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 고조에도 '헝다 쇼크'에 4거래일만 하락 [오늘의 유가]
장 초반 1%대 상승하다 방향 틀어
“바이든, 85달러선 아래로 관리할 듯”


미군 사망 사건으로 중동 긴장이 격화했음에도 국제유가가 하락했다. 홍콩 법원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에 청산 명령을 내린 것을 계기로 중국 부동산 위기가 재점화되면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의 수출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점도 유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3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1.23달러(1.6%) 내린 배럴당 76.78달러에 장을 닫았다. 국제유가 벤치마크로 여겨지는 브렌트유 3월물은 1.15달러(1.4%) 하락한 배럴당 82.40달러에 마감했다. 두 유종 선물은 모두 4거래일 만에 내림세로 방향을 틀었다.

원유 선물은 이날 장 초반 1.5%가량 상승세를 보였다. 이날 친(親)이란 이라크 무장 조직 ‘이슬라믹레지스턴스’의 공격으로 요르단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장병 3명이 사망하면서 중동 전쟁의 확전 위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이후 미군이 희생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동 긴장 고조에도 '헝다 쇼크'에 4거래일만 하락 [오늘의 유가]
그러나 같은 날 홍콩 고등법원이 헝다를 청산해달라는 채권자 청원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요 둔화 우려가 다시금 불거졌다. 헝다는 2021년 말 역외 채권을 갚지 못해 디폴트를 내면서 중국 부동산 위기의 도화선이 된 기업이다. 시장에선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등 디폴트 위기에 처해 있는 중국 대형 부동산 기업의 추가 청산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과매수 흐름을 보여 온 원유 시장에선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국제유가는 이달 들어서만 7% 넘게 오른 상태다.

온라인 거래 플랫폼 XS.com의 세이머 하슨 애널리스트는 마켓워치에 “올해 대선을 앞두고 종전 압박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소한의 국지적 대응을 통해 중동 지역 긴장 확대를 최대한 억제할 가능성이 크다”며 “원유 시장은 다른 어떤 지정학적 요인보다 중국발 수요 둔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보복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중동 긴장 고조에도 '헝다 쇼크'에 4거래일만 하락 [오늘의 유가]
에너지아웃룩어드바이저스의 아나스 알하지 매니징파트너도 “바이든 행정부는 원유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보복할 가능성이 크다”며 “브렌트유가 배럴당 85달러를 넘기면 그에겐 위험 지대에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공급보다는 수요 측 하방 압력이 여전히 크다는 진단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어게인캐피털의 공동 설립자인 존 킬더프는 “중국의 상황은 (원유) 시장 전체에 가장 큰 역풍”이라며 “시장이 (중동) 전쟁 위험 프리미엄과 계속해서 거리를 두는 이유”라고 짚었다. 중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2%로 30여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석유 카르텔’의 감산 효과도 유가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블룸버그통신은 석유 데이터 분석·예측 회사 크플러(Kpler) 데이터에 기반해 OPEC+의 1월 원유 출하량에 큰 변동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지역에서 유조선 등 민간 선박을 대상으로 한 무력 공격을 지속하고 있지만, 원유 공급에 실질적인 영향은 없었다는 분석이다.
중동 긴장 고조에도 '헝다 쇼크'에 4거래일만 하락 [오늘의 유가]
다만 중동 전쟁은 올해 상반기까지 원유 시장의 변수로 남아 있을 전망이다. SPI자산운용의 스티븐 이네스 매니징디렉터는 “중동에서 오판의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합리적 행위자들도 의도치 않게 확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며 “(홍해에 이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교통까지 막히면 유가 급등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포트 상품 전략가도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원유 수송의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까지 번진다면 유가 흐름은 달라질 것”이라고 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