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가 일제히 경기 침체 가능성을 시사했다. 인플레이션 장기화론과 하반기 경기 침체설이 공존하던 시장에서도 점차 후자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부동산시장 다시 냉각

미국의 비영리 경제조사기관인 콘퍼런스보드가 이날 발표한 미국 경기선행지수는 지난달보다 1.2% 하락한 108.4로 집계됐다. 2020년 11월 이후 2년4개월 만의 최저치다.

경기선행지수는 실업보험 청구 건수, 제조업체 신규 수주, 민간주택 신규 허가 등 10개 항목을 토대로 3~6개월 뒤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3월 경기동행지수는 전월 대비 0.2% 올랐다. 저스티나 자빈스카라 모니카 콘퍼런스보드 선임매니저는 “경기 둔화는 몇 달 안에 미국 경제 전방위에 강하게 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시장도 침체 분위기로 돌아섰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이날 발표한 3월 기존주택 매매 건수는 전달보다 2.4% 감소한 444만 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2% 줄어든 수치다.

기존주택 매매 건수는 금리 인상 여파로 지난해부터 꾸준히 감소했다. 지난 2월 기존주택 매매 건수가 전달 대비 14% 증가하며 경기 회복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으나 한 달 만에 다시 가라앉는 분위기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지역은행 신용 위기가 주택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주택 시장 둔화는 집값 하락으로 이어졌다. 3월 미국 전국 주택 가격 중앙값은 전년 동월 대비 0.9% 하락한 37만5700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 1월 이후 전년 대비 가장 큰 하락폭이다.

과열됐던 고용 시장이 진정되고 있다는 지표도 나왔다. 미국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전주 대비 5000건 늘어난 24만5000건으로 집계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4만 건)를 웃도는 수치다.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계속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보다 6만1000건 늘어난 187만 건이었다. 2021년 11월 이후 최대치다.

○인플레 장기화론 꺾이나

그간 시장에서는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과 인플레이션이 길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뒤섞여 있었다.

미국 중앙은행(Fed) 내에서도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잡는 방향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미셸 보먼 Fed 이사는 이날 텍사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ed 내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되는 제임스 불러드 위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기준금리를 최대 연 5.75%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지역은행 위기로 인한 신용경색 가능성이 크지 않고 고용 시장이 여전히 과열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주요 경기 지표가 얼어붙는 실물 경제를 반영하자 전문가들도 경기 침체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분위기다. 크리스토퍼 룹키 FWD본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여러 달 지켜본 결과 처음으로 경기 침체가 다가온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며 “경기 침체가 없다면 기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찰스 덜라라 미국경제연구소 소장은 “올해 하반기에 가벼운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