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과 같은 악재가 불거진 와중에도 미국 증시가 크게 출렁이지 않았던 이유는 퀀트펀드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운용역의 개입 없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퀀트펀드가 저평가 종목을 매수하면서 증시를 받쳐줬다는 해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반투자자들이 미국 경제의 향방과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우려하며 증시에서 한발 물러난 사이, 퀀트펀드는 투자를 크게 늘리며 수익을 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일반투자자와 퀀트펀드 사이의 수익률 격차가 커졌다”고 지난 29일 보도했다. 퀀트펀드는 알고리즘에 따라 자산을 선정해 자동 매매한다.

WSJ는 “최근 몇 달 동안 은행위기, 기준금리 인상, 디폴트 가능성 등이 대두됐는데도 미국 증시의 변동성은 크지 않았다”며 “뉴스에 증시가 출렁인 지난해와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올 들어 S&P500지수의 하루 등락률이 2% 이상으로 컸던 거래일은 이틀뿐이었다. 미국 디폴트 우려가 고조됐던 지난주(5월 22~26일)에 S&P500지수는 0.3% 올랐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 퀀트펀드가 있다는 게 월스트리트의 분석이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퀀트펀드의 미국 주식 투자 규모(순위험노출액 기준)는 2021년 12월 이후 1년6개월 만에 최대로 불어났다. 반대로 투자자 대부분은 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을 빼내 머니마켓펀드(MMF)로 옮겼다. 펀드매니저들은 미국이 경기 침체를 맞을 가능성을 우려하며 주식 비중을 조절하고 있다. 증시 변동성이 작을 때 위험자산 비중을 늘리는 퀀트펀드들이 미국 주식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고 도이체방크는 분석했다.

WSJ는 “기업의 자사주 매입과 함께 퀀트펀드의 지속적인 수요가 미국 증시의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파라그 타테 도이체방크 전략가는 “2019년 이후 컴퓨터(퀀트펀드)와 인간 투자자들이 이렇게 상반된 포지션을 취한 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