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디지털 유로화(e-유로) 도입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

ECB 이사회는 14일(현지시간) 디지털 유로화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일단 앞으로 2년 동안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EU 19개 회원국)에서 실물화폐 대신 쓸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설계한다는 계획이다. 설계 단계에는 법제화, 위험도 측정, 결제 등 환경 구축 계획 등이 포함된다. ECB나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디지털 지갑에 보관하고 결제를 할 수 있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디지털 시대에 시민과 기업이 가장 안전한 통화인 중앙은행 통화에 계속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존의 지폐, 동전을 디지털 유로화가 100% 대체하지는 않으며 보완하는 형식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ECB는 덧붙였다.

파비오 파네타 ECB 이사는 이날 ECB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2년간 설계 작업을 마무리한 뒤 디지털 유로화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며 예상 소요기간은 3년”이라고 언급, 빠르면 2026년에 디지털 유로화가 등장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지불수단으로써 현금의 역할이 약화하고 있다”며 “통화 공급 임무를 지닌 중앙은행은 변화에 맞춰 대담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디지털 화폐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유로화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정보기술(IT) 기업 페이스북은 미 달러에 연동해 가격변동성을 줄인 암호화폐(가상화폐)인 스테이블코인 ‘디엠’ 출시를 추진 중이다. 프랑수아 빌로이 드골로 프랑스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연설에서 “새로운 디지털 화폐가 늘고 현금 사용량이 줄어들면 중앙은행의 입지가 약해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디지털 위안화의 부상을 경계하기도 했다. 미 중앙은행(Fed)도 디지털 달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