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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위
강성위
The Lif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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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공방(漢詩工房)
자는 백안(伯安), 호는 태헌(太獻)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연구박사, 서울대학교 중국어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조그마한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저술 활동을 하며 한시(漢詩) 창작과 번역을 지도하는 한편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출강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창작 한시집으로 ≪술다리[酒橋]≫ 등이 있다.
  • 도롱이-비는 실실 오고 36, 김승종

    [원시] 도롱이 - 비는 실실 오고 36 김승종 비 실실 오는 추석 오백 리 뿌옇게 흔들리는 빗길 가지 못한 신덕(新德) 옛집 금시서옥(今是書屋) 툇마루 아래 삭는 도롱이 돌아간 아버지의 어깨 어깨에 걸치고 빗길로 나선다 [태헌의 한역] 蓑衣(사의) 細雨濛濛仲秋節(세우몽몽중추절) 五百里路煙中遐(오백리로연중하) 不肖今未歸(불초금미귀) 新德有古家(신덕유고가) 今是書屋退軒下(금시서옥퇴헌하) 蓑衣一襲自朽枯(사의일습자후고) 遙見吾先親(요견오선친) 肩蓑向雨途(견사향우도) [주석] * 蓑衣(사의) : 도롱이. 짚 혹은 띠풀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 細雨(세우) : 가랑비. / 濛濛(몽몽) : 자욱한 모양, 부슬부슬 내리는 모양. / 仲秋節(중추절) : 중추절, 추석. * 五百里路(오백리로) : 오백 리 길. / 煙中(연중) : 안개 속. 원시의 ‘뿌옇게’를 상황에 맞게 역자가 고쳐 번역한 것이다. / 遐(하) : 멀다, 아득하다. / 원시의 ‘흔들리는’을 상황에 맞게 역자가 고쳐 번역한 것이다. * 不肖(불초) : 불초, 이 몸. 부모님 등에 대해 자신을 낮추어 칭한 말로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이다. ※ 원시에서 생략된 주어를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충한 것이다. / 今(금) : 지금. ※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未歸(미귀) : 돌아가지 못하다, 귀성하지 못하다. * 新德(신덕) : 신덕리. 경북 안동에 있는 마을 이름. / 有(유) : ~이 있다. / 古家(고가) : 옛집. * 今是書屋(금시서옥) : 시인의 선친인 김시박(金時璞) 선생의 서재(書齋) 이름. / 退軒(퇴헌) : 툇마루. / 下(하) : ~ 아래. * 一襲(일습) : (옷, 그릇, 기구 따위의) 한 벌. / 自(자) : 스스로, 저절

    2023-09-26 10:00
  • 秋日作(추일작), 鄭澈(정철)

    [원시]秋日作(추일작) 鄭澈(정철)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白髮不禁長(백발불금장) [주석]* 秋日(추일) : 가을날, 가을. / 作(작) : 짓다. ※ 이 시는 제목이 ‘우야(雨夜)’로 된 판본도 있다. ‘雨夜’는 비 내리는 밤이라는 뜻이다.* 鄭澈(정철, 1536~1593) :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계함(季涵)이며 호는 송강(松江)이다. 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 김인후(金麟厚)와 송순(宋純), 기대승(奇大升)에게 학문을 배웠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에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서 최영경(崔永慶)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들을 추방하였다.* 山雨(산우) : 산 비, 산에 내리는 비. / 夜(야) : 밤, 밤에. / 鳴竹(명죽) : 대나무를 울리다.* 草蟲(초충) : 풀벌레. / 秋(추) : 가을, 가을에. / 近床(근상) : 침상에 가깝다. 이 ‘近床’이 ‘입상(入床)’으로 된 판본도 있다. ‘入床’은 침상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流年(유년) : 흐르는 세월. / 那可駐(나가주) : 어찌 머물게 할 수 있으랴, 어찌 머물게 하랴.* 白髮(백발) : 백발. / 不禁(불금) : 견디지 못하다, 감당하지 못하다. / 長(장) : 길다, 자라다. [번역]가을날에 짓다 산 비는 밤중에 대나무를 울리고풀벌레는 가을이라 침상에 가깝네.흐르는 세월을 어찌 머물게 하랴!백발 자라는 걸 견디지 못하겠네. [번역노트]이번 칼럼의 시로 역자가 이 시를 고르게 된 것은 요즘에 딱 어울릴 만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몇 해 전 이즈음에 역자의 연구실로 한시를 공부하러 온 늙은 학생(^^) 한 분이 이 시의 제4구인 “白髮不禁長(백발불금장)”의 ‘禁’에

    2023-09-12 10:00
  • 七夕(칠석), 晏幾道(안기도)

