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태주 어제 거기가 아니고 내일 저기도 아니고 다만 오늘 여기 그리고 당신 [태헌의 한역] 幸福(행복) 不是昨日其所(불시작일기소) 亦非明日彼處(역비명일피처) 但只今日此席(단지금일차석) 而且眼前爾汝(이차안전이여) [주석] * 幸福(행복) : 행복. 不是(불시) : ~이 아니다. / 昨日(작일) : 어제. / 其所(기소) : 그곳, 거기. 亦非(역비) : 또한 ~이 아니다. / 明日(명일) : 내일. / 彼處(피처)...
봄이 간다커늘 무명씨 봄이 간다커늘 술 싣고 전송 가니 낙화 쌓인 곳에 간 곳을 모르노니 유막(柳幕)에 꾀꼬리 이르기를 어제 갔다 하더라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태헌의 한역] 今春云將去(금춘운장거) 載酒欲送行(재주욕송행) 落花處處積(낙화처처적) 不知在何方(부지재하방) 柳幕黃鳥曰(유막황조왈) 昨日離此鄕(작일리차향) [주석] 今春(금춘) : 금년 봄, 올 봄. / 云(운) : ~라고 말하다, ~라고 하다. / 將去(장거) : 장차 가려하다, 장차 떠나려 하다. 載酒(재주) : 술을 싣다. / 欲(욕) : ~을 하고자 하다. / 送行(송행) : 전송하다, 배웅하다. 落花(낙화) : 낙화, 떨어진 꽃. / 處處(처처) : 곳곳에. / 積(적) : 쌓다, 쌓이다. 不知(부지) : ~을 알지 못하다. / 在(재) : ~에 있다. / 何方(하방) : 어느 쪽, 어느 방향. 柳幕(유막) : 버들막. 휘늘어진 버들가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버들 숲을 가리키기도 한다. / 黃鳥(황조) : 노란 새, 꾀꼬리. / 曰(왈) : ~라고 말하다, ~라고 하다. 昨日(작일) : 어제. / 離(리) : ~를 떠나다. / 此鄕(차향) : 이 고을, 이 마을, 이곳. [직역] 올 봄이 곧 갈 것이라 하여 술을 싣고 전송하려 했더니 낙화는 곳곳에 쌓여 있는데 봄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네 버들 숲에서 꾀꼬리 말하길 어제 이곳을 떠났다고 하네 [漢譯 노트] 다음 주면 벌써 6월이니 지금이 봄이라 하더라도 가장 막바지 봄이겠다.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 봄을 돌아보면서 역자는 특별히 현대시가 아닌 옛 시조 한 수를 한역해 보았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조가 가는 봄을 노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송춘(送春)’을 노래한 시편(詩篇)과는 사뭇 다른 정서
우주를 껴안다 김세연 꽃을 보듯 그대를 보고 그대를 보듯 꽃을 본다 봄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 향기 다할까 문 활짝 열어 와락 우주를 껴안는다 꼼짝 마라, 그대 이제 내 안에 있으니 [태헌의 한역] 擁太空(옹태공) 看君若看花(간군약간화) 看花若看君(간화약간군) 花香乘春風(화향승춘풍) 暗暗敲心門(암암고심문) 開門憐香盡(개문련향진) 猛然擁太空(맹연옹태공) 千萬勿欲動(천만물욕동) 君今在吾中(군금재오중) [주석] * 擁(옹) : ~을 껴안다. / 太空(태공) : 먼 하늘, 우주(宇宙). 이 시에서는 우주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看君(간군) : 그대를 보다. / 若(약) : ~과 같다. / 看花(간화) : 꽃을 보다. 花香(화향) : 꽃향기. / 乘(승) : ~을 타다. / 春風(춘풍) : 봄바람. 暗暗(암암) : 몰래. / 敲(고) : ~을 두드리다. / 心門(심문) : 마음의 문. 開門(개문) : 문을 열다. / 憐香盡(연향진) : 향기가 다할까 아까워하다. 猛然(맹연) : 갑자기, 와락. 千萬(천만) : 절대로, 결코. / 勿欲動(물욕동) : 움직이려고 하지 말라. 今(금) : 이제, 지금. / 在吾中(재오중) : 내 속에 있다, 내 안에 있다. [직역] 우주를 껴안다 꽃을 보듯 너를 보고 너를 보듯 꽃을 본다 봄바람을 탄 꽃향기가 몰래 마음의 문 두드린다 향기 다할까 아까워 문 열고 와락 우주를 껴안는다 절대 움직이려 하지 마라 그대 이제 내 안에 있으니 [漢譯 노트] 노래가 가수의 전유물이 아니듯 시 역시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위의 시를 쓴 김세연씨는 시집을 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문학잡지 등에 시를 게재한 적도 없다. 그러나 시에 대한 열정만
파도 유승우 파도에게 물었습니다. 왜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고, 밤이나 낮이나 하얗게 일어서느냐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 이름이 없습니다. 파도의 대답입니다. 【태헌의 한역】 波濤(파도) 問於波濤曰(문어파도왈) 何不入夢中(하불입몽중) 亦不暫時休(역불잠시휴) 晝夜白洶溶(주야백흉용) 波濤乃對曰(파도내대왈) 不興吾名空(불흥오명공) [주석] * 波濤(파도) : 파도. 問於(문어) : ~에게 묻다. / 曰(왈) : ~라...
