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단순히 저축하는 것만으론 인종 간 부(負) 격차를 줄이기 쉽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백인이 흑인보다 ‘금수저’로 태어날 확률이 높고, 출생과 동시에 정해진 ‘계급’을 근로소득으로 극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 간 자산 격차는 8배에 달한다.

10일 마켓워치에 따르면 보스턴 연방준비은행과 브랜다이스대 소속 연구원들은 비영리단체인 ‘존 T 고먼 재단’과 함께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같은 분석을 소개했다.

연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 백인 가족의 자산 중간값은 18만8200달러(약 2억5000만원)였다. 흑인 가족의 경우 2만4100달러(약 3197만원)에 불과했다.

연구원들은 이 같은 격차가 “정책과 관행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고 짚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레드라이닝(Redlining)’이다.

레드라이닝은 말 그대로 땅 위에 붉은 선을 긋듯 일정 지역을 지정해 대출·보험 등 금융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색 인종이나 유대인 등 사회적 차별을 당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가 주 타깃이었다. 1930년대 미국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시행한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백인 주택 소유자에게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특혜를 통해 자산 축적을 지원해 왔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이 같은 자산 격차는 대물림된다.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돈이 돈을 낳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상속받은 자산을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 어렵지 않게 재산을 불려 나갈 수 있다. 이들은 경력 개발을 위해 빚을 지면서까지 교육받을 필요가 없고, 서슴지 않게 자식 세대에 물려줄 자산을 구입한다. 자식들은 물려받은 자산을 또다시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미 중산층 사회에서 상속된 부는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알렉시스 만 브랜다이스대 방문 학자는 “성실하게 일해 얻은 소득을 저축해 모은 ‘적극적 자산’은 상속 등으로 얻은 ‘소극적 자산’보다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며 “상속된 부가 중산층에겐 생활의 기반”이라고 짚었다.

결과적으로 ‘금융 문맹’ 퇴치나 저소득층의 저축 독려에 초점을 둔 정부 정책들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연구원들은 단지 이 같은 구조적 불평등을 먼저 제대로 직시한 후에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사라 차간티 보스턴 연은 지역사회 부문 연구 부국장은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적 동인을 재조명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전통적인 부 창출 방식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주택조합을 활용한 부동산 공동 소유, 기업 내 우리사주조합 운영과 함께 고액 자산 매입시 계약금 지원, 기존 재산 압류 방지 등을 활용해 저소득층의 기존 재산을 보호하는 방식이 점진적 자산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