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따라잡기
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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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을 밑돌면서 주식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지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주식에 대한 ‘비중 축소’ 의견을 고수했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긴축이 멈추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가 아직 주가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에너지·금융·의료 업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노동 공급 제약이 인플레 완화 속도 늦출 것”

블랙록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내놓은 주간 코멘트를 통해 “지난주 발표된 10월 근원 CPI(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한 품목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예상보다 적게 오른 뒤 주가가 급등하면서 시장에서는 Fed의 금리 인상 중단이 가까워졌다는 희망이 다시 생겨났다”며 이 같이 밝혔다.

하지만 Fed가 긴축을 멈출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게 블랙록의 생각이다. 우선 10월 근원CPI 자체는 예상을 밑돌았지만, 세부 항목을 보면 서비스 물가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노동시장으로의 공급이 제한되고 있어서다. 블랙록은 “서비스 물가 상승에서 볼 수 있듯이 높은 근원 물가 상승은 임금을 상승시키는 노동 공급에 대한 제약을 반영한다”며 “전염병 기간 동안 많은 근로자들이 퇴직했기 때문에 노동 공급 제약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65세 이상의 사람들이 향후 수십년 동안 인구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함에 따라 미국의 노동력이 줄어드는 걸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상을 밑도는 CPI가 한 번 발표된 걸로는 Fed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기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블랙록은 “‘인플레이션은 낮추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Fed의 접근 방식은 단일 데이터 발표 등이 Fed의 과도한 긴축 정책으로 가는 길을 바꾸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Fed는 깊은 경기 침체로 수요를 분쇄함으로써 임금과 전반적인 근원 물가 상승을 목표치인 연 2% 아래로 빠르게 억누르는 일만 할 수 있다”며 “Fed가 경기 침체를 일으킨 뒤 경제적 고통에 직면했을 때에만 급격한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너지업종 빼면 올해 역성장…주가에 불황 반영 안 돼”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 하향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블랙록은 평가했다. 올해 초에 집계된 내년 실적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는 전년 대비 10%가량의 성장한다는 수치였지만, 현재는 성장률 전망치가 4%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하지만 블랙록은 내년 기업 실적 성장률로 0%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화석연료 가격 급등으로 호실적을 기록한 에너지업종이 없었다면 3분기까지의 연간 실적 성장률은 이미 마이너스였을 것이라는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의 데이터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런 침체의 징후들이 주가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블랙록은 평가했다. 오히려 10월 CPI 상승률이 발표된 뒤 침체를 반영하는 주가에서 더 멀어졌다고 지적하며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주식에 대한 비중축소 의견을 유지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에너지·금융·의료 업종 주목”

다만 에너지, 금융, 의료 등 일부 업종은 주목할 만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을 비롯해 지난 1년 동안 개정된 미국의 법률이 재생에너지와 산업재 업종의 전망을 밝게 했고, 지속적인 공급 부족을 감안할 때 전통적인 에너지 업종의 실적은 여전히 강하다고 블랙록은 평가했다.

의료업종에 대해서는 불황기에 피난처를 찾는 투자자들에게 가장 선호된다고 설명했다. 경기방어주의 성격을 띄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예금금리를 정책금리가 오른 것보다 적게 올린 은행의 실적 증가를 점쳐졌다. 블랙록은 “대출로 인한 은행의 소득이 예금자에게 지불하는 이자 금액보다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