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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위
강성위
The Lif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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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자는 백안(伯安), 호는 태헌(太獻)이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연구박사, 서울대학교 중국어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조그마한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저술 활동을 하며 한시(漢詩) 창작과 번역을 지도하는 한편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출강하여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창작 한시집으로 ≪술다리[酒橋]≫ 등이 있다.
  • 사랑, 안도현

    사랑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태헌의 한역】 愛(애) 非是夏炎蟬嘶噪(비시하염선시조) 卽是蟬啼夏如湯(즉시선제하여탕) 蟬知愛是傍熱哭(선지애시방열곡) 不鳴不見故蟬鳴(불명불견고선명) [주석] * 愛(애) : 사랑. 非是(비시)...

    2019-08-27 10:09
  •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섬진강 여울물   오수록   산책 삼아 하늘을 날던 물새들 일제히 날아 내려와 모래톱을 원고지 삼아 발로 새 시를 쓴다 섬진강 여울물은 온종일 소리 내어 읽는다 그 소리 유장하여 바다에서도 들린다   【태헌의 한역】 蟾津灘水(섬진탄수)   水鳥飛天做散步(수조비천주산보) 一齊落下作新賦(일제락하작신부) 以沙爲紙以足錄(이사위지이족록) 蟾津灘水盡日讀(섬진탄수진일독) 讀聲也悠長(독성야유장) 海畔亦可聽(해반역가청)   [주석] * 蟾津(섬진) : 섬진강. / 灘水(탄수) : 여울물. 水鳥(수조) : 물새. / 飛天(비천) : 하늘을 날다. / 做散步(주산보) : 산보로 삼다. 一齊(일제) : 일제히. / 落下(낙하) : 낙하하다. / 作新賦(작신부) : 새로운 시를 짓다. 以沙爲紙(이사위지) : 모래톱을 종이로 삼다. / 以足錄(이족록) : 발로 기록하다. 盡日(진일) : 진종일, 온종일. / 讀(독) : 읽다. 讀聲(독성) : 읽는 소리. / 也(야) : 주어나 목적어[빈어] 뒤에 쓰여 앞말을 강조하는 조사(助詞). / 悠長(유장) : 유장하다, 길고 오래다. 海畔(해반) : 바닷가. / 亦(역) : 또, 또한. / 可聽(가청) : 들을 수 있다, 들린다.   [직역] 섬진강 여울물   물새들이 산책삼아 하늘 날다가 일제히 내려와 새 시를 짓는다 모래톱을 종이 삼아 발로 적자 섬진강 여울물이 온종일 읽는다 읽는 소리 유장하여 바닷가에서도 들린다   [한역 노트] 눈이 시리도록 맑은 서정시를 대하면 역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소년이 된다. 그 옛날 청담(淸談)이 권력(權力)과 금력(金力)의 얘기가 빠진 얘기였다면, 요즘에는 이런 서정시가 바로 청담이 아닐까 싶다

    2019-08-20 11:35
  • 무더위, 박인걸

    무더위 박인걸 당신의 뜨거운 포옹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팔은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멈출 것만 같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에너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번져나간다. 잔디밭이라도 어느 그늘진 곳이라도 아무 말 없이 드러누울 테니 그대 맘대로 하시라. 【태헌의 한역】 蒸炎(증염) 吾君抱持似熱火(오군포지사열화) 吾終不拒自暴棄...

    2019-08-13 13:23
  • 계란을 생각하며, 유안진

    계란을 생각하며 유안진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그런 거겠지 【태헌의 한역】 思鷄卵(사계란) 夜起佇坐顧形影(야기저좌고형영) 他人料吾是批判(타인료오시비판) 吾人料吾卽察省(오인료오즉찰성) 他人破卵爲煎蛋(타인파란위전단) 吾人自啐作鷄雛(오인자줄작계추) 換骨奪胎也應...

    2019-08-06 10:30
  • 한여름, 고두현

    한여름 고두현 남녘 장마 진다 소리에 습관처럼 안부 전화 누르다가 아 이젠 안 계시지…. 【태헌의 한역】 盛夏(성하) 聞說南方霖雨連(문설남방임우련) 仍慣欲打問候電(잉관욕타문후전) 嗚呼今卽親不存(오호금즉친부존) [주석] * 盛夏(성하) : 한여름. 聞說(문설) : 듣자 하니 ~이라 한다, ~라고 듣다. / 南方(남방) : 남쪽, 남녘. / 霖雨連(임우련) : 장맛비[霖雨]가 이어지다, 장마 들다. 仍慣(잉관) :...

