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 중인 미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격돌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을 찾기 위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러시아는 갈등 야기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복수라며 러시아 주재 미국 외교관을 추방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철군 여부와 교전 책임을 놓고도 부딪치고 있어 양국 간 반목은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다음주에 이뤄질 예정인 미·러 외무장관 만남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美 “러, 우크라이나 불가침 선언해야”

美 "러, 불가침 선언하라"…러 "우크라 NATO 가입 금지법 만들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늘이라도 분명하게 선언할 수 있다”며 불가침 선언을 촉구했다. 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구실을 조작할 수 있으며 러시아가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미 정보당국의 판단을 소개했다. 또 “러시아 정부 통제를 받는 언론이 가짜 정보를 퍼뜨리고 전쟁을 정당화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대중의 분노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계획이 없다고 선언하기를 희망했으나 그들은 계속 허위정보와 선동적 수사를 반복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라며 수일 내 침공이 시작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러 “우크라이나 NATO 가입 막아야”

러시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세르게이 베르쉬닌 러시아 외무차관은 ‘러시아가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는 블링컨 장관의 언급에 대해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일축했다. 베르쉬닌 차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나리오는 위험한 주장”이라며 “러시아군이 훈련을 마친 뒤 국경에서 철수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 사이의 포격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평화협정 이행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수천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법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막아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NATO 회원국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연합훈련을 해서는 안 되며,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외국 무기들은 모두 우크라이나 밖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그럴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대응이 있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

외교적 해결 가능할까

러시아는 이날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의 바트 고먼 부대사를 추방했다. 미국 측의 워싱턴 주재 러시아 고위 외교관 추방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공사와 참사를 근거 없이 추방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정당한 이유 없는 추방이자 긴장 고조 행위”라고 반발했다.

미국과 NATO는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동유럽 국가 쪽으로 병력과 화력을 모으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미국의 최정예부대로 꼽히는 제82공수사단 약 3000명이 추가로 폴란드에 배치됐다. 기존에 추가 파견된 1700명을 더하면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폴란드 주둔 병력만 5000명을 늘렸다. 루마니아 병력도 기준의 두 배 수준인 2000명으로 확대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기싸움을 하면서도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8일 전화통화를 했다. 블링컨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다음주 회담하는 데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외교적 해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정상들과 통화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도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