장 가격은 △더 높아진 인플레이션 기대 △ 더 강화된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전망 △ 커진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해 큰 폭으로 요동쳤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5월 CPI는 전년 동월보다 8.6% 급등했습니다. 4월(8.3%)보다 오름폭이 커졌고, '정점'으로 믿었던 3월(8.5%)을 넘어 1981년 12월 이후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월가 예상치는 8.3%였습니다. 전월 대비로는 한 달 만에 1%나 뛰었습니다. 4월(0.3%) 수치와 시장 예상(0.7%)을 크게 상회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보다 6.0%, 전월보다 0.6% 올랐습니다. 월가 예상치는 각각 5.9%와 0.5% 증가였습니다. 지난 4월(6.2%, 0.6%)에 비해 전년 대비 수치는 둔화했지만, 전월 대비 상승률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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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은 전방위적이었습니다. 휘발유 등 에너지(전월 대비 3.9% 상승)와 식료품(1.2%)이 상승세를 주도했고 신차(1.0%), 의복(0.7%), 주거비(0.6%) 항공료(12.6% 증가) 등 오르지 않은 게 없었지만, 지난달 꺾였던 중고차(1.8%)가 다시 오른 게 전 달과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크레디 스위스의 조너선 골럽 전략가는 "오늘 보고서는 인플레이션이 공급망 붕괴, 중국 봉쇄, 지정학적 갈등과 관련해 특이한 것이란 낙관적 주장을 약화시킨다. 인플레이션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악시오스의 닐 어윈 수석 경제 기자는 "개별 항목을 아무리 샅샅이 둘러봐도 실버라이닝(작은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경기 침체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미 중앙은행(Fed)이나 바이든 행정부에게 재앙"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전체 CPI에서 3분의 1가량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인 주거비에 대한 걱정이 커졌습니다. 끈끈한 물가 요인인 주거비는 지난 1월 0.3% 올랐다가 지난 석 달 동안 0.5% 상승했었는데 5월 0.6%로 오름세가 가속화됐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로는 5.5% 오른 것인데, 케이스·실러 지수 등에 따르면 연간 집값이 20%, 렌트는 15% 상승했다는 점에서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게다가 6월 들어 유가 등 에너지 상승세도 가속하고 있습니다. 전날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쳤다고 말하기 이르다"라고 밝혔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고문은 "6월 들어 첫 열흘이 이달 전체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면 6월 물가가 5월보다도 높아질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은 아직 정점을 치지 않았다"라고 또 다시 지적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흔들리자, 곧바로 Fed가 긴축 강도를 올릴 것이란 공포가 커졌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애초 6, 7월 각각 50bp를 올린 뒤 오는 9월 25bp 올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를 50bp를 인상하는 것으로 수정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씨티그룹은 "5월 소비자물가의 어떤 구성요소도 Fed에 대한 압력을 줄이지 않는다. 기본 예측은 다음 세 번의 FOMC에서 50bp 올리는 것이지만, 50bp 인상은 9월 이후에도 계속되거나 더 큰 폭의 인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75bp 인상론이 또다시 제기된 것입니다.