    [원시]七夕(칠석) 晏幾道(안기도) 雲幙無多斗柄移(운막무다두병이)鵲慵烏慢得橋遲(작용오만득교지)若敎精衛塡河漢(약교정위전하한)一水還應有盡時(일수환응유진시) [주석]* 七夕(칠석) : 전설 속의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는 날인 명절 음력 7월 7일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이날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을 가리키기도 한다. * 晏幾道(안기도) : 북송(北宋)의 무주(撫州) 임천(臨川) 사람으로 자는 숙원(叔原)이고, 호는 소산(小山)이다. 원풍(元豊) 5년(1082)에 영창(潁昌)의 허전진(許田鎭)을 감독하다 퇴직하고 당시 수도였던 개봉(開封)에서 살았다. 문장에 능하고 사(詞)도 잘 지었는데, 감상(感傷)을 드러낸 작품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雲幙(운막) : 구름 장막. / 無多(무다) : 많지 않다, 두텁지 않다. / 斗柄(두병)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국자 모양으로 보았을 때, 그 자루 부분이 되는 자리에 있는 세 개의 별을 가리킨다. 간단히 북두성 자루로 이해하면 된다. / 移(이) : 옮기다, 자리를 옮겨가다.* 鵲慵(작용) : 까치가 게으르다. / 烏慢(오만) : 까마귀가 태만하다. / 得橋遲(득교지) : 다리를 짓는 게 더디다, 다리를 놓는 게 더디다.* 若(약) : 만약, 만일. / 敎(교) : ~로 하여금, ~를 시켜 ~을 하게 하다. / 精衛(정위) :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이다. 전설에 따르면, 염제(炎帝)의 딸인 여와(女娃)가 동해에 놀러갔다가 빠져 죽은 뒤에 정위라는 새로 변했는데, 그 원한을 갚으려고 늘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입에다 물고서 동해에 빠뜨려서 바다를 메우려 했다고 한다. / 塡(전) : ~을 메우다. / 河漢(하한) : 은하(銀河), 은하수(銀河水).* 一水(일수) : 하나의

    2023-08-22 10:00
  • 무인도, 반칠환

     [원시]무인도  반칠환 오직 사람 하나 없어무, 인, 도 경전도 사원도 없으니죄도 없다고 끼루룩 끼루룩 아무도 신을 경배 않으나신의 뜻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태헌의 한역]無人島(무인도) 唯由無人居(유유무인거)稱曰無人島(칭왈무인도)有海鷗(유해구)戛然道(알연도)無經無寺院(무경무사원)罪亦決無造(죄역결무조)無人呼神拜(무인호신배)神意最善保(신의최선보) [주석]* 無人島(무인도) : 사람이 살지 않는 섬.* 唯由(유유) : 오직 ~로 말미암아, 오로지 ~ 때문에. / 無人居(무인거) : 사는 사람이 없다.* 稱曰(칭왈) : ~라고 칭하다, ~라고 말하다.* 有海鷗(유해구) : 갈매기가 있어, 어떤 갈매기가. ※ 이 대목은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구절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戛然(알연) : 맑고 명랑한 새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인데 여기서는 원시의 “끼루룩 끼루룩”을 한역한 말로 쓰였다. / 道(도) : ~라고 말하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無經(무경) : 경전(經典)이 없다. / 無寺院(무사원) : 사원이 없다.* 罪(죄) : 죄. / 亦(역) : 또한, 역시. / 決(결) : 결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無造(무조) : 지어짐이 없다, 지어지지 않는다, 없다.* 無人(무인) : ~하는 사람이 없다. / 呼神拜(호신배) : 신을 부르며 절하다, 신을 부르며 경배하다.* 神意(신의) : 신의 뜻. / 最(최) : 가장, 최고로. / 善保(선보) : 잘 보존하다, 잘 보존되다. [한역의 직역]무인도 오직 사는 사람이 없어무인도라고 하는데갈매기가 있어끼룩끼룩 말하네경전도 사원도 없으니죄 또한 결코 지

    2023-08-08 10:00
  • 買蓑觀漲而還(매사관창이환), 金時習(김시습)

    ※ 이번 장마로 인해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수해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원시]買蓑觀漲而還(매사관창이환) 金時習(김시습) 百錢新買綠蓑衣(백전신매록사의)觀漲溪橋帶晩歸(관창계교대만귀)細雨斜風吹不斷(세우사풍취부단)一肩高聳入蓬扉(일견고용입봉비) [주석]* 買蓑(매사) : 도롱이를 사다. / 觀漲而還(관창이환) : 불어난 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다.* 金時習(김시습) :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열경(悅卿)인데, 호로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등 여러 개가 있다. 3살 때부터 시를 지을 줄 알아 신동으로 소문이 났고, 이를 들은 세종이 5살 때 불러다 상을 주어 ‘오세(五歲)’라는 별호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전국을 방랑하며 살다가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생을 마쳤다. 평생토록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유불(儒佛)을 관통한 사상과 빼어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百錢(백전) : 백 전. 시인이 상당한 돈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 新(신) : 새로. / 買(매) : ~을 사다. / 綠蓑衣(녹사의) : 초록 도롱이, 푸른 도롱이.* 溪橋(계교) : 시냇가 다리. / 帶晩歸(대만귀) : 저물녘에 돌아오다.* 細雨(세우) : 가랑비. / 斜風(사풍) : 비껴 부는 바람, 엇비슷하게 스쳐 가는 바람. / 吹不斷(취부단) :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불다.* 一肩(일견) : 한 어깨, 한쪽 어깨. / 高聳(고용) : 높이 솟다, ~을 높이 세우다. / 入蓬扉(입봉비) : 쑥대 사립문을 들어가다, 쑥대 사립문을 들어오다. &ls

