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 한국을 허브로 러시아 알루미늄 중개무역 본격화 [원자재 포커스]
씨티, JP모간, 골드만삭스 제치고 금속 원자재 시장 진출
재고 과잉 상황...다른 은행들 손 안대는 틈새 노려


미국 씨티그룹이 지난 몇 개월 동안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10만t 가량의 알루미늄 현물과 4만t의 아연 현물 등 3억달러(약 4000억원) 규모의 금속을 사들였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씨티는 대만 해안 도시 가오슝에 물류창고를 마련해 한국·싱가포르의 LME 창고에서 물건을 사 모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지난 8월에도 LME에서 한국 전남 광양시의 물류창고에 있는 7만5000t의 알루미늄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 물량은 러시아 루살이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가 금속 원자재 시장에 뛰어든 것은 현재 현물 가격이 선물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콘탱고' 현상이 극대화되면서 현물 가격과 선물 가격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8월 알루미늄 가격은 현물 가격이 선물에 비해 15년 만에 가장 싼 가격에 거래됐고, 구리도 20년 만에 가장 격차가 커졌다. 아연 역시 10년 만에 가장 큰 콘탱고에 근접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원자재 시장에서 JP모간이나 골드만 삭스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씨티그룹은 본격적으로 금속 원자재 중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대규모 소매 수신 기반을 가진 씨티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다른 은행에 비해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JP모간은 지난해 LME의 니켈 파동 여파로 금속 사업 일부에서 철수했다. 씨티의 원자재 팀에는 과거 금속 금융 분야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였던 도이치뱅크 출신 트레이더들이 가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LME의 주요 6개 금속 재고는 올해 초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중국의 느린 경제 회복과 글로벌 제조업 침체로 65%가량 상승해 최근 16개월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의 바이어들이 기피하는 러시아 알루미늄이며, 이 물량의 주요 배송 허브로 자리 잡은 한국에 있다.

러시아산 알루미늄 거래를 금지하는 전면적인 제재는 없지만, 미국은 지난 2월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이 전쟁에 사용된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며 러시아산 알루미늄에 2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미국 알코아와 노르웨이의 노르스크 하이드로 등은 러시아산 알루미늄을 기피하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