바클레이즈와 제프리스는 닷새 뒤인 다음 주 14~15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75bp를 인상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바클레이즈의 조너선 밀러 이코노미스트는 “5월 CPI는 광범위한 가격 압력으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라며 "Fed가 예상보다 더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시장을 놀라게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가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징후가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다음 주 FOMC가 75bp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제프리스의 아네타 마르코스카 이코노미스트도 "오늘의 인플레이션 데이터는 Fed가 더 높은 기어와 전면적 긴축 정책으로 전환하도록 만들 게임 체인저라고 믿는다"라고 밝혔습니다. 캐피털이노코믹스는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의 놀라운 중가와 근원 물가의 또 다른 강력한 상승은 Fed가 가을까지 일련의 50bp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가야 할 가능성을 높인다"라면서 "심지어 다음 주 75bp 인상 가능성의 문도 열어놓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CNBC의 매드머니 진행자인 짐 크레이머는 "계속 오르는 물가에 지쳤고 지겹다. 이제 긴급 FOMC 회의라도 열어 100bp를 올려서 정말 인플레이션을 끝내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기 침체가 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침체는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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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I가 발표되자 금리는 그야말로 폭등했습니다. 기준금리를 반영하는 미 국채 2년물은 순식간에 연 2.9%대로 뛰었습니다. 10년물은 3.1%를 깨고 5월 고점인 3.13% 턱밑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수선물은 폭락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0.6~1.8% 하락세로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10시 또 한 번의 타격이 가해졌습니다. 미시간대가 집계하는 6월 소비자태도지수 예비치가 50.2로 '사상 최저'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전월 58.4보다 14%나 폭락한 것으로, 월가 예상 58.5도 크게 밑돌았습니다. 현재 여건 지수가 전달보다 7.9가 떨어졌고, 향후 6개월을 내다보는 기대는 8.4나 폭락했습니다. 리처드 커틴 미시간대 담당 교수는 "소비자 심리가 집계 이후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비자 46%가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를 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는 1981년 불황 이후 가장 높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찰스 슈왑의 리즈 앤 손더스 전략가는 "이렇게 높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5월의 실질 소득은 3.9% 감소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소득은 감소하니 심리가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특히 같은 조사에서 12개월 기대인플레이션은 전월보다 0.1%포인트 오른 5.4%로, 향후 5년 기대인플레이션은 전월보다 0.3%포인트 상승한 3.3%를 기록했습니다.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는 지난 몇 달간 꾸준히 3%에서 묶여 있었는데, 그게 올라간 것입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를 통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몇 차례나 강조한 바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미시간대 조사를 보니 소비자들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겁을 먹었고, 소비를 본격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미시간대 발표 직후 금리는 이단 상승했습니다. 2년물은 3%를 돌파했고, 10년물은 5월 고점을 깨고 올라갔습니다. 오후 4시 25분 10년물은 11bp 오른 3.157%를 기록했습니다. 2년물은 무려 25.8bp 폭등한 3.061%에 거래됐습니다. 2008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2년물 금리가 훨씬 더 많이 뛰면서 2년~10년 스프레드는 이날 하루 15bp 이상 감소해 이제 9bp에 불과합니다. 경기 침체의 신호인 수익률 곡선 역전 가능성이 급격히 커진 것이죠.

S&P500 지수도 순간 20포인트(0.5%)가 더 떨어졌습니다. 오전 10시 반께 나스닥은 3%대, S&P500 지수와 다우는 2%대 중반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다우는 2.73%, S&P500 지수는 2.91% 급락했고 나스닥은 3.52%나 추락했습니다. S&P500 지수의 종가는 3900.86으로 끝났습니다. 그래도 장 막판에 알고리즘 매수세가 들어와 3800대에서 마감하는 것은 막아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침체 공포가 덮친 증시에선 모든 업종이 급락한 가운데 소비 감소 때 타격을 입는 임의소비재 업종이 가장 큰 4.16%나 폭락했습니다. 물류 관련주와 금융, 부동산 업종에서도 52주 신저가가 속출했습니다. 경기에 민감한 업종입니다. 금리 상승 속에 기술주도 큰 폭 하락했습니다. 애플은 3.9%, 마이크로소프트는 4.5% 떨어졌고 세일즈포스는 4.6%, 아마존은 5% 이상 하락했습니다. 골드만삭스가 넷플릭스와 이베이, 로블럭스에 대해 투자의견을 매도로 강등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넷플릭스와 이베이는 5% 하락했고 로블럭스는 9% 추락했습니다.

시카고선물거래소의 Fed워치 시장에서는 6월 FOMC에서 75bp를 올릴 확률이 전날 1.8%에서 23.2%로 급등했습니다. 7월 75bp 인상 가능성은 전날 11.3%에서 45.1%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9월 기준금리는 2.5~2.75%가 될 것이란 베팅이 45.1%로 가장 높아졌습니다. 6, 7, 9월 중 한 번은 75bp(두 번은 50bp)를 올릴 것이란 예상입니다. 긴축이 강화될 것이란 예상에 달러도 1% 가까이 급등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주간 기준으로 다우는 4.6%, S&P500 지수는 5.1%, 나스닥 지수는 5.6% 각각 떨어졌습니다. 다우 지수는 지난 11주 중 10번째 주간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입니다.