    2023-07-18 10:00
  • 징검다리 - '새로운 길', 김수복

    원시징검다리새로운 길김수복길이 없으면마음과 마음 사이로징검다리를 놓아야지서로 마주보고 얼굴을 닦아주어야지가시밭길이더라도 서로 웃어주어야지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웃으며 가야지 [태헌의 한역]石矼(석강)- 「新康(신강)」 若使兩方(약사양방)無一小陌(무일소맥)心與心間(심여심간)應設矼石(응설강석) 彼此相對(피차상대)相拭面容(상식면용)雖當荊路(수당형로)須作笑閧(수작소홍) 渡川向林(도천향림)越嶺向莊(월령향장)相與拍肩(상여박견)含笑跳踉(함소도량) [주석]* 石矼(석강) : 징검다리, 돌다리.* 新康(신강) : 새로운 길. ‘康’은 보통 오달(五達)의 길, 곧 오거리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여러 군데로 막힘없이 통하는 큰 길을 가리키기도 한다.* 若使(약사) : 만약, 만약에, / 兩方(양방) : 양쪽, 양쪽에.* 無(무) : ~이 없다. / 一小陌(일소맥) : 하나의 작은 길, 작은 길 하나.* 心與心間(심여심간) : 마음과 마음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에.* 應(응) : 응당 ~을 해야 한다. / 設(설) : ~을 설치하다, ~을 놓다. / 矼石(강석) : 징검돌, 징검다리.* 彼此(피차) : 피차, 저쪽과 이쪽, 서로. / 相對(상대) : 서로 마주하다, 서로 마주보다.* 相拭(상식) : 서로 흠치다, 서로 닦아주다. / 面容(면용) : 얼굴.* 雖(수) : 비록 ~일지라도. / 當(당) : ~을 만나다, ~을 마주치다, / 荊路(형로) : 가시밭길.* 須(수) : 모름지기 ~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한다. / 作(작) : ~을 만들다, ~을 짓다. / 笑閧(소홍) : 크게 웃음, 큰 웃음.* 渡川(도천) : 내를 건너다. / 向林(향림) : 숲을 향하다, 숲으로.* 越嶺(월령) : 고개를 넘다. / 向莊(향장) : 마을을 향하다, 마을로.* 相與(

    2023-07-04 10:00
  • 心山書屋詩庭有感(심산서옥시정유감), 姜聲尉(강성위)

    [원시]心山書屋詩庭有感(심산서옥시정유감) 心山書屋有詩庭(심산서옥유시정)遠近忙閒爭現形(원근망한쟁현형)天惡俗塵時灑雨(천오속진시쇄우)花歡佳日數播馨(화환가일삭파형)女姸男俊童還秀(여연남준동환수)誦潔簫淸舞亦靈(송결소청무역령)情與酒深無剩恨(정여주심무잉한)能知雅會永年靑(능지아회영년청) [주석]* 心山書屋(심산서옥) : 심산서옥.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 위치한 건물로 서실에서는 붓글씨를 가르치고, 뒷마루와 아담한 뜨락에서는 시낭송회와 작은음악회 등을 열고 있어, 문화사랑방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 詩庭(시정) : 한글 “시뜨락”을 한역한 말이다. / 有感(유감) : 감회가 있다.* 有詩庭(유시정) : “시뜨락”이 있다.* 遠近(원근) : 멀고 가까움, 원근. / 忙閒(망한) : 바쁘고 한가함. / 爭(쟁) : 다투다, 다투어. / 現形(현형) : 모습을 눈 앞에 드러내다, 모습을 보이다. ※ 이 구절에서의 ‘遠近忙閒’은 ‘遠近과 忙閒에 관계없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天惡俗塵(천오속진) : 하늘이 속세의 먼지를 싫어하다. / 時(시) : 이따금. / 灑雨(쇄우) : 비를 뿌리다.* 花歡佳日(화환가일) : 꽃이 좋은 날을 기뻐하다. / 數(삭) : 자주. / 播馨(파형) : 향기를 뿌리다.* 女姸(여연) : 여성이 예쁘다. / 男俊(남준) : 남성이 멋지다. / 童還秀(동환수) : 아이들이 또 수려하다.* 誦潔(송결) : 낭송이 깨끗하다. / 簫淸(소청) : 퉁소(소리)가 맑다. / 舞亦靈(무역령) : 춤 또한 영묘하다.* 情與酒深(정여주심) : 정이 술과 더불어 깊다. / 無剩恨(무잉한) : 남은 한스러움이 없다.* 能知(능지) : ~을 알 수 있다. / 雅會(아회) : 아회, 고아한 모임. / 永年(영년) : 영원, 오랜