    2019-07-30 10:56
  • 여름 숲, 권옥희

    여름 숲 권옥희 언제나 축축이 젖은 여름 숲은 싱싱한 자궁이다 오늘도 그 숲에 새 한 마리 놀다 간다 오르가슴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태헌의 한역】 夏林(하림) 夏林常漉漉(하림상록록) 便是活子宮(변시활자궁) 今日亦一鳥(금일역일조) 盡情玩而行(진정완이행) 極感搖樹枝(극감요수지) 靑水滴瀝降(청수적력강) [주석] * 夏林(하림) : 여름 숲. 常(상) : 언제나, 늘. / 漉漉(녹록) ...

    2019-07-23 10:30
  • 들꽃, 박두순

      들꽃 박두순   밤하늘이 별들로 하여 잠들지 않듯이   들에는 더러 들꽃이 피어 허전하지 않네   너의 조용한 숨결로 들이 잔잔하다   바람이 너의 옷깃을 흔들면 들도 조용히 흔들린다   꺾는 사람의 손에도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의 발길에도 향기를 남긴다   【태헌의 한역】 野花(야화)   夜天因星不入睡(야천인성불입수) 野由野花不空虛(야유야화불공허) 汝氣安穩野寂靜(여기안온야적정) 風搖汝衣野亦搖(풍요여의야역요) 野花遺香折人手(야화유향절인수) 野花遺香踏人趺(야화유향답인부)   [주석] * 野花(야화) : 들꽃. 夜天(야천) : 밤하늘. / 因星(인성) : 별로 인하여, 별 때문에. / 不入睡(불입수) : 잠에 들지 못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다. 野(야) : 들. / 由野花(유야화) : 들꽃으로 말미암아, 들꽃 때문에. / 不空虛(불공허) : 공허하지 않다, 허전하지 않다. 汝氣(여기) : 너의 기운, 너의 숨결. / 安穩(안온) : 평안하다, 조용하다. / 野寂靜(야적정) : 들이 고요하다, 들이 잔잔하다. 風搖汝衣(풍요여의) : 바람이 너의 옷을 흔들다. / 野亦搖(야역요) : 들 또한 흔들리다. 野花遺香(야화유향) : 들꽃이 향기를 남기다. / 折人手(절인수) : 꺾는 사람의 손. 踏人趺(답인부) : 밟는 사람의 발꿈치, 밟는 사람의 발.   [직역] 들꽃   밤하늘은 별들로 인해 잠들지 않고 들은 들꽃으로 말미암아 허전하지 않네 너의 숨결 조용하여 들이 잔잔하고 바람이 너의 옷깃 흔들면 들 또한 흔들리지 꺾는 사람 손에도 들꽃은 향기를 남기고 짓밟는 사람 발에도 들꽃은 향기를 남긴다   [한역 노트] 우리 현대시에는 들꽃을 노래한 시가 정말 많아

    2019-07-16 10:00
  • 수선화에게,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2019-07-09 13:00
  • 고사, 조지훈

    고사 조지훈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西域) 만리(萬里)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태헌의 한역】 古寺(고사) 敲打木魚不勝眠(고타목어불승면) 姸麗童僧忽入睡(연려동승홀입수) 世尊無語作微笑(세존무어작미소) 輝燿霞下牡丹墜(휘요하하모란추) [주석] 敲打(고타) : 두드리다. / 木魚(목어) : 목탁(木鐸). / 不勝眠(불승면) :...

    2019-07-02 10:53
  • 윤사월, 박목월

    윤사월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태헌의 한역】 閏四月(윤사월) 松花粉飛孤峰下(송화분비고봉하) 四月日長黃鳥鳴(사월일장황조명) 山守獨家眼盲女(산수독가안맹녀) 附耳門柱暗暗聽(부이문주암암청) * 四月指閏四月(사월지윤사월) [주석] 松花粉(송화분) : 송화 가루. / 飛(비) : 날다. / 孤峰(고봉) : 외...

    2019-06-27 10:30
  • 문을 열며...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는 우리의 현대시를, 한시(漢詩)로 옮긴 한역시(漢譯詩)와 곁들여 감상해보는 코너이다. 이 코너를 들여다볼 독자들 가운데는 멀쩡하게 잘 있는 한글시를 왜 굳이 골치 아프게 한시로 옮겼느냐고 질문할 분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편안함과 용이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한글시를 한시로 옮기는 일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어리석음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영화인들은 ...

    2019-06-26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