나를 위로하며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태헌의 한역(漢譯)] 慰吾(위오) 歪斜飛(왜사비) 尋花坐(심화좌) 看蝴蝶(간호접) 吾心邪(오심야) [주석] * 慰吾(위오) : 나를 위로하다. 歪斜(왜사) : 비뚤어지다. / 飛(비) : 날다. 尋花(심화) : 꽃을 찾다. / 坐(좌) : 앉다. 看(간) : ~을 보다, ~을 보라. / 蝴蝶(호접) : 나비. 吾心邪(오심야) : 내 마음아! 내 마음이여! ‘邪(야)’는 호격(呼格) 조사로 사용되었다. [직역]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아도 꽃 찾아 앉나니 나비를 보아라, 내 마음아! [한역 노트] 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시의 제목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한 시도 있고 꼭 그렇지 않은 시도 있다. 함민복 시인의 이 시는 분명히 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제목에 쓰인 ‘위로’라는 말의 뜻으로 보아 일단 나를 위로할 시기는 내가 기쁘거나 즐거울 때는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가 모종의 일 내지 언행(言行) 등으로 힘들거나 괴롭거나 슬플 때일 것이다. 살다 보면 나를 위로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그 위로라는 것을 타인에게 받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배워두거나 찾아야 한다. 시인은 나비의 비행(飛行)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나비는 몸이 지극히 가볍기 때문에 미약한 바람에도 비행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삐뚤삐뚤 날 수밖에 없지만 원하는 꽃자리는 정확하게 찾아간다. 나비가 삐뚤삐뚤 난다는 것은 사람이 울퉁불퉁한 길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리랑 [여음(餘音)]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사설(辭說)] 1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2절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3절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와요 이 강산 삼천리 풍년이 와요 4절 산천에 초목은 젊어나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태헌의 한역] 阿里郎(아리랑) 【餘音(여음)】 阿里郎阿里郎哦囉哩(아리랑아리랑아라리) 郎君越過阿里郎山嶺(낭군월과아리랑산령) 【辭說(사설)】 郎君棄我離我側(낭군기아리아측) 未行十里足生病(미행십리족생병) 靑天虛空星辰多(청천허공성진다) 吾輩人生心語盛(오배인생심어성) 豊年云來豊年來(풍년운래풍년래) 槿域江山總歲登(근역강산총세등) 山川草木益少柔(산천초목익소유) 人間靑春漸老硬(인간청춘점로경) [주석] * 阿里郎(아리랑) : 우리 민요 ‘아리랑’의 한자어 표기. ◎ 餘音(여음) : 시가(詩歌)나 노래에서 본 가사의 앞, 뒤, 가운데에 위치하여 의미 표현보다는 감흥과 율조에 영향을 미치는 어절이나 구절을 이르는 말이다. 오는 위치에 따라서 앞 여음[初斂], 가운데 여음[中斂], 뒷 여음[後斂]으로 나누어진다. 哦囉哩(아라리) : 아라리의 한자어 표기. 郎君(낭군) : 여음 부분에서 생략된 것으로 추정하여 보충한, 우리말 ‘님’에 해당하는 한자어이다. / 越過(월과) : ~을 넘어가다. / 阿里郎山嶺(아리랑산령) : 아리랑 고개. ◎ 辭說(사설) : 시가(詩歌)나 노래에서의 본 가사. 棄我(기아) : 나를 버리다. / 離我側(이아측) : 내 곁을 떠나다. 未行十里(미행십리) : 아직 10 리도 가지
