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하루 만에 달라졌다. 전날까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파병 명령을 내린 러시아의 행동을 어떻게 볼지 머뭇거리다 22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침공’이라고 규정했다. 당분간 러시아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우방국과 함께 동시다발적인 러시아 제재 카드를 꺼내들었다.

1차적으로 러시아의 금융회사와 유력 인사 제재에 초점을 맞춘 뒤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아지면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에너지 및 수출 규제로 제재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결정했다.

유럽 이어 아시아까지 제재에 동참

미국이 러시아 은행 2곳과 러시아인 5명을 제재 명단에 올리자 우방국이 연쇄적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캐나다는 친러시아 분리 세력과 금융거래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일본도 러시아 국채 거래를 금지시키고 친러시아 분리 세력의 일본 내 자산을 동결하기로 했다.

전날 독일이 자국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중단하기로 한 데 이어 다른 유럽 국가들도 제재에 동참했다. 영국은 5개의 러시아 은행과 3명의 러시아인을 제재 명단에 포함시켰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러시아에 대한 신규 제재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러시아 하원 의원들과 러시아의 의사 결정권자에게 자금을 대는 은행 등이 제재 대상에 들어갔다.

긴장 고조되면 초강력 제재할 듯

하지만 이날까지 나온 제재로 러시아에 큰 타격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은행이 소규모인 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들이 자산을 대부분 다른 곳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커서다. 러시아의 국가부채 비율이 낮아 국채 발행 수요도 적다. 러시아 외무부는 “제재로 미국도 고통받을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러시아 재무부는 4조5000억루블(약 560억달러)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국채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에도 시장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CNN은 “사실상 상징적 제재”라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역시 “이번 조치가 1차 제재”라며 “러시아가 추가 행위를 하면 제재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추가 제재로는 국제금융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제외가 꼽힌다. 러시아의 금융회사들을 이 결제망에서 퇴출하면 러시아 은행과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러시아에 반도체 등 주요 물자 수출을 금지하는 ‘화웨이식 제재’도 거론된다.

푸틴 “외교적 해법 모색한다”지만

우크라이나 현지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안보위원회는 친러 반군이 통제하고 있는 지역을 제외한 국가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로 결정했다. 예비군 소집에도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직원들은 대피를 시작했다. 친러시아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은 러시아가 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공세가 격화했다며 “이들이 언제든 쳐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미국이 동유럽에 F-35 전투기 최대 8대와 AH-64 아파치 공격 헬기를 추가로 배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기 전까지 대화 채널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의 회담 직후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24일로 예정했던 미·러 외무장관 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당분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조국수호의 날 기념 연설에선 “러시아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러시아의 국익, 우리 시민들의 안보는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외교적 대화에는 나서겠지만 러시아 국익에 반하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김리안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