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新자원 전쟁 중]
①글로벌 자원전쟁 판도가 달라졌다


반도체·배터리 등의 핵심 소재를 틀어쥔 중국이 광물 패권을 내세워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화석연료 부문에서 누리던 글로벌 위상이 약해지면서 중국의 광물 영향력이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작년 말 중국 정부는 기술·무역·국방 분야 관료들을 비밀 회의에 소집했다. 대(對)중국 반도체 기술통제에 나선 미국에 대항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후 올해 7월 중국은 갈륨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전기자동차용 전력반도체 등에 투입되는 광물로 중국산이 전 세계 98% 이상을 차지한다.

한달여 뒤 중국은 대놓고 자원 무기화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4일 중국 상무부가 사상 처음으로 연 ‘전국 수출통제 업무 회의’를 통해서다. 중국은 2019년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맞서 수출통제법을 제정했었다. 이후 희토류·갈륨·게르마늄 등 희귀 광물들의 수출 제한 카드를 산발적으로 발표했다. 이번 회의는 중국이 앞으로는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무기화할 자원들을 관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의 글로벌타임스는 “어느 국가든 중국을 겨냥한 일방적 제재를 남용하면 우리는 상당한 보복 선택지를 갖고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핵심광물서 OPEC 버금가는 영향력 과시하는 중국 [글로벌 新자원전쟁①]
실제로 중국은 다양한 광물에 대해 패권을 쥐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이 지정한 54개 핵심 광물 중에서 중국이 공급사슬에서 적어도 한 단계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광물은 35개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의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의 점유율이 가장 높은 광물은 33종에 달한다. 서방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전략 자원들의 65% 가량을 중국이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의 아·태 천연자원 및 청정기술 연구팀의 니킬 반다리 공동책임자는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은 보이는 것 이상”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 코발트 기업 화유코발트, 중국 1위 배터리 기업 CATL 등 중국 기업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 광산업에 대한 지분 투자를 늘려 온 게 오늘날의 결실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터리의 경우 원재료인 광물 매장량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대부분 20% 미만이지만, 가공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90% 내외에 달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흑연 매장량은 전 세계 매장량의 20%에 불과한데, 흑연 제련 시장에서는 점유율 70%을 자랑하는 압도적 1위다.

중국의 해외 광산 투자 규모는 올해 사상 최대치를 찍을 전망이다. 상반기에만 100억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미 작년 총액을 압도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산업 정책 전문가인 일라리아 마조코는 “중국의 핵심 광물 공급망 장악과 청정 기술 산업 성장세는 2000년 이후 시작됐지만, 2012년 출범한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에서 이를 ‘전략 산업’으로서 육성한 덕분에 더욱 강화됐다”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닐 베버리지 에너지 부문 분석가는 “중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광물 작업장을 만들어놨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김리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