소쩍새 이대흠 밤이 되면 소쩍새는 울음으로 길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소리의 길 어린 새끼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행여 길 끊어질까봐 어미 소쩍새는 쑥독쑥독 징검돌 연이어 놓는다 골 깊은 봄밤 새끼 걱정에 쑥떡 얹힌 듯 목이 메어 목이 쉬어 【태헌의 한역(漢譯)】 杜鵑(두견) 夜來杜鵑鳴做路(야래두견명주로) 聲路暗裏亦不滅(성로암리역불멸) 稚子隨路能歸巢(치자수로능귀소) 母鳥猶恐路或絶(모조유공로혹절) 咕咕又咕咕(고고우고고) 不斷設跳磴(부단설도등) 春夜谷深處(곡심춘야처) 念兒憂子情(염아우자정) 恰如滞艾糕(흡여체애고) 咽塞嘶啞聲(인색시아성) [주석] * 杜鵑(두견) : 이 역시(譯詩)에서는 소쩍새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본래 두견[두견새]과 소쩍새는 과(科)가 다르고, 주행성과 야행성으로 생태 또한 다르지만 예로부터 혼용하여 왔고 표기 역시 그러하였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杜鵑’이라는 어휘로 소쩍새를 대신하기로 한다. 보통 소쩍새의 뜻으로 사용하는 ‘제결(鶗鴂)’ 역시 두견새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夜來(야래) : 밤이 오다, 밤이 되다. / 鳴做路(명주로) : 울음으로 길을 만들다. ‘鳴’ 앞에 ‘以(이)’가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聲路(성로) : 소리의 길, 소리가 만드는 길. / 暗裏(암리) : 어둠 속. / 亦(역) : 또, 또한. / 不滅(불멸) : 사라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다. 稚子(치자) : 어린아이, 새끼. / 隨路(수로) : 길을 따르다, 길을 따라. / 能(능) : ~을 할 수 있다. / 歸巢(귀소) : (동물이) 집이나 둥지로 돌아가다. 母鳥(모조) : 어미 새. / 猶(유) : 오히려. / 恐(공
한 송이 꽃 도종환 이른 봄에 핀 한 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태헌의 한역(漢譯)] 一枝花(일지화) 早春放綻花一枝(조춘방탄화일지) 於人一個疑問號(어인일개의문호) 君亦如此開花非(군역여차개화비) [주석] * 一枝花(일지화) : 한 가지의 꽃. 한 송이 꽃. 早春(조춘) : 이른 봄. / 放綻(방탄) : (꽃이) 피어나다. / 花一枝(화일지) : 꽃 한 가지, 꽃 한 송이. 於人(어인) : 사람에게는. / 一個(일개) : 하나, 하나의. / 疑問號(의문호) : 의문 부호. 물음표. ‘?’ 君(군) : 그대, 당신. / 亦(역), 또, 또한. / 如此(여차) : 이와 같이, 이렇게. / 開花非(개화비) : 꽃을 피웠는가? 시구(詩句) 말미에 쓰이는 부정(否定) 부사 ‘不(불)’, ‘否(부)’, ‘未(미)’, ‘非(비)’ 등은 시구 전체를 의문형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梅花著花未(매화착화미)”는 “매화가 꽃을 피웠던가요?”의 뜻이다. [직역] 한 송이 꽃 이른 봄에 핀 꽃 한 송이는 사람에게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꽃을 피웠나요?” [한역 노트] 이른 봄철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혹한(酷寒)이라는 고통을 잘 견뎌냈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꽃이 피는 것은 단풍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에게 매우 아픈 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꽃이 피었다는 것은 또 그런 아픔을 잘 참아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것이 어찌 꽃만의 일이겠는가? 