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해 3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직후 유동성 공급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사들였던 회사채와 상장지수펀드(ETF)를 모두 팔기로 했다. 기업 채권시장이 충분히 안정을 되찾았다는 판단에서다. 통화당국이 본격적인 긴축정책으로 전환하는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온다.

‘만기 보유→매각’ 태도 바꾼 당국

Fed "회사채·ETF 연내 모두 팔겠다"
Fed는 2일(현지시간) 뉴욕증시 마감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작년 유통시장 기업신용기구(SMCCF)를 통해 사들인 회사채와 ETF 등 자산을 올해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Fed는 지난해 팬데믹이 발생하자 재무부의 자금 지원을 통해 사상 처음으로 회사채 등을 유통시장에서 매입하기 시작했다. ‘Fed가 무제한 신용 매입에 나섰다’는 심리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우량 채권은 물론 비우량 채권 금리까지 안정을 되찾았다. 회사채 발행 시장은 작년 하반기에 역대 최대 규모 기록을 다시 썼다.

현재 Fed가 보유하고 있는 회사채는 총 52억1000만달러, ETF는 85억6000만달러어치다. 총 137억7000만달러(약 15조3000억원) 규모다. 회사채엔 월풀과 월마트, 비자카드 등이 포함돼 있다. ETF는 자산운용사 뱅가드 등의 단기 회사채 상품 위주로 구성돼 있다. 전체의 90%는 시장이 불안정했던 작년 5~7월 매입한 물량이다. 지난해 말 재무부가 SMCCF를 포함한 비상대출 프로그램의 연장을 거부한 뒤 Fed의 추가 매입은 중단된 상태였다. Fed는 “SMCCF가 기업을 지원하고 고용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보유 채권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매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Fed가 회사채를 전량 팔아도 유통시장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내 회사채 시장이 10조달러 이상에 달해서다. Fed가 보유 중인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 7조3000억달러와 비교해도 미미한 수준이다. Fed가 사들인 회사채 등은 전체 한도(2500억달러)의 5.5%에 불과했다. 그만큼 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통화당국이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회수에 나선다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채 등 자산 매입액을 줄여나가는 테이퍼링 시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조치이기 때문이다. Fed는 매달 1200억달러의 국채·MBS를 사들여왔으며 조만간 매입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왔다. 또 제롬 파월 Fed 의장(사진)은 작년 6월 의회 청문회에서 “회사채를 매각하지 않고 만기까지 보유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Fed가 태도를 바꿔 중도에 자금 회수에 나서기로 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Fed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회사채 매각 결정이 통화정책 기조 변화와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베이지북은 “인건비가 물가 자극”

Fed는 이날 베이지북을 통해 “경기 회복 및 물가 상승 속도가 다소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기 회복 및 물가 상승은 긴축 전환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베이지북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기초 보고서다. 차기 FOMC는 오는 15~16일 열린다.

보고서는 “(4월 중순 발간한) 직전 보고서 때보다 경제가 더 빠른 속도로 확장했다”며 “원가 및 인건비 상승의 영향으로 물가가 완만하게 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개월간 소비자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미국 고용시장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긴축 압력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노동부는 지난주(5월 23~29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38만5000건으로 집계됐다고 3일 발표했다. 한 주 전보다 2만 건 감소했다. 지난해 3월 둘째주(25만6000건)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Fed가 올 7월 또는 9월 FOMC나 8월 잭슨홀 미팅에서 테이퍼링을 공식 논의하고, 내년부터 긴축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