    2023-06-06 08:41
  • 종이에 베이다, 하청호

    [원시]종이에 베이다 하청호  새 책을 읽다가부드러운 종이에손을 베었다 칼날같이 벼린 말씀종이에숨어 있었다 [태헌의 한역]爲紙所割(위지소할) 某日看新冊(모일간신책)手爲柔紙傷(수위유지상)如刀磨鍊語(여도마련어)寂靜紙中藏(적정지중장) [주석]* 爲紙所割(위지소할) : 종이에 <손이> 베이다.* 某日(모일) : 어느 날.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看(간) : ~을 보다. / 新冊(신책) : 새책.* 手(수) : 손. / 爲柔紙傷(위유지상) : 부드러운 종이에 상처를 입다, 부드러운 종이에 베이다.* 如刀(여도) : 칼캍이, 칼처럼. / 磨鍊(마련) : 갈고 불리다, 갈고 벼리다. / 語(어) : 말, 말씀.* 寂靜(적정) : 고요하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紙中(지중) : 종이 속, 종이 속에. / 藏(장) : 감추다. [한역의 직역]종이에 베이다 어느 날 새 책을 읽다가부드러운 종이에 손을 베었다칼같이 갈고 벼린 말씀이고요히 종이 속에 숨어 있었던 것 [한역 노트]새 책을 읽다가 종이에 손이 베인 물리적인 사고를, “칼날같이 벼린 말씀”이 우리의 무딘 영혼이나 감성을 자극하여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정신적인 충격에 비유한 이 시는, 베인다는 그 동작으로 인하여 얼마간 오싹함을 느끼게는 해도 공포심까지 주지는 않는 듯하다. 누구나 어쩌다 한 번쯤은 책 장(張)과 같은 종이에 손이 베인 적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시인이 설정한 비유는 기발하고 뜻은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역자는 이 시를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책의 본

    2023-05-23 10:00
  • 夢魂(몽혼), 李玉峰(이옥봉)

    [원시]夢魂(몽혼) 李玉峰(이옥봉)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주석]* 夢魂(몽혼) : 꿈속의 넋.* 李玉峰(이옥봉) :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서출(庶出)이었던 그녀는 15세에 본인이 원한 바대로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버림을 받았으며, 난리 도중에 35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권의 시집(詩集)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시 32편만이 전해지고 있다.* 近來(근래) : 요사이, 요즈음. / 安否(안부) : 안부. / 問如何(문여하) : 어떠한지를 묻다. ※ 이 구절에 쓰인 동사인 ‘問’은 시구 맨 앞에 놓여야 하나 시의 운율과 구법 등의 이유로 ‘如何’ 앞에 삽입되었다.* 月到(월도) : 달이 ~에 이르다. / 紗窓(사창) : 비단 등의 가는 실로 짠 천을 바른 창. 간략히 비단 창문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 妾恨多(첩한다) : 이 몸의 한스러움이 많다. 이 대목의 ‘妾’은 자신의 신분이 첩이어서 칭한 말이 아니라, 옛날의 여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칭한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황후도 황제 앞에서는 자신을 신첩(臣妾)으로 칭하였다.* 若使(약사) : 만약, 만일. / 行有跡(행유적) : 다니는 길에 흔적이 있다, 다니는 길에 흔적이 남다.* 門前(문전) : 문 앞. / 石路(석로) : 돌길. / 半(반) : 반, 반쯤. / 成沙(성사) : 모래가 되다. [태헌의 번역]꿈속의 넋 요사이 안부가 어떠신지여쭈어 봅니다.달이 비단 창문에 이를 때면이내 몸은 한스러움이 많답니다.만일 꿈속의 넋이 다니는 길에흔적이 있는 것이라면문 앞의 돌길이반

    2023-05-09 10:00
  • 굴절, 이승은

    [원시]굴절 이승은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속입니까? [태헌의 한역]屈折(굴절) 入水瞬間(입수순간)脚腕折彎(각완절만)外見如彼(외견여피)傷處全無(상처전무)近況如何(근황여하)猶水中乎(유수중호) [주석]* 屈折(굴절) : 굴절, 휘어서 꺾임.* 入水(입수) : 물에 들어가다. / 瞬間(순간) : 어떤 일이 일어난 바로 그때, ~하는 순간.* 脚腕(각완) : 발목. / 折彎(절만) : 꺾다, 꺾이다.* 外見(외견) : 겉보기. / 如(여) : ~과 같다. / 彼(피) : 저것, 그것.* 傷處(상처) : 상처, 다친 곳. / 全無(전무) : ~이 전혀 없다.* 近況(근황) : 근황, 최근의 형편. / 如何(여하) : 무엇과 같은가, 어떠한가?* 猶(유) : 아직도, 여전히. / 水中乎(수중호) : 물속인가? ‘乎’는 의문을 유도하는 어기사(語氣詞)이다.  [한역의 직역]굴절 물에 들어가는 순간발목이 꺾입니다겉보기에 그 같을 뿐다친 곳은 전혀 없는데근황이 어떻습니까아직도 물속입니까? [한역노트]필자가 학창시절에 읽었던 글 가운데 제목과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망원경으로 원숭이를 잡는 이야기가 있었다. 원숭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망원경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보는 시늉을 하다가 망원경을 그 자리에 두고 제법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 지켜보고 있으면, 원숭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그 망원경을 가지고 꼭 사람처럼 노는데, 원숭이가 망원경을 거꾸로 잡고 볼 때에 잽싸게 다가가도 원숭이는 사람을 먼 곳에 있는 것으로 여겨 잡힐 때까지 도망을 가지 않는다는 스토리였다. 이 이야기가 실화에 기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망원경의 속성을 이용