예술이 그렇고 스포츠가 그렇듯,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거의 모든 인간사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꽃이 우리에게 묻는 것
사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없는 무지개 계절아 [태헌의 한역(漢譯)] 四月之歌(사월지가) 木蓮花影下(목련화영하) 閱讀維特信(열독유특신) 雲花發岸上(운화발안상) 短簫吹一陣(단소취일진) 於乎此形骸(오호차형해) 離家遠處臻(이가원처진) 無名港口裏(무명항구리) 卽今獨乘船(즉금독승선) 回來今四月(회래금사월) 明擧生命燈(명거생명등) 季節如夢燦(계절여몽찬) 如虹淚欲凝(여홍루욕응) 木蓮花影下(목련화영하) 手書長長信(수서장장신) 軸草生岸上(축초생안상) 口笛吹一陣(구적취일진) 於乎此形骸(오호차형해) 離家遠處臻(이가원처진) 深深山谷裏(심심산곡리) 樹下看星辰(수하간성진) 回來今四月(회래금사월) 明擧生命燈(명거생명등) 季節如夢燦(계절여몽찬) 如虹淚欲凝(여홍루욕응) [주석] * 四月之歌(사월지가) : 4월의 노래. ‘之’는 ‘~의’에 해당되는 구조 조사이다. 木蓮(목련) : 목련. / 花影下(화영하) : 꽃그늘 아래. 閱讀(열독) : ~을 읽다. / 維特(유특) : 베르테르(Werther). 서양사람 이름. / 信(신) : 편지. 雲花(운화) : 구름 꽃. 구름을 시적으로 표현한 말. / 發(발) : (꽃 따위가) 피어나다. / 岸上(안상) : 언덕
꽃의 마중 신지영 꽃은 걷지 못해 향기를 키웠지 먼 데 있는 벌더러 잘 찾아오라고 마음으로는 백 리라도 걸어 마중 가겠지만 발로는 걸어갈 수 없으니 향기로 마중 나갔지 [태헌의 한역(漢譯)] 花之出迎(화지출영) 花葩不步養芬馨(화파불보양분형) 遙使遊蜂識道程(요사유봉식도정) 心也甘行百里遠(심야감행백리원) 難能脚走以香迎(난능각주이향영) [주석] * 花之出迎(화지출영) : 꽃의 마중. ‘之’는 ‘~의’에 해당되는 구조 조사이다. ‘出迎’은 마중을 나가거나 나가서 마중함을 뜻하는 말이다. 花葩(화파) : 꽃. / 不步(불보) : 걷지 못하다. / 養芬馨(양분형) : 향기를 기르다. ‘芬馨’은 꽃다운 향기, 곧 아름다운 향기라는 뜻이다. 遙(요) : 멀리, 아득히. / 使遊蜂識道程(사유봉식도정) : 꿀벌로 하여금 길[여정]을 알게 하다. ‘遊蜂’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꿀벌을 가리키는 말이고, ‘道程’은 여행 경로나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心(심) : 마음, 생각.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甘行(감행) : 기꺼이 가다. ‘甘’은 ‘달게, 기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百里遠(백리원) : 백 리 멀리까지. 難能脚走(난능각주) : 걸어서 가기가 어렵다, 걸어서 갈 수가 없다. / 以香迎(이향영) : 향기로 맞이하다, 향기로 마중하다. [직역] 꽃의 마중 꽃은 걷지 못해 향기를 키웠지 멀리 꿀벌더러 길을 잘 알라고 맘은 백 리 멀리도 달게 가겠지만 발로 갈 수 없어 향기로 마중했지 [한역 노트] 트로트 가수 나훈아씨가 노래하고 작사와 작곡까지 하였던 <잡초>라는 가요의 가사에서 잡초는 발이 없어 님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태헌의 한역(漢譯)] 春...
