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무인도, 반칠환
[한시공방(漢詩工房)] 무인도, 반칠환
[원시]
무인도


반칠환


오직 사람 하나 없어
, ,

경전도 사원도 없으니
죄도 없다고

끼루룩 끼루룩

아무도 신을 경배 않으나
신의 뜻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태헌의 한역]
無人島(무인도)

唯由無人居(유유무인거)
稱曰無人島(칭왈무인도)
有海鷗(유해구)
戛然道(알연도)
無經無寺院(무경무사원)
罪亦決無造(죄역결무조)
無人呼神拜(무인호신배)
神意最善保(신의최선보)

[주석]
* 無人島(무인도) : 사람이 살지 않는 섬.
* 唯由(유유) : 오직 ~로 말미암아, 오로지 ~ 때문에. / 無人居(무인거) : 사는 사람이 없다.
* 稱曰(칭왈) : ~라고 칭하다, ~라고 말하다.
* 有海鷗(유해구) : 갈매기가 있어, 어떤 갈매기가. 이 대목은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구절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戛然(알연) : 맑고 명랑한 새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인데 여기서는 원시의 끼루룩 끼루룩을 한역한 말로 쓰였다. / () : ~라고 말하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無經(무경) : 경전(經典)이 없다. / 無寺院(무사원) : 사원이 없다.
* () : . / () : 또한, 역시. / () : 결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無造(무조) : 지어짐이 없다, 지어지지 않는다, 없다.
* 無人(무인) : ~하는 사람이 없다. / 呼神拜(호신배) : 신을 부르며 절하다, 신을 부르며 경배하다.
* 神意(신의) : 신의 뜻. / () : 가장, 최고로. / 善保(선보) : 잘 보존하다, 잘 보존되다.

[한역의 직역]
무인도

오직 사는 사람이 없어
무인도라고 하는데
갈매기가 있어
끼룩끼룩 말하네
경전도 사원도 없으니
죄 또한 결코 지어지지 않는다고
신을 부르며 절하는 이 없으나
신의 뜻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역노트]
오늘 소개한 이 시에는 시인이 한 말과 시인이 전한 말이 혼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구분이 이 시를 이해하는 선결 요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역자가 보기에 일단 원시의 제1연은 시인 자신의 말로 보인다. 그리고 끝말이 “~다고로 처리된 제2연과 제4연은 시인이 누군가의 말을 전한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3연의 끼루룩 끼루룩이라는 의성어를 통하여 이 시에서 생략된, 말하는 주체인 그 누군가가 갈매기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제2연과 제4연은 시인이 갈매기가 한 말로 설정하여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역자는 한역(漢譯)의 편의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원시의 제2연과 제3연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바꾸고 생략된 주어를 보충하는 등의 다소 파격적인 조치를 강구하였다. 이러한 조치가 부득이하고 불가피한 것임을, 시인은 물론 독자들까지 혜량해 주시면 더없이 감사하겠다.

올해처럼 더운 여름은 바다를 찾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바다에 부표(浮標)처럼 떠 있는 크거나 작은 어느 섬을, 사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인도라고 칭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고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를 가볍게 여기는 인간의 오만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역자에게는 원시 제1연의 행간의 의미가 그렇게 읽힌다. 시인이 무인도를 굳이 , , 로 끊어 읽은 데에 모종의 의도를 숨겨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한 시의 제목과 소재는 무인도이지만, 기실 무인도 자체를 읊은 시가 아니다. 하다 못해 무인도라는 말 내지 개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고독 따위를 노래한 시도 아니다. 어느 섬이 사는 사람이 없어무인도가 되었지만, ‘사람이 없어 있게 된것에 대해 얘기한 시인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경전(經傳)이나 사원(寺院)은 신()을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신을 만나는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들은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는 도구 내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경전이나 사원이 없다면 죄도 없다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사람이 죄에 빠지기 위해 경전을 만들고 사원을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 경전과 사원으로 인해 오히려 죄에 빠질 수도 있음을 엄중하게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없으면 과()도 없다는 이러한 논리는 당연히 신성(神性)이나 종교(宗敎)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이나 종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 내지 가치관 등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없다는 말은, 신을 경배하는 존재가 없다는 말로 그 외연(外延)을 넓혀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고 하여, 다시 말해 신을 경배하는 존재가 없다고 하여 신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성은 시인의 표현을 빌면 바로 신의 뜻이다. 신의 뜻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죄가 없는단계, 곧 있는 그대로의 것이자 순수이자 자연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어떤 가식도 위선도 없이 그저 천성을 따르는 것만이 있을 뿐인 그 섬에, 우리 인간이 또한 그와 같은 존재로 살 수만 있다면 거기에는 그 어떤 죄도 없지 않을까?

역자는 여태 그 어떤 무인도에도 가본 적이 없다. 무인도에 단 하루라도 홀로 남겨진다면 무엇보다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두려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해변에 누워 해조음(海潮音)을 들으면서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상상해보다가 문득, 문명의 이기인 전기(電氣)를 차단하고 핸드폰에 와 닿는 전파(電波)를 차단한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무인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가 만들어 거기에 머물 수도 있는 영혼의 무인도가 나의 케렌시아(Querencia)가 되어줄지 아닐지는 순전히 내가 하기에 달렸을 뿐이리라.

역자는 47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오언(五言) 6구에 삼언(三言) 2구가 섞인 고시로 한역하였다. 일률적으로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 ‘()’, ‘()’, ‘()’가 된다.

2023. 8. 8.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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