    2023-04-25 10:23
  • 戱詩(희시) · 腹稿與腹鼓(복고여복고), 강성위(姜聲尉)

    [원시]戱詩(희시) · 腹稿與腹鼓(복고여복고) 子安腹中多書冊(자안복중다서책)文辭自拔號腹稿(문사자발호복고)伯安腹中多皮肉(백안복중다피육)世人咄咄曰腹鼓(세인돌돌왈복고) [주석]*戱詩(희시) : 재미나 장난 삼아 지은 시. / 腹稿(복고) : 뱃속[마음속]에서 이미 완성된 원고라는 뜻이다. <등왕각서(滕王閣序)>로 유명세를 더한 당(唐)나라의 시인 왕발(王勃)이 글을 지을 적에 먼저 먹을 잔뜩 갈아 놓고 술을 마신 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일어나 붓을 잡고는 줄줄 써 내려갔는데, 한 글자도 고치는 일이 없어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복고’라고 했다 한다. / 與(여) : ~과, ~와. 영어의 ‘and’에 해당하되 접속사임. / 腹鼓(복고) : 보통은 배를 내밀고 북처럼 두드리는 일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배북[북처럼 불룩한 배]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腹稿’와 한글음이 같다는 것에 착안하여 필자가 사용해본 말이다.*子安(자안) : 왕발의 자(字)이다. 왕발은 강주(絳州) 용문(龍門:지금의 산서성 직산(稷山))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일컬어졌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양형(楊炯)·노조린(盧照鄰)·낙빈왕(駱賓王)과 함께 초당(初唐) 사걸(四傑)로 칭해진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수(隋)나라의 유명한 학자인 왕통(王通)의 손자이자 시인 왕적(王績)의 조카였던 그는 27세 때에 중국 남해에 빠져 생을 마감하였다. / 腹中(복중) : 뱃 속. / 多書冊(다서책) : <읽어둔> 책이 많다.*文辭(문사) : 시를 포함한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 / 自拔(자발) : 저절로 빼어나다, 스스로 빼어나다. / 號腹稿(호복고) : “복고”를 호로 하다, 호가 “

    2023-04-11 10:00
  • 昭君怨(소군원), 東方虬(동방규)

    [원시]昭君怨(소군원) 東方虬(동방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주석]* 昭君怨(소군원) : 왕소군(王昭君)의 원망(怨望). 왕소군의 본명은 왕장(王嬙)이지만, 자가 소군(昭君)이어서 보통 왕소군으로 부른다.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으로 있다가 흉노족(匈奴族)의 추장 호한야 선우(呼韓邪 單于)에게 시집을 가서 흉노 땅에서 생을 마쳤다. 훗날 사마소(司馬昭)의 이름자인 '소(昭)'를 피휘하여 왕명군(王明君) 또는 명비(明妃)로 일컫기도 하였다.* 東方虬(동방규) : 당대(唐代)의 시인이다.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용문(龍門)에 나아가 노닐 때 수행한 관원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는 먼저 지은 자에게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상으로 주겠다고 하였는데, 좌사(左史)로 있던 동방규가 시를 가장 먼저 지어 도포를 하사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胡地(호지) : 오랑캐의 땅. 흉노족들이 근거지로 삼았던 중원 (서)북쪽의 땅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 無(무) : ~이 없다. / 花草(화초) : 꽃과 풀.* 春來(춘래) : 봄이 오다. / 不似(불사) : ~와(과) 같지 않다.* 自然(자연) : 자연히, 저절로. / 衣帶(의대) : 옷 입은 위에 매는 띠, 허리띠. / 緩(완) : 느슨해지다.* 非是(비시) : ~이 아니다. / 爲(위) : ~을 위하다. / 腰身(요신) : 허리품, 허리둘레, 몸매. [번역]왕소군의 원망 오랑캐 땅에 꽃도 풀도 없어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자연스레 허리띠가 느슨해진 거지(가는) 허리둘레 위한 게 아니라네 [번역노트]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무엇인가 일이 있는 봄이면 어김없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언급되던 이 시구를 이태백(李太白)