봄 이인철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잡으려 해도 기다리지 않는 봄 그 누구에게나 봄은 머물고 그 누구에게나 봄은 스친다 [태헌의 漢譯(한역)] 春(춘) 不待及時來(부대급시래) 欲挽期必蹉(욕만기필차) 於人春停留(어인춘정류) 於人春掠過(어인춘략과) [주석] * 春(춘) : 봄. 不待(부대) : 기다리지 않다. / 及時(급시) : 때가 되다. / 來(래) : 오다 欲挽(욕만) : 당기려고 하다, 만류하려고 하다. / 期必(기필...
어떤 그림 김부조 꽃을 그리자 나비가 왔다 나무를 그리자 새들이 왔다 너를 그리자 그리움이 왔다 너를 그리자 사랑이 왔다 [태헌의 한역(漢譯)] 某畵(모화) 畵花蝴蝶來(화화호접래) 畵樹禽鳥來(화수금조래) 畵汝思念來(화여사념래) 懷汝戀情來(회여연정래) [직역] 어떤 그림 꽃을 그리자 나비가 왔다 나무를 그리자 새들이 왔다 너를 그리자 그리움이 왔다 너를 그리자 사랑이 왔다 [주석] * 某畵(모화) : 어떤 그림. 畵(화) : (동사적으로 사용하여) ~을 그리다. / 花(화) : 꽃. / 蝴蝶(호접) : 나비. / 來(래) : 오다. 樹(수) : 나무. / 禽鳥(금조) : 새, 새들. 汝(여) : 너, 그대. / 思念(사념) : 그리움. 懷(회) : ~을 그리워하다, ~을 그리다. / 戀情(연정) : 사랑. [한역 노트] 짧고 간단하여도 참으로 예쁜 시이다. 이런 시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은, 물질이 주는 그것과는 애초에 지평(地平)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한 때 중국을 ‘시의 나라[詩國]’라고 하였지만, 전철역에만 가면 언제든지 시를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야 말로 바로 이 시대 ‘시의 나라’가 아닐까 싶다. 역자는 이 시를, 어느 전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하여 멍하니 서서 전철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만났다. 아, 그 순간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전철이 도착하기 까지는 다소 남겨진 시간이 있어 사진으로 찍어 저장하는 대신에 바로 메모를 하였는데, 행선지를 향하던 전철 객실 안에서 역자는 선 채로 이 시의 한역(漢譯)을 완료하였다. 그게 벌써 작년 가을의 일이다. 그런데 이 봄에 다시 꺼내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역자에게는 꼬깃꼬깃 접어 아껴두었다가 꺼내 쓰
저무는 우시장 고두현 판 저무는데 저 송아지는 왜 안 팔아요? 아, 어미하고 같이 사야만 혀. [태헌의 한역(漢譯)] 薄暮牛市(박모우시) 牛市將欲罷(우시장욕파) 彼犢何不賣(피독하불매) 乃曰彼黃犢(내왈피황독) 應與母牛買(응여모우매) [주석] * 薄暮(박모) : 저물 무렵, 땅거미가 질 무렵. / 牛市(우시) : 우시장. 將欲罷(장욕파) : 장차 파하려고 하다, 막 끝나려고 하다. 彼犢(피독) : 저 송아지. / 何不賣(하불매) : 어째서 팔지 않는가, 왜 팔지 않는가? 乃曰(내왈) : 이에 말하다. / 彼黃犢(피황독) : 저 누런 송아지, 저 송아지. 應(응) : 응당 ~해야 한다. / 與母牛買(여모우매) : 어미 소와 함께 사다. [직역] 저무는 우시장 우시장이 막 파하려는데 “저 송아지는 왜 안 팔아요?” 말하기를, “저 송아지는 어미 소와 함께 사야 해.” [한역 노트] 젊거나 어린 세대들은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牛市場)을 직접 본 적이 거의 없겠지만, 농사를 짓는 집이라면 너나없이 소가 거의 재산 목록 1호였던 시절에는 우시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시장이었다. 시(詩)에서는 이 우시장에 송아지밖에 살 수 없는 농부와 그 아이만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어미 소에 더해 송아지까지 팔아야 하는 농부도 저만치 보인다. 가슴에 사연을 묻어두고 우시장에서 눈길이 마주치기도 했을 두 농부의 마음은, 해질녘에 날리는 저녁노을처럼 타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결국 둘 다 다음 장이나 다른 장을 기약하며 왔던 길을 되밟아 돌아갔음 직하다. 새 식구, 송아지를 만날 기대감에 한껏 들떠있었을 아이는 이미 어두워진 길을, 아버지 뒤를 따라 고개 숙이고 타
봄날 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매화 꽃 보러 간 줄 알아라 [태헌의 한역(漢譯)] 春日(춘일) 君訪吾廬尋吾迹(군방오려심오적) 場圃唯有帶泥鋤(장포유유대니서) 應爲吾伴一美女(응위오반일미녀) 携手暫看梅花去(휴수잠간매화거) [주석] * 春日(춘일) : 봄, 봄날. 君訪吾廬(군방오려) : 그대가 나의 집을 방문하다. / 尋吾迹(심오적) : 나의 자취를 찾다. 場圃(장포) : 텃밭,...
