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특집 한역(漢譯)> 졸다가 낚싯대를 잃고(시조), 무명씨
[한시공방(漢詩工房)] <특집 한역(漢譯)> 졸다가 낚싯대를 잃고(시조), 무명씨
졸다가 낚싯대를 잃고 춤추다가 도롱이를 잃었네
늙은이 망령(妄靈)으란 백구(白鷗)야 웃지 마라
십리(十里)에 도화발(桃花發)하니 춘흥(春興) 겨워하노라

[태헌의 한역]
瞌睡遺魚竿(갑수유어간)
獨舞失蓑衣(독무실사의)
老翁生妄靈(노옹생망령)
白鷗汝莫譏(백구여막기)
十里桃花發(십리도화발)
春興難停歇(춘흥난정헐)

[주석]
* 瞌睡(갑수) : 꾸벅꾸벅 졸다, 말뚝잠을 자다. ‘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글자이다. / () : ~을 잃다. / 魚竿(어간) : 낚싯대.
* 獨舞(독무) : 홀로 춤을 추다. ‘은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글자이다. / () : ~을 잃다. / 蓑衣(사의) : 도롱이.
* 老翁(노옹) : 늙은이. / 生妄靈(생망령) : 망령이 나다.
* 白鷗(백구) : 백구, 흰 갈매기. / () : . 앞에 나온 백구를 가리키는데,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글자이다. / 莫譏(막기) : 놀리지 마라, 비웃지 마라.
* 十里(십리) : 십 리, 십 리에. / 桃花發(도화발) : 복사꽃이 피다.
* 春興(춘흥) : 춘흥, 봄날의 흥취. / 難停歇난정헐) : ~을 그치게 하기 어렵다. ‘~에 겨워하다를 한역한 표현이다.

[한역의 직역]
꾸벅꾸벅 졸다가 낚싯대를 잃고
홀로 춤추다가 도롱이를 잃었네
늙은이가 망령 났다고
백구야 너는 비웃지 마라
십 리에 복사꽃 피어
춘흥 그치게 하기 어려우니

[한역노트]
역자가 이 시조의 초장(初章)을 오언 2구로 한역(漢譯)하는 과정에서 시조에는 없는 말을 부득이 보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다섯 글자[五言]라는 한시의 음수율(音數律)을 고려한 때문이지만, 서사(敍事)의 실제성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때문이기도 하다. 다들 짐작했겠지만 시 속의 주인공인 늙은이는 지금 혼자 봄날을 즐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역자는 춤춘다는 말의 부가어(附加語)로 선택이 가능한 여러 어휘 가운데 홀로[]’를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존다는 말의 부가어로는 누구나 예상이 가능한 꾸벅꾸벅을 우선적으로 떠올렸다. 늙은이가 어디에 기대거나 누워있는 상황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마침내 꾸벅꾸벅 존다는 의미의 한자어인 瞌睡(갑수)’를 취하게 되었다. 사람이 어디에 기대거나 누워있는 상황이라면 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는 것이다.

홀로 춤춘다는 것은 어지간한 흥취가 아니고는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액션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이었던 영화 마지막 보이스카웃의 엔딩 부분에서 주인공이 경기장 전광판 위에서 춤을 춘 것은 앞서 자기가 부인에게 한 약속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모든 것을 끝냈다는 성취감 내지 만족감에서 춤을 춘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어쨌거나 홀로 춤을 춘다는 것은 여러 명이 어울려 신명나게 추는 춤에 비해 애잔하고 고독해 보이는 것과는 관계없이, 진정한 그 무엇이 아니고서는 사실상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역자는 애초에 춤춘다는 말의 부가어로 어지러이[]’라는 부사를 골랐다가 나중에 홀로라는 부사로 고치게 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홀로 행하는 동작임을 알았다면서 다시 홀로라는 부가어를 쓴 것은 군더더기가 아니냐고 반문할 독자가 혹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 굳이 변명을 하자면 풍류 속에 숨겨진 고독에 역자가 더 주목했던 결과 정도로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

봄날의 흥취를 얘기하였지만 실상은 고독감을 지우기가 어렵고, 가난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실상은 청빈(淸貧)의 삶을 내보인 이 시조는, 은자(隱者)가 누리는 풍류를 다소 해학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시조에서 구현된 풍류는 부자들이 즐김 직한 풍류로 여겨지지는 않기 때문에, 가난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풍류로 간주할 수 있을 듯하다. 혹자의 눈에는 때로 궁상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확실히 풍류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오늘날 즐겨 쓰는 말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역시 이런 범주에 들지 않을까 싶다.

낚싯대와 도롱이를 잃어버렸다고 했으니 늙은이가 풍류를 즐긴 장소는 호수라기보다는 작은 강쯤으로 보인다. 그곳에 늙은이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당연히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함께 하고 있었던 존재로는 백구(白鷗)가 유일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가정하고 백구더러 를 비웃지 말라고 하였다. 늙은이가 그 이유로 거론한 것이 바로 종장(終章)의 내용이다. 십 리에 걸쳐 복사꽃이 핀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에, 내가 춘흥에 빠진 것이 도대체 무슨 흠결이 되겠냐는 것이다.

역자는, 이 시조의 종장이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 것이냐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단촉한 인생을 살다가 즐길 것이 있고 즐길 수 있을 때는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명제를 던져준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역자는, “때가 되었을 때 마땅히 힘을 쓸지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느니![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라고 노래한 도연명(陶淵明)의 시구에서 얘기한 그 힘을 쓸대상에는 은자가 즐기는 이와 같은 풍류 또한 당연히 포함될 것으로 여겨보았다.

국민 1인당 소득이 우리보다 한참 낮은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오히려 우리보다 높기도 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반드시 정신적인 만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환기(喚起)시켜준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읽었던 김소운 선생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도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이 얘기를 들려준 것이 아니었던가!

눈과 귀를 핸드폰에게 점령당한 채, 전철 차창 밖에 꽃이 피고 있어도 또 꽃이 지고 있어도 전혀 알지 못하거나 무심의 경지로 대하는 현대인들에게, “십리(十里)에 도화발(桃花發)”이 과연 춘흥을 자아내게 하는 기제(機制)가 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역자는 내일 진정 흥취를 아는 벗을 오랜만에 만나러 간다. 역자가 부럽다면 독자께서는 이미 진 것이다.

역자는 이 평시조(平時調)를 오언 6구의 고시로 한역하였는데 각 장마다 2구씩 안배하였다. 그러나 4구까지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고, 5구와 6구는 운을 달리하여 매구마다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이 된다.

2024. 4. 16.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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