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종이에 베이다, 하청호
[한시공방(漢詩工房)] 종이에 베이다, 하청호
[
원시]

종이에 베이다


하청호


새 책을 읽다가
부드러운 종이에
손을 베었다

칼날같이 벼린 말씀
종이에
숨어 있었다


[태헌의 한역]
爲紙所割(위지소할)

某日看新冊(모일간신책)
手爲柔紙傷(수위유지상)
如刀磨鍊語(여도마련어)
寂靜紙中藏(적정지중장)


[주석]
* 爲紙所割(위지소할) : 종이에 <손이> 베이다.
* 某日(모일) : 어느 날.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 : ~을 보다. / 新冊(신책) : 새책.
* () : . / 爲柔紙傷(위유지상) : 부드러운 종이에 상처를 입다, 부드러운 종이에 베이다.
* 如刀(여도) : 칼캍이, 칼처럼. / 磨鍊(마련) : 갈고 불리다, 갈고 벼리다. / () : , 말씀.
* 寂靜(적정) : 고요하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紙中(지중) : 종이 속, 종이 속에. / () : 감추다.


[한역의 직역]
종이에 베이다

어느 날 새 책을 읽다가
부드러운 종이에 손을 베었다
칼같이 갈고 벼린 말씀이
고요히 종이 속에 숨어 있었던 것

[한역 노트]
새 책을 읽다가 종이에 손이 베인 물리적인 사고를, “칼날같이 벼린 말씀이 우리의 무딘 영혼이나 감성을 자극하여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정신적인 충격에 비유한 이 시는, 베인다는 그 동작으로 인하여 얼마간 오싹함을 느끼게는 해도 공포심까지 주지는 않는 듯하다. 누구나 어쩌다 한 번쯤은 책 장()과 같은 종이에 손이 베인 적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시인이 설정한 비유는 기발하고 뜻은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역자는 이 시를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책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역자는 책의 본질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림으로 된 책도 있고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린 책도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책은 글, 곧 시인이 얘기한 말씀이 그 본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워낙 다양해서 그 효능 내지 가치 또한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개략적으로 따지고 보면 순전히 재미만 주는 책도 있고, 소중한 정보나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는 책도 있고, 시인이 얘기한 것처럼 갈고 벼린 말씀이 독자의 가슴으로 들어와 양식이나 등불이 되어주는 책도 있다. 옛사람들은 책의 효능 내지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역자가 어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접하게 되었던 홍대용(洪大容) 선생의 글 한 단락이 문득 떠오른다.
위왕(魏王) 탁발규(拓跋珪)가 박사(博士) 이선(李先)에게 묻기를, “천하에서 무슨 물건이 사람에게 신지(神智:정신 또는 지혜)를 더해줄 수 있겠소?”라고 하자 이선이 대답하기를, “책만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천하에서 묻기도 잘한 것이고, 천하에서 대답도 잘한 것이다.[珪問博士李先曰 天下何物可以益人神智 對曰 莫若書籍 此天下之善問 天下之善對] - 담헌서(湛軒書)

역자는 여기에서 언급한 익인신지(益人神智)’를 사람의 정신을 밝게 해주고 지혜를 늘려주는 것으로 이해해 왔는데, 익인신지가 바로 위의 시에서 말한 말씀과 맥락이 닿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말씀이 들어 있는 책이 소중하게 여겨졌고 또 여겨지고 있음에도, 지하철 객실에서 책을 펼치고 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무엇보다 먼저 반갑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 역자에게는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자의 지인 한 사람은, “우리 집 애들이 핸드폰 들여다보듯이 책을 보았다면 다들 하버드대를 갔을 것이라며 혀를 차고는 하였다. 그러나 책을 잘 보지 않는다는 이 시대의 문제는 사실 학생들이나 젊은이들만을 나무랄 일이 결코 아니다. 명색이 선생인 역자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연구 일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한 번쯤은 읽어둠 직한 교양서 등은 한 달에 한 권도 제대로 못 읽는다. 언젠가는 한 해 동안 역자가 읽은 책이 겨우 세 권이었던 때도 있었다. 스스로의 마음에도 어찌나 부끄럽던지.... 이른바 선생이란 작자도 이 모양인데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을 나무랄 일이 뭐 있겠는가?

역자의 스승님이신 한당(閒堂) 차주환(車柱環)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발표를 할 때 대학원생이라면 응당 읽었어야 했을 한문으로 된 책의 어느 대목을 번역하면서 시쳇말로 버벅거리면, 안경을 넓은 이마 위로 올리시고는 특유의 억양으로, “자네, 무식하구마! ~저히 무식하구마!”라 하시며 혼을 내시고는 하셨다. 잘은 몰라도 한당 선생님께 이렇게 혼 한번 안 나고 학위를 받은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이 시절은 어떠한가? 그렇게 혼을 내줄 수 있는 진짜 선생님조차 많이 계시지 않은 듯하니, 어쩌면 역자의 학창시절보다 더 적극적으로 독서를 권장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책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책에 손을 베일까 두려워해서가 아니기를 바라며, 역자가 좋아하는 키케로(Cicero)의 명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책은 소년의 음식이 되고, 노인의 즐거움이 되며, 번영의 기반이자 멋진 장식이 되기도 한다. 또 위급한 때의 도피처가 되고, 어려움 속에서의 위안이 된다. 집에서는 쾌락의 씨가 되고, 밖에서도 방해물이 되지 않으며, 여행할 때는 야간의 반려자가 된다. - 프로 아르키아(Pro Archia)

2연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가 오언절구(五言絶句)로 한역(漢譯)하는 과정에서 두 군데 시어를 보태기는 하였으나, 시의 원의를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이다.

2023. 5. 23.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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