    2023-03-28 10:00
  • 힘, 박시교

    [원시]힘  박시교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 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태헌의 한역]力(력) 花樣年華好追憶(화양연화호추억)於我傷處亦寶石(어아상처역보석)生來受苦傷痕歷歷(생래수고상흔역력)刻如橫線昨日跡(각여횡선작일적)或於今日爲動力(혹어금일위동력)恰如松樹帶瘤長碧(흡여송수대류장벽) [주석]力(력) : 힘.花樣年華(화양연화) : 꽃과 같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花樣’은 꽃무늬, 곧 꽃과 같이 예쁜 모습이라는 뜻이고, ‘年華’는 세월, 곧 시절이라는 의미이다. / 好追憶(호추억) : 좋은 추억, 곧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뜻으로 역자가 사용한 말이다.於我(어아) : 나에게는. / 傷處(상처) : 상처. / 亦(역) : 또한, 역시. / 寶石(보석) : 보석.生來受苦(생래수고) : 살아오며 고난을 받다. 원시의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을 다소 간략하게 표현한 말이다. / 傷痕(상흔) : 상흔, 아픈 흉터. / 歷歷(역력) : 또렷하다. 원시의 “몇 개”를 아래 행의 “새겨 둔 듯한”을 고려하여 다소 과감하게 서술형으로 고쳐본 표현이다.刻如(각여) : 새겨진 것이 ~과 같다. 원시의 “새겨 둔 듯한”을 약간 달리 표현한 말이다. / 橫線(횡선) : 가로로 그은 줄, 언더라인. 역자가

    2023-03-14 10:00
  • 病後戱作(병후희작), 徐居正(서거정)

     [원시]病後戱作(병후희작) 徐居正(서거정) 醫士勸吾休飮酒(의사권오휴음주)儒家欺我酷耽詩(유가기아혹탐시)今朝破戒翻成笑(금조파계번성소)醉酒顚詩自不知(취주전시자부지) [주석]· 病後(병후): 병을 앓은 후에, 앓고 난 후에. / 戱作(희작) : 재미삼아 짓다, 장난삼아 짓다.· 徐居正(서거정) : 조선(朝鮮)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강중(剛中)이고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다. 문집에 ≪사가정집(四佳亭集)≫, ≪동인시화(東人詩話)≫ 등이 있다. 여섯 왕을 섬기며 45년간 대제학(大提學), 대찬성(大贊成) 등의 벼슬을 지냈다.· 醫士(의사) : 의원(醫員), 의사(醫師). / 勸吾(권오) : 나에게 ~을 권하다. / 休飮酒(휴음주) : 술을 마시지 말라. ‘休’는 ‘勿(물)’의 뜻이다.· 儒家(유가) : 유자(儒者), 유생(儒生), 유학자(儒學者). / 欺(기) : 업신여기다, 깔보다. ‘欺’의 목적어[賓語]는 아래 구절 전체이다. / 我酷耽詩(아혹탐시) : 내가 몹시도 시를 즐기다.· 今朝(금조) : 오늘 아침. / 破戒(파계) : 파계하다, 계율(戒律)을 깨다. / 翻(번) : 도리어, 문득. / 成笑(성소) : 웃음 짓다.· 醉酒(취주) : 술에 취하다. / 顚詩(전시) : 시에 미치다. / 自不知(자부지) : 스스로(가) 알지 못하다. [태헌의 번역]앓고 난 후에 재미삼아 짓다 의원은 나에게 술을 마시지 말기를 권하고유자들은 내가 시 몹시 즐기는 걸 깔보는데오늘 아침에 파계하고 문득 웃음을 짓나니나도 모르는 새 술에 취하고 시에 미쳤구나 [번역노트]이 시는 희시(戱詩)이다. 희시는 다소 유머러스한 내용을 담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특별한 유머도 없이 시인 스스로가 타인의 비방이나 문제

    2023-02-28 10:00
  • 눈이 녹으면, 윤선민

     [원문]눈이 녹으면 윤선민 눈이 녹으면 뭐가 되냐고선생님이 물으셨다 다들 물이 된다고 했다 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태헌의 한역]雪融(설융) 雪融爲何物(설융위하물)師傅忽然云(사부홀연운)諸生曰化水(제생왈화수)少年謂作春(소년위작춘) [주석]· 雪融(설융) : 눈이 녹다.· 爲何物(위하물) : 무슨 물건이 되는가?, 무엇이 되는가?· 師傅(사부) : 사부, 선생님. / 忽然(홀연) : 홀연, 문득.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云(운) : ~라고 말하다. 원문의 “물으셨다”를 시운(詩韻)을 고려하여 한역한 표현이다.· 諸生(제생) : 여러 학생. 원문의 “다들”을 한역한 표현이다. / 曰(왈) : ~라고 말하다. / 化水(화수) : 물이 되다, 물로 변하다.· 少年(소년) : 소년. / 謂(위) : ~라고 말하다. / 作春(작춘) : 봄이 되다, 봄을 만들다. [한역의 직역]눈이 녹으면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되지?선생님이 문득 말씀하셨다다들 물이 된다고 했지만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한역 노트]역자가 임의로 “눈이 녹으면”이라는 제목을 붙인, 시(詩)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이 글은 제법 여러 해 전부터 별다른 저자 표시 없이 인터넷상에서 매우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하여 문무학 시인의 시 <인생의 주소>와 비슷하게 이 글 역시 작자가 있음에도 익명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검색을 시도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글이 윤선민씨의 저서인 ≪웍슬로 다이어리≫(북스코프, 2008)에서 따온 것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글을 어떤 형태로든 이용할 때면 최소한의 예

