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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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에너지난과 고유가에 시름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유가 부담을 분산하기 위해 비행기용 연료를 사전 구매하고 있다. 전력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일부 금속 제련소들은 생산량을 줄였다. 반도체 부족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완성차 업체들엔 비싼 에너지 비용 청구서까지 더해졌다.
두 배 뛴 '에너지 청구서'에 유럽기업들 비명

유가 헤지 나선 항공사들

헝가리 항공사 위즈에어는 4개월치 항공유를 미리 구매했다고 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유가가 오르면 항공사들은 항공유를 고정 가격에 미리 구매하는 ‘헤지 거래’에 나선다.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까지 꺼내들 정도로 사업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다. 영국항공을 운영하는 IAG와 영국 라이언에어 이지젯, 독일 루프트한자, 프랑스 에어프랑스 등도 항공유 사전 구매에 뛰어들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항공기용 제트유 가격은 메트릭t당 1166달러로 1년 새 2배 넘게 올랐다. 2008년 이후 최고가다. 항공유 비용은 항공사 운영비의 20~35% 정도를 차지한다. 코로나19 이후 항공료에 대한 여행객들의 민감도가 높아져 연료비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려워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긴급 유류할증료를 도입하기 어려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알루미늄 등 제련작업 축소

금속 물질을 제련하는 산업도 에너지 집약 업종으로 꼽힌다. 골드만삭스는 에너지 가격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최상위’ 품목으로 알루미늄을 꼽았다. 알루미나를 정제해 알루미늄을 만들 때 전력 소모가 크다. 업계에선 알루미늄을 ‘고체 전기(solid electricity)’라고 부른다. ‘전기 먹는 하마’라는 의미다.

코로나19 탓에 광산 채굴이 줄어 알루미나 가격은 1년 만에 2배로 급등했다. 에너지난까지 더해지며 유럽 일부 제련소가 가동을 멈췄다. 스위스 글렌코어는 지난해 말부터 이탈리아 포르토베즈메 제련소의 아연 생산량을 줄였다. 연간 10만t을 생산하던 이 제련소의 아연 생산량은 평소의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했다. 유럽 최대 알루미늄 업체인 프랑스 알반스도 생산량을 15% 줄였다.

캔 배터리 등의 생산 비용이 높아졌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알루미늄 선물 가격은 이날 한때 t당 4100달러에 육박했다. 철강 생산량도 줄었다. 유럽 최대 철강기업인 아르셀로미탈과 메트인베스트는 최근 우크라이나 공장 문을 닫았다. 원자재 컨설팅기업 CRU의 매트 와킨스 애널리스트는 “철강시장 전반에 상당한 공급 충격이 전해졌다”며 “대체 공급원을 찾는 기업이 늘면서 현물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했다.

완성차·비료 업체도 비상

자동차 생산업체들의 비용 부담도 커졌다. 차량용 원료인 금속 유리 플라스틱 등을 제조할 땐 가스나 전력이 많이 사용된다. 자동차 공정 과정 중엔 고온 작업도 많다. 원자재 부담에 에너지난까지 겹쳐 완성차 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수개월간 20%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 비료 기업도 울상이다. 질소비료 원료인 암모니아 탄산칼륨 등을 생산하려면 천연가스가 필요하다. 세계 최대 비료업체인 노르웨이 야라의 스베인 토레 홀스터 최고경영자(CEO)는 “공급망 혼란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더해졌다”며 “세계에 식량위기가 올지를 파악하는 것보다 식량위기가 얼마나 클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합성수지 플라스틱 등을 만드는 나프타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유럽 석유·화학기업이 원자재 수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유럽은 나프타 수입량의 절반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