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전 세계 기업들이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긴축 기조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주식시장이 움츠러든 결과라는 분석이다. 주식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자금 조달 규모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기업을 뛰어넘었다.

○얼어붙은 주식발행시장

2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금융정보회사 리피니티브를 인용해 올해 1월부터 지난 9일까지 세계 주식발행시장(ECM)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한 1964억달러(약 253조8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닷컴 버블 붕괴 영향이 미쳤던 2003년(1324억달러) 이후 가장 적다.

지난해 주식시장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활황을 맞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진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각국이 난제로 떠오른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투자 심리가 꺾였다. 다이와증권의 카베야 히로카즈 애널리스트는 "올해 미국 중앙은행(Fed)을 중심으로 각국이 긴축을 서두르면서 주가가 크게 하락하고 경기 전망도 불확실해졌다"면서 "기업이 설비 투자와 인수합병(M&A)을 미루며 증자 활동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기업의 자금 조달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올 상반기 미국 기업이 주식시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약 300억달러로 1년 전에 견줘 6분의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의 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이 감소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 1~3월 상장한 SPAC의 자금 조달액은 전년 동기 대비 90% 급감했다.

같은 기간 중국 기업이 주식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700억달러에 달했다. 1년 전에 비해 60% 줄었지만 미국과 일본 기업의 감소폭 보다 적었다. 니혼게이자이는 "중국 기업의 조달액은 미국 기업의 2배가 넘는다"면서 "중국 기업이 1990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기업의 자금 조달액을 역전했다"고 전했다.

기업별로 보면 중국 국영 석유업체인 중국해양석유의 조달액이 322억위안(약 6조212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 기업은 당초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거래됐지만 상장 폐지된 후 지난 4월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앞서 도널드 드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군이 소유한 기업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결과였다.

○美 IPO시장 직격탄

특히 미국 IPO시장의 열기가 급격히 시든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가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업들이 미국 IPO시장에서 거둔 자금 규모는 1년 전의 6% 수준인 49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2009년 상반기(22억달러) 이후 가장 적다. 지난해 IPO가 이례적으로 활발했던 것을 감안해도 5년 평균치(470억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다는 설명이다.

투자환경이 나빠지면서 스타트업들은 상장 계획을 뒤로 미루고 있다.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벤처캐피털(VC)이 투자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중 단 한 곳도 상장하지 않았다. 뉴욕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의 주가 흐름도 부진하다. 지난해 뉴욕증시에 상장한 500여개 기업(SPAC 제외) 중 현재 주가가 공모가 보다 높은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는 곳은 10%에 불과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추후 IPO시장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은 올 여름 IPO 가뭄이 누그러들지 않고 올해 남은 기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관측한다"고 전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루드비히 글로벌 ECM 책임자는 "주식시장이 당분간 변동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