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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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정부와 대학의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 최종 승인에 제동을 걸었다. 5월 10일까지 정부가 의대 증원 인원을 2000명으로 정한 과학적 근거와 회의록 등을 제출하고, 법원이 이를 보고 판단할 때까지 의대 모집정원 승인을 보류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법원 결정으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모집정원 승인, 각 대학 총장의 입시요강 발표 등 증원 관련 절차 중단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란과 혼선이 한층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 배상원 최다은)는 30일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과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 18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문에서 정부 측에 “5월 중순까지 결정할 테니 그 전에는 의대 모집정원을 최종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절차에 대한 법원의 첫 제동이자 증원 관련 자료 요구라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각 대학은 이날까지 의대 증원 인원을 반영한 2025학년도 모집정원을 대교협에 제출해야 하며, 대교협은 심사를 거쳐 5월 말까지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다만 대교협 방침에 따라 5월 초까지 제출 기한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재판부는 정부 측에 애초 증원 규모로 내세운 2000명의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로스쿨법 당시 엄격한 현장실사를 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적·물적 시설 조사를 제대로 하고 증원분을 배정한 것인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예산이 있는지 등 현장실사 자료와 회의록 등을 제출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복지부 장관 등은 법원 결정이 나기 전까지 대교협 승인절차를 진행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한 1심의 근거인 ‘원고 적격성’에 대해 피신청인인 정부 측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 과학적 근거 자료 내라"…법원 결정 때까지 혼란 커질 듯
로스쿨 사례 들며 1심 뒤집어…"모든 정책 사법통제 받아야"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지난 3일 “증원 처분의 직접 상대방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각 ‘대학의 장’으로 전공의 또는 의대생인 신청인들은 처분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에 불과하다”고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정원이 늘어나면 처분의 직접 대상자인 대학 총장이 법적 다툼을 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그러면 국가가 의대 정원을 2000명이 아니라 10만 명 늘리는 경우에도 다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고 그런 결정은 사법적으로 심사·통제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법원이 사법통제를 못하는 정부 결정은 있을 수 없다”며 “최근 판례를 보면 제3자의 ‘원고 적격’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고법의 결정에 대해 교육부는 “증원 관련 서류를 충실하게 법원에 제출하겠다”면서도 “오늘까지 증원 변경 등 대입시행 변경사항을 제출하는 것은 확정이 아니고 5월에 결정하기 때문에 큰 혼선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충북대 등 의대생들이 각 대학 총장을 상대로 대입 전형 변경을 금지해달라며 법원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김상훈)는 충북대·강원대·제주대 의대생 485명이 각 국립대 총장을 상대로 낸 ‘대입 전형 시행계획 변경 금지’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학 총장과 대교협에 대해선 기각, 국가를 상대로 낸 가처분은 서울행정법원 이송을 결정했다. 그간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이 각각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8건 중 7건이 ‘원고 적격성’을 이유로 각하되자 의대생들은 지난 22일 소송 대상을 각 대학 총장 등으로 바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의대생 측은 26일 열린 가처분 심문에서 “학생과 대학은 사법상 계약을 맺고 있어 서로 의무가 있는데 대학 총장이 정원을 변경하면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진다”며 “의대 정원 변경은 대학의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측 대리인은 “행정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고 해서 민사 절차로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의대생들이 주장하는 위법 사유와 보호받을 권리의 필요성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