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는 키웠는데 실속은 줄었다…M&A 후유증에 시달리는 글로벌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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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내 유동성이 풍부하던 시기에 인수합병(M&A)을 추진한 글로벌 대기업의 재정 상황이 올 들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올해 고금리가 12개월간 지속하면서 차입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소비도 작년보다 둔화하면서 M&A로 인한 시너지 효과도 미미한 모습이다.

인수 이후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도 속속 나타났다. 통신업체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은 지난해 경쟁업체 쇼 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한 뒤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악화하면서 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으로 강등됐다. 향료 제조 업체 인터내셔널 플레이버 앤 프래그런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팀 아이저트 포르투갈 노바 경영대학원 교수는 "상대적으로 차입 비용이 낮았던 시기에 대기업들이 앞다퉈 단기 부채를 조달해 기업을 인수했다"며 "대다수가 재정 건전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규모 부채를 조달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예정됐던 M&A를 취소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제약사 바이엘AG는 당초 미국의 생화학 기업 몬산토를 630억달러에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경영 상황이 악화하면서 지난달 몬산토 인수를 취소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어도비도 클라우드 기반 디자인업체 피그마 인수를 취소했다. 규제 당국의 반대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 환경을 고려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월그린은 올 들어 수익성이 악화한 사업장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은 기업의 소수 지분을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단기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이런 고육책이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