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조원이 넘는 세계 사모대출 시장이 부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거나 파산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을 비롯한 미국 지역은행 파산에 이어 곳곳에서 고금리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고등 켜진 비은행 사모대출

무디스의 경고…"1.4조달러 인수금융 부실 위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무디스를 인용해 1조4000억달러(약 1836조원)에 달하는 세계 사모대출 산업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기업 간 인수합병(M&A) 등에 인수 자금을 조달해주는 사모대출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은행 사모대출 업체를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은행들이 인수금융 비중을 줄이는 사이 아레스와 오울록 같은 비은행 사모대출 업체들이 덩치를 키웠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레스와 오울록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인수금융 거래에도 뛰어들었다. FT는 2021년에 사모펀드(PEF)인 토마브라보가 전자상거래 배송업체인 스탬프닷컴을 인수할 때 대출해준 것을 대표적 위험사례로 꼽았다.

그런데도 사모대출 시장은 미국 기준금리가 급등하기 전인 2022년까지 큰 문제가 없었다.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인수자금을 빌려줘도 이자 부담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사모대출 업체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었다. 무디스는 아레스와 오울록이 운용하는 펀드가 이자 지급에 쓸 수 있는 수익이 반토막 날 것으로 전망했다. 크리스티나 패제트 무디스 애널리스트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라는 시장 상황 변화 속에서 비은행 사모대출 업체들이 처음으로 대출자들의 디폴트 증가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기업 파산 13년 만에 최대

고금리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급증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발생한 기업 디폴트 건수는 4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CNBC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기업 디폴트 증가 원인이라며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거나 대출을 연장해야 하는 기업들의 자금 부담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무디스는 연말까지 글로벌 디폴트 비율이 장기 평균인 4.1%보다 높은 4.6%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조조정 자문사인 M3파트너스의 모신 메그지 창업자는 “지난 15년간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연 4~6%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연 9~13% 금리로 빚을 내고 있다”며 “재무 안정성이 높은 기업도 고금리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업 파산도 늘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2일까지 미국 내 기업 파산 신청 건수는 324건으로 지난해 1년 전체 파산 건수(374건)의 86%에 달했다. 올해 4월까지 파산 신청 건수는 230건으로 2010년 이후 가장 많았다. SVB와 소매업체인 베드배스앤드비욘드, 보안 업체인 모니트로닉스 등이 대표적 파산 신청 사례였다.

한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고금리와 상업용 부동산 문제로 무너지는 은행이 더 나와 은행들의 추가 M&A가 있을 수 있지만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