<사진제공 : 오수록님> 석 줄의 잠언 오수록 빗방울에도 젖지 않는 연잎처럼 살라 사물을 비추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울처럼 살라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을 벗어난 은자처럼 살라 [태헌의 漢譯] 三行箴言(삼행잠언) 願君生如蓮(원군생여련) 雨滴終不潤(우적종불윤) 願君生如鏡(원군생여경) 照物不留痕(조물불류흔) 願君生如隱(원군생여은) 在世猶出塵(재세유출진) [주석] * 三行(삼행) : 석 줄. / 箴言(잠언) : 잠언. 願君(원군) : 그대에게 원하노니. / 生如蓮(생여련) : 연꽃[연잎]처럼 살다. 雨滴(우적) : 보통은 빗방울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비가 방울지다.’는 의미로 쓰였다. / 終不潤(종불윤) : 끝내 젖지 않다. 生如鏡(생여경) : 거울처럼 살다. 照物(조물) : 사물을 비추다. / 不留痕(불류흔) : 흔적 남기지 않다. 生如隱(생여은) : 은자처럼 살다. ‘隱’은 단독으로 쓰여도 ‘隱者(은자)’의 뜻이 되기도 한다. 在世(재세) : 세상에 있다. / 猶出塵(유출진) : 세속을 벗어난 것과 같다. [직역] 석 줄의 잠언 원하노니 그대, 비가 방울져도 끝내 젖지 않는 연잎처럼 살라 원하노니 그대, 사물 비추되 흔적 남기지 않는 거울처럼 살라 원하노니 그대, 세상에 있어도 세속을 벗어난 은자처럼 살라 [한역(漢譯) 노트] 이 시는 야은(野隱) 오수록(吳壽祿) 시인이 개불(介弗) 김동철(金東哲) 선생의 정년퇴임[서울 문일고]을 축하하기 위하여 지은 시이다. 두 분은 현재 역자가 좌장(座長)으로 있는 시회(詩會)의 멤버이다. 작년 연말 어느 날, 개불 선생에게 정년퇴임 축시를 지어드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
<사진제공 : 박예분님> 겨울 허수아비 박예분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찾아보면 잘 여문 낟알들이 있을 거라고 먹이 찾는 겨울새들을 위해 찬바람 맞으며 논 한가운데 기꺼이 알림판으로 서 있습니다 [태헌의 한역(漢譯)] 冬日草人(동일초인) 此是水稻黃熟處(차시수도황숙처) 細看或有穀粒藏(세간혹유곡립장) 唯爲打食冬季鳥(유위타식동계조) 水田冒風作標榜(수전모풍작표방) [주석] * 冬日(동일) : 겨울, 겨울날. / 草人(초인) : 허수아비. 此是(차시) : 여기는 ~이다. / 水稻(수도) : 벼. / 黃熟處(황숙처) : 누렇게 익은(익어가던) 곳. 細看(세간) : 자세히 보다. / 或有(혹유) : 간혹 ~이 있다. / 穀粒藏(곡립장) : 곡식 낟알이 숨다. 唯爲(유위) : 오직 ~을 위하여. / 打食(타식) : (새나 짐승이) 먹이를 찾다. / 冬季鳥(동계조) : 겨울철의 새. 水田(수전) : 논. / 冒風(모풍) : 바람을 무릅쓰다. / 作(작) : ~이 되다. / 標榜(표방) : 알림판. [직역] 겨울 허수아비 이곳이 벼가 누렇게 익었던 곳이라고 자세히 보면 간혹 곡식 낟알 숨어 있을 거라고 오직 먹이 찾는 겨울새들을 위하여 논에서 바람 무릅쓰며 알림판이 되었습니다 [한역 노트] 역자가 보기에 이 시는 두 가지 점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끈다. 