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맨스로 무장한 '밀수'…해녀들의 통쾌한 수중액션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흘러가는 구름은 아니겠지요….’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밀수’의 첫 장면에서 트럭의 라디오를 통해 가수 최헌(1948~2012)이 1977년 발표한 가요 ‘앵두’가 흐른다. 1970년대라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이 노래 중 첫 대목의 가사는 예고편 등을 통해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보는 관객에게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이는 두 주인공인 춘자(김혜수 분)와 진숙(염정아 분)이 극중에서 각각 이 노래를 부를 때 더 강화된다.

올여름 극장가 ‘빅4’로 꼽히는 한국 영화 기대작 중 가장 먼저 선보이는 ‘밀수’의 특징은 ‘해양범죄활극’과 ‘워맨스(womance)’란 두 단어로 요약된다. 투자·배급사인 NEW와 제작사인 외유내강이 이 영화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브로맨스(bromance)의 대척점으로 나온 용어인 워맨스는 우먼(woman)과 로맨스(romance)를 합친 신조어다.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여자들 사이의 진한 우정과 유대를 일컫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워맨스의 주체는 춘자와 진숙을 ‘투톱’으로 하는 가상의 바닷가 마을 ‘군천’의 해녀들과 이 마을의 다방 마담 옥분(고민시 분)이다.

영화는 군천과 인근 바다에서 벌어지는 밀수의 세계를 다룬다. 산업화에 따른 바닷물 오염으로 생업 전선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해녀들은 위험천만한 이 세계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든다. 바닷속에 일부러 빠뜨린 각종 밀수품을 건져 올리는 임무를 담당한다. ‘전국구 밀수왕’ 권상사(조인성 분)와 군천 지역 토착 범죄조직 두목 장도리(박정민 분), 밀수꾼을 검거하는 세관 계장 이장춘(김종수 분)까지 끼어들어 서로 속고 속이는 대규모 밀수판이 벌어지는데, 여기서 해녀들과 옥분의 워맨스가 빛을 발한다.

이 영화를 연출하고, 김정연과 함께 각본을 쓴 류승완 감독은 지난 18일 첫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상보다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수직적인 움직임이 자유로운 수중에서 액션을 구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해양범죄활극인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영화 후반부에 펼쳐지는 수중 액션이다. 워맨스로 똘똘 뭉친 해녀들이 유려하면서도 경쾌한 움직임으로 바닷속 지형과 지물을 이용해 조직폭력배들을 제압하는 장면은 통쾌하다. ‘짝패’ ‘베테랑’ 등에서 선보인 류승완 감독 특유의 사실감 넘치고 유머가 섞인 지상 액션 장면도 등장한다. 장도리 패거리와 대결하는 권상사 역의 조인성이 맹활약한다.

다만 이런 화려하고 참신한 액션 장면들이 펼쳐지기까지의 서사는 작위적이다. 특히 상당히 길게 이어지는 영화 후반부 수중 액션에서 조직폭력배들이 해녀들을 처치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상황은 억지스럽다. 춘자와 진숙이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원인과 상황도 마찬가지다. 옥분까지 포함해 이들이 다시 ‘워맨스’로 뭉치게 되는 과정의 설명이 부족하다.

1970년대 한국에서 횡행한 ‘생필품 밀수’를 소재로 해서 해녀들의 워맨스를 바탕으로 해양범죄활극을 펼치는 이야기 자체는 신선하다. ‘범죄 영화’로서의 장르적 쾌감도 크다. ‘액션 장인’인 류승완 감독이 자기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970년대 가요와 이들 음악에 정통한 가수 장기하가 비슷한 분위기로 작곡한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의 이런 재미와 매력들이 개연성과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서사와 캐릭터의 약점을 얼마나 덮을 수 있느냐가 흥행의 관건이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