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통과와 중국 경기 침체 여파로 2021년부터 부진의 늪에 빠져 있던 홍콩 증시가 4월 들어 급반등하고 있다. 주가가 역대 최고점 대비 절반 이상 하락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저점 매수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미국과 일본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홍콩 시장의 매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홍콩 3년 만에 강세장…AI·부동산株 달렸다

中 부동산 부양책 기대감 반영

30일 홍콩 증시에서 항셍지수는 전날보다 0.09% 오른 17,763.03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7거래일 연속 상승세다. 항셍지수는 전날 장중 한때 2.2% 급등했지만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일부 상승분을 반납했다. 항셍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1월 저점보다 20% 오른 17,953을 넘기면 기술적인 강세장에 진입한다.

홍콩 증시는 2020년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사실상 무너뜨린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외국인 투자자 이탈로 3년 넘게 저조한 흐름을 보였다. 여기에 중국 부동산발(發) 경기 침체도 악재로 더해졌다. 1월 항셍지수는 역대 최고점인 2018년 1월 대비 55%가량 하락했다.

연초 주가가 반 토막 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저점 매수 기회를 잡기 위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업종별로는 정보기술(IT)과 부동산 부문이 주가 상승세를 이끌었다. 항셍지수 내 30개 기술기업을 묶은 테크인덱스는 한 달 새 6.78% 상승하며 전체 지수 수익률(4.81%)을 웃돌았다. 지난 24일 중국 인공지능(AI) 전문기업 몹보이가 상장 첫날 시가총액 54억8900만홍콩달러(약 9700억원)를 모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중국 AI 기업인 센스타임도 23일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센스노바 5.0을 발표해 주가를 두 배가량 끌어올렸다.

부동산 부문에선 이번주 중국 정부가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부각되면서 주가 상승 흐름에 기여했다. 건설 업종은 29일 하루 만에 12% 오르며 2022년 11월 이후 최고 상승 폭을 기록했다. 2022년 7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부동산 그룹 시마오홀딩스도 61%가량 급등했다. 장하오 그랜퍼드캐피털 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 정부가 미완성 사업을 매입해 수요 촉진에 주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투자자들이 (중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 전환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美·日 증시 대비 저평가”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증시가 주춤한 것도 투자자들이 홍콩 증시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는 3월 사상 처음으로 40,000선을 돌파했으나 4월 들어 4.69%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지수는 2.43%, 유로스톡스600지수는 0.05% 내렸다. 첸 궈 차이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식 배분이 일본에서 홍콩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홍콩 증시 유동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홍콩증시의 시장 가치도 세계 주요 주가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항셍지수 주가수익비율(PER)은 30일 9.99배로 닛케이225지수(27.07배), S&P500지수(27.7배)에 비해 현저히 낮다. 상하이 HSBC 진트러스트펀드매니지먼트의 션 차오 전략가는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홍콩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글로벌 자산의 리밸런싱으로 중국 자산을 다시 편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같은 반등이 일회성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중국 증권사 CICC의 케빈 리우 주식전략가는 “이번 랠리는 위험 방어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