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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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권리를 거래하는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고금리 등으로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친환경 기술 기업들은 세액공제 권리를 판 돈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대기업은 이를 사들여 절세 혜택을 누린다는 점에서 '윈윈 거래'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투자자문사 에버코어ISI는 16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IRA를 통해 AMPC(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크레딧, 이하 세액공제 권리)의 제3자 양도를 폭넓게 허용한 뒤 관련 시장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 시장에 풀릴 세액공제 권리 규모는 470억달러로 추산하고, 2030년이면 1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발효된 IRA는 그해 12월 31일부터 미국에서 생산 및 판매된 풍력·태양광, 배터리 등 부품에 대한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자국 내 친환경 첨단 기술 관련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미 정부는 IRA 이전에도 재생에너지 부문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해당 권리를 사고팔 수 있게 했었다. 다만 거래 대상이 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 '세액 투자 금융(tax equity financing)'으로 참여한 은행, 사모펀드 운용사 등에 국한된 탓에 "판이 커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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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의 핵심은 세액공제 폭과 대상을 늘린 것뿐만 아니라 친환경 프로젝트와 무관한 제3자에게도 세액공제 권리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데 있다. 고금리, 인플레이션 등으로 자금 사정이 열악해진 친환경 기술 산업 부문은 세액공제 권리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의 세금 환급 시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세금 부담을 덜고 싶은 기업은 저렴하게 매입한 세액공제 권리를 통해 절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해 연말 미국 태양광 모듈 제조사 퍼스트 솔라는 핀테크기업 파이저브에 세액공제 권리를 1달러당 0.96달러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해 총 7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지난해 에너지기업 엔지로부터 8000만달러 규모의 세액공제 권리를 사들인 데 이어 최근 태양광 패널 제조사 실팹 솔라와도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은 이와 관련된 하이브리드 거래 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기업 아레본과 3억5000만달러짜리 세액 투자 금융을 체결해 배터리저장장치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여기서 나온 세액공제 권리는 투자은행 스티펠에 판매하면서다.
"테일러 스위프트 남친도 팔았다"…세금 감면받을 권리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투자은행 훌리한 로키의 한 전무이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세액공제 권리의 제3자 판매 조항은 게임체인저"라며 "기업 납세자들에게 세액공제 권리를 구매하는 건 이제 일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액공제 권리의 주요 구매자 중에는 석유가스 기업들이 30% 가량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석유 중개업체인 비톨이 아방그리드로부터 1억달러 상당의 세액 공제권을 구매한 게 대표적이다.

영국 발전기업 드랙스는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에 대한 세금 부채가 없는 외국인 투자자들로서는 세액공제 권리를 판매할 수 있는 조항이 더욱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드랙스는 최근 미국에 탄소포집저장(CCS) 시설을 갖춘 목재펠릿 연료발전소를 건설키로 해 미 정부로부터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남자친구인 미국의 유명 미식축구 선수 트래비스 켈스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프로젝트도 회사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나온 세액공제권을 판매해 영화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