연착륙에 대한 희망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인)는 "소비자 지출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Fed가 너무 많이 긴축하는 것"이라며 "경기 침체를 초래할 파괴적 정책 실수에 빠지게 될 것을 우려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뉴욕생명자산운용의 윤제성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제 우리는 세 번의 50bp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Fed에 대한 신뢰 여부가 향후 시장 중심을 차지할 수 있고,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지 못할 가능성을 걱정할 수 있다. 시장은 75bp 인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제롬 파월 의장은 75bp 인상을 테이블에서 빼지 말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연말 회복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을 수가 있겠냐. Fed가 강하게 나갔다면 시장은 이미 항복했을 것이고, 침체가 없었다면 연말에는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긴 싸움에 들어갔고, 인플레이션은 그 경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우리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갖게 될 것 같고 1970년대처럼 심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고통을 보게 될 것 같다. 나는 지난 3월에 경기 침체를 겪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오늘 나는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아마 침체가 가능하고 점점 더 가능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윤 CIO도 지적했지만, 시장에서는 이제 Fed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는 건 Fed가 자산 가격의 안정성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걸 뜻한다"라며 "금리는 급등하고 주가는 급락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앨런 블라인더 전 Fed 부의장도 "물가가 유가 폭등 등에 의한 것이어서 Fed가 지금 당장 물가를 크게 낮출 수 있는 도구가 없다"라며 우려했습니다.

물론 긍정적 목소리도 여전히 있습니다. 바이탈 날리지의 애덤 크리사펄리 설립자는 "그래도 근원 물가 상승세가 가속화되지 않았다는 점은 '작은' 긍정적인 점"이라며 "몇 주 뒤에 나올 Fed가 중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고, 경제에서는 점점 더 물가 하락요인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PCE 물가에서는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습니다.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는 "인플레이션 정점을 확인하기 위해 향후 몇 달 동안 더 나은 물가 지표가 필요하므로 여름 시장은 변동성이 클 것"이라면서도 "근원 인플레이션의 일회성 요인(자동차 렌트, 항공료, 의류)은 거의 틀림없이 곧 완화될 수 있으며 자동차를 제외한 내구재 가격은 낮아지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S&P500 지수는 아직 약세장에 빠지지 않았다(고점 -19%). S&P500 지수는 주가수익비율 약 17배에 거래되고 있고, 기술주를 빼면 13~14배에 거래된다. 이렇게 낮은 경우는 거의 없다. 시장은 이미 2023년 경기 침체를 반영해 할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기 침체가 오면 시장은 평균 31%까지 하락했지만, 이번 침체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닷컴버블 붕괴와 같은 거대한 게 아니고 가벼울 것이기 때문에 추가 하락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무너진 '인플레 정점론', 다음 주 75bp 올린다?
다음 주에는 FOMC가 열립니다. 15일 오후 2시면 통화정책 성명서가 발표되고, 그 30분 뒤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 나섭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과 긴축, 침체, 그리고 Fed의 신뢰성에 대한 빗발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기준금리는 50bp를 올릴 것이란 게 여전히 컨센서스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우선 6, 7월까지는 50bp라고 말했으니 50bp를 올릴 것이고, 그 이후에도 0은 아니고 25bp일 거라고 했는데 아마 이게 '50bp 인상이 두어 차례 정도 이어질 수 있다' 정도로 수정될 것 같다. 강하게 부정해버린 75bp를 다시 꺼내 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Fed가 올해 제시한 것보다 조금 더 금리를 올려 앞으로 최소 200bp 이상 올릴 것 같지만, 75bp 인상은 파월 의장이 최근 몇 주 동안 시장 기대치를 이끌었던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중앙은행은 민첩해야 하지만 "불확실성을 피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WSJ은 "인플레이션이 결정적으로 내림세를 보인다는 징후가 보일 때까지 50bp씩 금리를 인상하는 현재 전략을 계속 고수할 수 있다"라고 예상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5월 소매 판매, 산업 생산도 발표됩니다. 소매 판매는 5월 자동차 판매 감소로 인해 위축될 것이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산업 생산은 석유와 가스 시추의 증가로 광공업 부문 실적이 강세를 보이면서 괜찮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