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채 펀드로 유입된 투자자금이 3년여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인플레이션이 눈에 띄게 둔화하고, 금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판단에 따라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급격하게 개선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 데이터를 인용해 이달 1~17일 미 회사채 펀드에 164억달러(약 21조4000억원)가 순유입됐다고 보도했다. 월 유입액으로는 200억달러를 웃돈 2020년 7월 후 최대치다.

수익률이 높은 투기등급(정크) 회사채 펀드에 흘러 들어간 자금이 114억달러로, 투자등급 회사채 펀드(50억달러)를 능가했다. 지난 10월까지 하이일드(고수익 고위험) 채권 투자 펀드에서 누적 180억달러 이상이 유출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금리 동결 또는 하락 전망에 힘이 실림에 따라 신용도가 낮고 부채가 많은 기업이더라도 이자 부담을 덜면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 없이 경기 둔화를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작용한 결과다.

물가, 고용 등 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주요 경제 지표도 우호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부문 일자리는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15만 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29만7000개를 기록한 전월과 비교해서도 증가세가 크게 둔화했다. 물가 상승률은 3.2%(전년 동월 대비)로 낮아졌다.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윌 스미스 미 하이일드채권 담당자는 “시장 전반에 걸쳐 매우 큰 투자심리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미 국채 가격의 추가 상승(금리 하락)에 대한 베팅을 앞다퉈 청산하면서 나타난 ‘대규모 안도 랠리’가 회사채 시장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해 3월부터 긴축 페달을 밟아 연 0%에 가까웠던 기준금리를 연 5.25~5.50%까지 올려놨다. 이자 부담이 커진 탓에 투기등급 기업의 부채 상환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연쇄 디폴트 우려가 만연한 상황이었다. Fed가 7월부터 금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추가 인상 기대는 확 꺾인 분위기다. 선물시장 트레이더들은 내년 7월까지 두 차례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리 전망 변화는 회사채의 투자 가치를 높였다.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데이터에 따르면 투자등급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와 미 국채 금리의 평균 수익률 격차(스프레드)는 지난 1일 1.3%포인트에서 이날 1.17%포인트로 좁혀졌다. 투기등급은 4.47%포인트에서 3.95%포인트로 하락 폭이 더 컸다. 국채와의 수익률 격차가 좁혀졌다는 건 그만큼 회사채의 투자 위험이 줄었다는 걸 의미한다. 현재의 높은 금리 수준을 예상보다 더 오래 유지하겠다는 Fed의 의지가 구체화하면 이런 흐름이 다시 역전돼 회사채 가격을 낮추고 신용스프레드 확대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