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시아 금융위기가 걱정인 이유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미국 증시가 한 달 가까이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다우지수는 4주 연속, S&P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3주째 내리막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만들어 낸 합작품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 봉쇄령에 미국의 긴축이 더해지면서 글로벌 증시를 혼수상태에 빠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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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주엔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들의 난도질이 가장 컸습니다. 50bp(1bp=0.01%포인트) 정도의 '빅 스텝' 인상을 뛰어넘은 75bp의 '자이언트 스텝' 인상을 얘기했습니다. 5월 빅스텝을 기정사실화하고 3번 내리 50bp 올리겠다는 '트리플 빅스텝'까지 거론했습니다. 금리 초민감주인 기술주들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이번주엔 초우량 기술주가 늪에 빠진 미국 증시 구하기에 나섭니다. 구독자 급감으로 시장에 충격을 준 '넷플릭스 쇼크'를 만회하기 위해 강타자들이 줄줄이 대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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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가 대표주자입니다. 과연 '빅테크'가 '빅스텝'을 이길 수 있을까요. 다시빅테크의 어닝 서프라이즈가 빅스텝 쇼크를 잠재울 수 있을까가 관심입니다.

둘째 관전포인트는 성장과 물가의 싸움입니다. 복합적인 이유로 성장률은 추락하고 물가는 치솟고 있습니다. 그 흐름의 끝은 어디일까요. 언제 정점을 찍고 반전을 꾀할 수 있을까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번 주에 나오는 미국과 유럽의 1분기 성장률과 미국의 3월 개인소비지출(PCE)이 그 단서를 보여줄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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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증시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기승전 우크라이나'입니다. 러시아가 벌인 참극 탓에 우크라이나 동부는 끔찍하지만 서부는 미국 국무장관이 방문할 정도로 나아졌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공존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변함없는 관심사입니다.

'빅스텝'으로 저개발국들의 줄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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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이 다음달 FOMC에서 기준금리를 50bp(1bp=0.01%포인트)를 올려야 한다는 '빅스텝' 인상을 공식화했습니다. 나아가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 연달아 50bp를 인상할 것'이라는 시장 예상에도 공감을 표했습니다.
다시 아시아 금융위기가 걱정인 이유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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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올해 FOMC 표결권을 보유한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50 bp가 아니라 75bp 인상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벌써부터 금리 선물시장에선 6월 FOMC에서 75bp를 올릴 확률을 91%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무조건 빅스텝을 외치고 있지만 금리 과속으로 일어날 부작용들을 생각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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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저성장입니다. 금리를 올리면 시중 돈이 마릅니다.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부채 위기입니다. 가계 기업할 것 없이 빚부담에 허덕이고 정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국에선 가계가 가장 문제고 미국에선 정부가 제일 심각합니다. 한국의 가계부채, 미국의 정부부채는 금리 급등 시대의 골칫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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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저개발국 또는 신흥국의 위기입니다. 긴축 시대엔 돈은 안전자산과 선진국으로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과속은 신흥국보다 미국 금리가 더 높은 '금리역전' 현상을 야기합니다. 신흥국 증시에서 돈이 빠지는 '엑소더스'가 일어날 게 명약관화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해 신흥국의 환율도 엉망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금융시장이 취약한 신흥국들은 속수무책입니다. 게다가 저개발국들은 중국과 미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돈을 못갚고 있는 저개발국들이 부지기수인데 금리가 오르면 아예 디폴트(채무불이행)나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이 선언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몰려 있는 저개발국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의 최대 채권국은 중국이어서 봉쇄령과 수출 부진으로 삐끗하고 있는 중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줍니다. 이렇게 되면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 이어 미국도 '성장률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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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금리를 올리겠다는 것은 당연히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월가는 3월이 미국 인플레이션 정점으로 기대했지만 파월 의장은 '3월 정점론'을 부정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파월 주장에 동조했습니다. IMF는 2분기나 3분기까지 물가 상승률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봤습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성장과 인플레의 앙숙 관계 일단을 이번주 후반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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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에 미국 1분기 경제성장률(GDP) 속보치가 발표됩니다. 미국의 성장률은 속보치와 잠정치, 확정치로 세 번에 걸쳐 나옵니다. 연율로 환산한 미국의 1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0.8~1.1%로 지난해 4분기 기록한 6.9%에서 크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코로나19발 인플레이션에 우크라이나발 위기가 겹친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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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엔 유럽연합(EU)도 1분기 성장률을 내놓습니다. 미국은 그나마 낫지만 유럽이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직 시장에선 EU의 1분기 성장률 전망치가 4.8~5.1%로 직전인 지난해 4분기(4.6%)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아시아 금융위기가 걱정인 이유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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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가 완전히 반영된 2분기엔 더 심각해질 수 공산이 큽니다. 중국에 이어 미국 유럽도 저성장에 본격적으로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Fed도 물가 참고지표 바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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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날 Fed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3월 PCE 물가가 나옵니다. 앞서 이달 초 나온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5% 상승으로 41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며 시장에 충격을 줬습니다.

PCE는 다소 애매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시장은 보고 있습니다. 3월 헤드라인 PCE는 6.8% 안팎의 상승으로 2월(6.4%)보다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반면 에너지와 식품을 뺀 3월 근원 PCE는 전월 대비 0.3%, 전년 대비 5.3%로 2월(각각 0.4%, 5.4%)보다 낮아질 것으로 월가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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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렇게 나온다면 '3월 물가 정점'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착시가 있습니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유가와 곡물가 상승입니다. 근원 PCE엔 이 주범들이 빠져 있습니다.

그동안 Fed가 가장 눈여겨 봐 왔던 게 근원 PCE입니다. 이 때문에 '푸틴발 인플레이션'과 '시진핑발 인플레이션'가 겹친 현 시점에서 근원 PCE를 핵심 지표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빅테크'가 '빅스텝'을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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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이 인플레이션의 정점인 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주가 어닝시즌의 절정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S&P500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 중 160개 기업 가량이 이번 주에 실적을 내놓습니다. 이 가운데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로 대표되는 '트리플 A'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더블 M'가 무너진 빅테크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경기재개(리오프닝) 관련주인 음료와 자동차의 양대산맥 기업들도 어두운 증시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을까가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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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최고의 A매치 데이는 26일 화요일과 28일 목요일이 꼽힙니다. 26일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실적을 공개합니다. 28일은 애플과 아마존, 인텔, 트위터 외에 로빈후드와 마스터카드 등도 실적을 발표합니다.

이밖에 오래된 경쟁 관계인 GM(26일)과 포드(27일), 코카콜라(25일)와 펩시코(26일), 비자카드(26일)와 마스터카드(28일), 엑손모빌과 쉐브런(이상 29일) 등도 실적을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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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주는 실적 및 경제 지표 발표가 몰려 있는 26일과 28일, 29일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승부처에서 '빅테크'가 '빅스텝'을 이겨내느냐, 성장이 물가의 견제를 극복하느냐, 우크라이나에서 희소식을 전할 수 있느냐에 따라 증시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 가지 전쟁에서 1승만 거둬도 증시 분위기는 바뀔 수 있는 만큼 시장을 열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