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채권시장이 1999년 이후 22년 만에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는 진단이 나왔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후 경기 부양 정책을 가동했던 각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다. 내년 미국 중앙은행(Fed)이 제로금리 정책을 포기하면 채권 가격이 급격히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세계 채권 지수 하락

2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클레이스 글로벌 채권 지수는 올 들어 4.8% 하락했다. 이 지수는 68조달러에 이르는 세계 국채와 회사채시장을 평가하는 기준 지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99년 이후 채권 가격이 가장 크게 떨어졌다고 전했다.

투자자는 올해 국채시장에서 두 차례 대규모 투매 행렬을 보였다. 올초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 전략이 금융자산시장을 이끌었다. 경기가 회복하고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판단한 투자자는 채권을 팔고 경기순환주를 대거 매수했다. 장기 국채시장이 큰 타격을 받았다.

후반기 들어선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시장을 지배했다. 물가가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급등하자 단기 국채 가치가 급락했다. 금리가 올라 채권 투자 수요가 떨어질 것이란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시장 지배한 리플레이션 트레이딩

인플레 짓눌려…채권시장 22년 만에 '최악'
최근 40년간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온 세계 채권 가격이 하락한 것은 흔치 않다고 FT는 전했다. 채권 가격이 가장 가파르게 곤두박질한 때는 1999년이다. 당시 닷컴 거품 영향으로 정보기술(IT) 기업 주식에 투자금이 몰리자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그해 바클레이스 글로벌 채권 지수는 5% 떨어졌다. 2005년과 2013년, 2015년에도 각각 채권 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올해만큼 하락폭이 크진 않았다.

올해 국채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익률은 급등했다. 올해 초 연 0.93%로 시작한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한때 연 1.67%까지 치솟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만에 6.8% 올랐다는 발표가 나오면서다. 지난 23일 기준 연 1.5%까지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2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올초 연 0.11%에서 지난 23일 연 0.71%까지 급등했다.

하락세 당연 vs 내년 상승할 것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이 당분간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가 여전히 잡히지 않은 데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높일 수 있어서다. 채권시장에 여전히 위험 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제임스 아테 애버딘스탠더드투자사 매니저는 “물가상승률이 6%를 넘는 시기에 채권시장이 나쁜 투자처라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중앙은행이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 인상에 나서면 채권시장에 추가 충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내년 채권시장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채권 가격이 2년 연속 하락했던 시기는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올 3월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연 1.74%까지 올랐지만 후반기 들어 상승 동력을 얻지 못한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탰다. 내년 Fed는 세 차례, 영국 중앙은행은 네 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중앙은행도 돈줄을 죄겠다고 했지만 이들 국가의 장기 국채에 투자 수요가 몰리며 수익률은 떨어졌다.

닉 헤이스 악사투자사 매니저는 “중앙은행이 너무 빠르게 긴축 정책을 시행하면 경기 회복을 방해하거나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며 “최근 장기 국채가 인기를 끈 것은 투자자가 이런 전망에 무게를 뒀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주식시장이 조금만 하락해도 투자자는 다시 채권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