첫째는 허수아비란 추수가 끝나면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마는 데도 이 시에서는 쓸모 있는 존재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허수아비란 본래 새들을 쫓기 위하여 인류가 고안한 장치인데도 이 시에서는 역으로 새들을 부르는 장치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이한 점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저녁 이정록 곧 어두워지리라 호들갑 떨지 마라 잔 들어라, 낮달은 제 자리에서 밝아진다 [태헌의 한역(漢譯)] 夕(석) 立卽天將暮(입즉천장모) 勸君莫佻輕(권군막조경) 但擧酒滿盞(단거주만잔) 晝月原地明(주월원지명) [주석] * 夕(석) :저녁. * 立卽(입즉) : 곧. / 天將暮(천장모) : 날이 장차 저물 것이다, 날이 장차 어두워질 것이다. 勸君(권군) : 그대에게 권하노니. / 莫(막) : ~을 하지 말라. / 佻...
분재 이길원 애초엔 등이 곧은 선비였다 가슴엔 푸르름을 키우고 높은 하늘로 고개를 든 선비였다 예리한 삽이 뿌리를 자르고 화분에 가두기까지 푸르름을 키우면 키울수록 가위질은 멈추질 않았다 등이라도 곧추세우려면 더욱 조여 오는 철사줄 십 년을, 또 십 년을… 나는 곱추가 되었다 가슴에 키우던 푸르름을 언뜻 꿈에서나 보는 등 굽은 곱추가 되었다 사람들은 멋있다 한다 [태헌의 漢譯] 盆栽(분재) 當初吾爲背...
갈데없이 정현종 사람이 바다로 가서 바닷바람이 되어 불고 있다든지, 아주 추운 데로 가서 눈으로 내리고 있다든지, 사람이 따뜻한 데로 가서 햇빛으로 빛나고 있다든지, 해지는 쪽으로 가서 황혼에 녹아 붉은 빛을 내고 있다든지 그 모양이 다 갈데없이 아름답습니다 [태헌의 한역(漢譯)] 不容置疑(불용치의) 人向大海爲風吹(인향대해위풍취) 人向寒地以雪飛(인향한지이설비) 人向暖處以日輝(인향난처이일휘) 人向咸池以霞緋(인향함지이하비) 模樣皆殊異(모양개수이) 不容置疑美(불용치의미) [주석] * 不容置疑(불용치의) : 의심할 여지가 없이, 갈데없이. 人向(인향) : 사람이 ~로 향하다, 사람이 ~로 가다. / 大海(대해) : 큰 바다, 바다. / 爲風吹(위풍취) : 바람이 되어 불다. 寒地(한지) : 추운 땅, 추운 데. / 以雪飛(이설비) : 눈으로 날리다. 暖處(난처) : 따뜻한 곳, 따뜻한 데. / 以日輝(이일휘) : 햇빛으로 빛나다. 咸池(함지) : 해가 질 때 그곳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전설상의 서쪽에 있는 큰 못. / 以霞緋(이하비) : 노을로 붉은 빛을 내다. 模樣(모양) : 모양. / 皆(개) : 다, 모두. / 殊異(수이) : (특별하게) 서로 다르다. 美(미) : 아름답다. [직역] 갈데없이 사람이 바다로 가서 바람이 되어 불거나 사람이 추운 데로 가서 눈으로 날리거나 사람이 따뜻한 데로 가서 햇빛으로 빛나거나 사람이 해 지는 데로 가서 노을로 붉은 빛을 내면 모양은 다 달라도 갈데없이 아름답습니다 [漢譯 노트] ‘갈데없이’를 ‘갈 데 없이’로 파악하여 ‘오갈 데 없이’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갈데없이’가 ‘갈 데 없이’와 밀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