    2023-02-14 10:00
  • 元月十五夜(원월십오야), 姜聲尉(강성위)

    <필자의 조부님 생전 모습>[원시]元月十五夜(원월십오야) 姜聲尉(강성위) 春風忽已着簷端(춘풍홀이착첨단)十五夜窓開未寒(십오야창개미한)天際月輪斜仄易(천제월륜사측이)紅塵世上滌愁難(홍진세상척수난) [번역]정월 대보름 밤에 봄바람이 어느덧 처마끝에 이르러보름 밤에 창 열어도 춥지를 않네하늘가 달이야 쉬이도 기울건만홍진세상 시름은 씻기 어렵구나 [주석]· 元月(원월) : 정월(正月), 음력 1월. / 十五夜(십오야) : 보름밤.· 春風(춘풍) : 봄바람. / 忽已(홀이) : 어느새, 어느덧. / 着(착) : ~에 달라붙다, ~에 이르다. / 簷端(첨단) : 처마끝.· 十五夜窓(십오야창) : 보름날 밤 창문. / 開未寒(개미한) : 열어도 춥지가 않다.· 天際(천제) : 하늘의 끝, 하늘가. / 月輪(월륜) : 둥근 달, 달. / 斜仄(사측) : 기울다. / 易(이) : ~하기가 쉽다.· 紅塵世上(홍진세상) : 홍진세상, 인간세상. / 滌愁(척수) : 시름을 씻다. / 難(난) : ~하기가 어렵다. [시작노트]이번 주 토요일은 입춘이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입춘과 정월 대보름이 연이은 것을 잠시 생각하고 있자니 필자가 아득한 옛날에 지었던 시 한 수가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필자에게는 습작기 내지 초기의 작품이 되는 이 시는, 필자가 미혼이던 그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밤에 지은 것이다. 이 시를 얘기하자면 다소 장황할지도 모르는, 시가 지어지게 된 내력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필자는 소년 시절에 조부님과 함께 거처한 날이 손자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부님은 필자가 태어나기 6년 전에 급성 질환으로 실명(失明)을 하신 상태여서, 잔심부름을 해줄 아이가

    2023-01-31 10:00
  • 연탄, 이정록

    [원시]연탄 이정록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숨구멍이 불구멍이지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헉헉대던 불구멍 탓에아비는 쉬이 부서지지갈 때 되면 그제야낮달처럼 창백해지지 [태헌의 한역]煉炭(연탄) 父親似煉炭(부친사연탄)氣孔卽火孔(기공즉화공)家中低暗處(가중저암처)太息以火湧(태식이화용)火孔太喘喘(화공태천천)父親易碎裂(부친이쇄렬)去時乃方始(거시내방시)能白如晝月(능백여주월) [주석]· 煉炭(연탄) : 연탄.· 父親(부친) : 부친, 아버지. / 似煉炭(사연탄) : 연탄과 같다.· 氣孔(기공) : 기공, 숨구멍. / 卽(즉) : 곧, 곧 ~이다. / 火孔(화공) : 숨구멍.· 家中(가중) : 집 안. 원시의 “그 집”을 살짝 고친 표현이다. / 低暗處(저암처) : 낮고 어두운 곳.· 太息(태식) : 한숨. / 以火湧(이화용) : 불로 솟다, 불로 솟구치게 하다.· 火孔(화공) : 불구멍. / 太(태) : 너무, 지나치게. / 喘喘(천천) : 헐떡거리다, 헉헉대다.· 易(이) : 쉽다, 쉬이. / 碎裂(쇄렬) : 부수어지고 찢어지다, 부서지다.· 去時(거시) : 갈 때, 떠날 때. / 乃(내) : 이에. / 方始(방시) : 비로소· 能白(능백) : 하얘질 수 있다. 원시의 “창백해지지”를 약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 如晝月(여주월) : 낮달과 같다, 낮달처럼. [한역의 직역]연탄 아비란 연탄과 같아숨구멍이 곧 불구멍이지집 안의 낮고 어두운 곳에서한숨을 불길로 솟게 하지불구멍으로 너무 헉헉대어아비는 쉬이 부서지지갈 때에야 이에 비로소낮달처럼 하얘질 수 있지 [한역 노트]연탄의 속성에 대한 통찰을 통하여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역할과

    2023-01-17 10:00
  • <특집 : 소동파(蘇東坡)의 시로 맛보는 한시(漢詩)의 멋> 雪後到乾明寺遂宿(설후도건명사수숙), 蘇東坡(소동파)

