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결제시장에서 ‘킹달러’로 불리는 미국 달러화의 입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행정부의 잇단 경제 제재에 불만을 품은 개발도상국·신흥국이 일종의 ‘반(反)달러 연대’를 결성하면서다. 디지털 위안화 등을 전격 도입하며 글로벌 결제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은 이 기회를 통해 달러화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美 제재 두려움에 脫달러

아르헨, IMF빚 위안화로 상환…'킹달러' 흔들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위안화가 달러화에 반감을 품은 국가들의 빈틈을 파고들어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 아르헨티나는 중국과 통화 스와프(두 국가가 현재의 환율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돈을 상대국과 교환)를 맺었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받은 총 440억달러 규모의 차관 중에서 상환일이 임박한 27억달러의 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이 100%를 넘는 초인플레이션 등으로 아르헨티나 외환보유고에는 달러가 바닥난 상태다.

이때 중국이 아르헨티나에 손을 내밀었다. 아르헨티나는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통해 IMF 차관 중 17억달러를 위안화로 상환하고 디폴트를 모면했다. 이에 대해 세르히오 마사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우리는 외환보유고에 있는 달러화엔 단 1달러도 손을 대지 않고 이번 문제를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의 한 고위급 경제 관료는 “(우리가 IMF에 위안화로 대금을 상환한 것은) 국제 금융 시스템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런 추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영구적인 변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4월엔 방글라데시도 러시아 측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대금을 지급하는 통화 수단으로 위안화를 택했다.

제3세계 국가들이 달러화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주된 배경으로는 미 행정부의 경제 제재가 거론된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 경제 제재 조치를 할 때 국제 달러 결제망(SWIFT) 퇴출을 유력 카드로 활용해왔다. 달러화가 국제 무역·금융에서 차지하는 지배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달러 결제망 퇴출은 해당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미국의 이런 제재에 대한 두려움이 각국의 탈(脫)달러화를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틈새 파고든 中 위안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의 제재 대상 개인 및 단체 목록에는 1만2000개 이상의 제재 대상이 나열돼 있다. FT는 “미국 대통령들이 외교 안보적인 사안에서조차 ‘저비용’ ‘무혈’ 해결 방안으로 경제 제재를 선호하면서 지난 10년 사이에 제재 대상이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 같은 균열점을 파고들어 위안화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금융 제재를 가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특히 작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대대적인 제재를 받은 뒤 중국의 탈달러화 결집 시도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한 중국 관료는 “미국은 재정적 힘을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미국 달러화의 헤게모니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언젠가 우리도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중국 당국은 역외자본시장에서 위안화 유동성을 더 많이 공급하고 있다. 또 SWIFT에 맞서는 결제 시스템을 설립하는 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국경간위안화지급시스템(CIPS)을 통해서다. 지난해 CIPS 총 결제액은 20%가량 증가해 97조위안으로 불어났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출시한 것도 아예 국제 결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아도 되게끔 설계한 방편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