    ※ 오늘은, 역자가 제법 여러 해 전 이 무렵에 어느 기관지(機關紙)을 통해 발표한 글인 <소동파(蘇東坡)의 시로 맛보는 한시(漢詩)의 멋>으로 칼럼을 대신합니다. 평소 역자의 칼럼 양식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애초의 발표 당시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따로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이점 양해를 바라며 독자 여러분들의 새해 만복(萬福)을 기원합니다. 【소동파(蘇東坡)의 시로 맛보는 한시(漢詩)의 멋】<전언(前言)>중국 시의 관형어로 우리가 쉽사리 ‘당(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대(唐代)에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와 같은 불세출의 대시인들이 끊임없이 출현한 때문이지만, 송대(宋代)의 송시(宋詩) 또한 그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중국 시 세계의 한 축이 되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송대 최고의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소동파(蘇東坡)의 시를 통해 당시(唐詩)와는 또 다른 송시의 맛을 보며, 작은 기쁨에도 만족할 줄 알았던 시인의 따스한 품새를 느껴보도록 하자. ***** 겨울은 눈이 있어 비로소 공평한 계절이 된다. 옛사람들도 모든 것을 새하얗게 덮은 설원(雪原)을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사실은 아래에 소개할 소동파의 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 순백의 설원을 보며 옛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설원을 노래한 시를 통해 무슨 말을 들려주고자 했을까? 여기 소동파의 시가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雪後到乾明寺遂宿(설후도건명사수숙) 門外山光馬亦驚(문외산광마역경)階前屐齒我先行(계전극치아선행)風花誤入長春苑(풍화오입장춘원)雪月長臨不夜城(설월장림불야성)未許牛羊傷至潔(미허우양상지결)且看鴉雀弄

    2023-01-03 10:00
  • 서시, 나희덕

    문화 [원시]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도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내 마음의 군불이여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태헌의 한역]序詩(서시) 到今未熱一人胸(도금미열일인흉)蒙蒙煙氣加又加(몽몽연기가우가)吾人心地冗火兮(오인심지용화혜)盡熄而滅尙遠耶(진식이멸상원야) [주석]· 序詩(서시) :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에 쓴 시(詩)나 장시(長詩)에서 서문 비슷하게 첫머리에 별도의 장(章)을 마련하여 쓴 시(詩)를 가리킨다.· 到今(도금) : 지금까지, 지금껏. / 未熱(미열) : 아직 ~을 뜨겁게 하지 못하다, 아직 ~을 지피지 못하다. / 一人胸(일인흉) : 한 사람의 가슴.· 蒙蒙(몽몽) : 무성하다. 무성한 모양. / 煙氣(연기) : 연기. / 加又加(가우가) : 더하고 또 더하다, 더해지고 또 더해지다, 원시의 “(연기만) 내고 있는”을 약간 달리 표현한 것이다.· 吾人(오인) : 나. / 心地(심지) : 속마음, 마음. / 冗火(용화) : 군불의 한역어(漢譯語)로 역자가 임의로 만들어본 한자어이다. 시에 쓰인 ‘군불’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불과는 다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불’을 의미하는 ‘冗火’로 조어(造語)하였던 것이다. / 兮(혜) : ~여! ‘兮’는 호격(呼格) 조사이다.· 盡熄而滅(진식이멸) : (불이) 다 꺼져서 사라지다. 원시에 사용된 어근 ‘꺼지다’를 역자가 글자를 늘려 옮긴 표현이다. / 尙(상) : 오히려, 아직. / 遠(원) :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멀다. / 耶(야) : ~하느냐, 이냐? ‘耶’는 의문 어기사(語氣詞)이다. [한역의 직역]서시 지금껏 한 사람의 가슴도 못 지피고무성한 연기만 더하

    2022-12-20 10:13
  • 書鏡(서경), 李彦迪(이언적)

    [원시]書鏡(서경)  李彦迪(이언적)  觀書正吾心(관서정오심)照鏡正吾貌(조경정오모)書鏡恒在前(서경항재전)須臾可離道(수유가리도) [주석]· 書鏡(서경) : 책과 거울.· 李彦迪(이언적) :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이다. 조선 시대 성리학(性理學)의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리론(主理論)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李滉)에게 전해 주었다.· 觀書(관서) : 책을 보다. / 正吾心(정오심) : 내 마음을 바로잡다.· 照鏡(조경) : 거울에 비추다, 거울을 보다. / 正吾貌(정오모) : 내 모습을 바로잡다.· 恒(항) : 항상, 늘. / 在前(재전) : 앞에 있다.· 須臾(수유) : 잠시. / 可(가) : 어찌, 어떻게. / 離道(이도) : 도(道)를 떠나다. [번역]책과 거울 책을 보며 내 마음 바로잡고거울 보며 내 모습 바로잡네책과 거울이 늘 앞에 있으니잠시인들 어찌 도를 떠나랴! [번역노트]책과 거울은 그 옛날 선비들의 사랑방이나 글방에 거의 예외 없이 있었던 물건들이다. 책이야 그렇다고 쳐도 거울은 왜? 라며 다소 의아해할 독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거울도 안 보는 여자>라는 노래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고려 시대 이규보(李奎報) 선생이 <경설(鏡說)>이라는 글에서, “옛사람이 거울을 본 것은 그 맑음을 취하고자 함이었다.[古之對鏡 所以取其淸]”라고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옛날 선비들은 용모를 꾸미는 용도로 거울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거울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타인이라는 거울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점을 염려하며, 인

    2022-12-06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