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증시가 질주하고 있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상황에서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주식시장이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 피난처로 떠오른 덕분이다. 대선 이후 출범한 새 경제팀이 시장친화적 정책을 펴기 시작한 뒤부터는 외국인 자금도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국내외로 ‘쌍끌이’ 매수가 나타나면서 증시 폭등세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튀르키예 증시의 벤치마크로 꼽히는 ‘보르사 이스탄불(BIST)100’ 지수는 지난 5월 말 이후 현재까지 46% 급등했다. 리라화 가치를 반영한 달러화 표시 기준 상승률은 14%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EM) 지수(9% 상승)를 앞질렀다. MSCI 지수는 글로벌 펀드의 지역별 투자 기준이 되는 지표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에 걸쳐서도 나타났다. BIST100지수의 2022년 연간 상승률은 거의 200%에 가깝다. 달러화 표시 기준으로도 110% 뛰었다. 같은 기간 MSCI EM 지수는 22% 뒷걸음질했다.
자료=파이낸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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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증시 랠리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인플레이션이 첫째다. 지난해 8월 물가 상승률이 85%까지 치솟은 이후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 기조를 지속했다. ‘고금리는 만악의 근원’이라는 신념을 가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을 사실상 통제한 것이다. 기준금리는 약 3년 만에 최저 수준인 8.5%까지 내렸고,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금리는 –75%까지 주저앉았다.

저금리에 현금이나 예금, 국채 등 고정수익 자산의 매력도는 급격히 식어 갔고, 투자자들은 주식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구매력이 한없이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주식은 자산가치를 지킬 최선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각종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면서 물가 상승 동력이 한층 강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식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은 지속되리란 전망이다.

튀르키예 투자 자문사 OMG 캐피털 파트너스의 무라트 굴칸 최고경영자(CEO)는 “예금 금리 하락기 저축 방어를 원하는 개인들이 증시로 몰리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튀르키예 현지 투자자들은 근 3년간 증시 상승을 이끌어왔다”고 분석했다. 엔버 에르칸 테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튀르키예인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대안이 부족하다”며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산을 지키고 투자 가치를 높이려는 이들은 (증시 외에) 의지할 곳이 많지 않다”는 해석을 내놨다.

한 튀르키예 개인 투자자는 FT에 “예금 계좌에 돈을 넣으면 이자가 최고 2~3%에 불과하지만, 주식을 사면 한 달 수익률이 25~30%에 이를 수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귀환이 랠리를 부채질했다. 지난달 21일까지 7주간 튀르키예 증시에는 16억달러(약 2조원)의 외국인 자금이 쏟아졌다. 새 경제팀이 정책 정상화에 고삐를 쥔 결과다. 월가 출신의 하피즈 가예 에르칸 중앙은행 총재는 취임 이후 두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이로써 8.5% 수준이던 기준금리는 17.5%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역시 월가를 거친 메흐메트 심셰크 재무장관은 유류세와 부가가치세 인상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과열됐던 경제를 가라앉히는 데 집중했다.

마지막 요인은 튀르키예 증시가 매우 저평가돼있다는 점이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BIST100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5.8배로, 12배 수준인 MSCI EM 지수에 한참 못 미친다. BIST100지수 편입 기업의 지난해 평균 주당순이익(EPS)은 전년 대비 200% 불어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료=파이낸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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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튀르키예에 대한 ‘베팅’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 상황이 악화된 정도에 비해 정책 정상화 속도가 너무 느린 데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다.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정치적 동기에서 추진된 정책을 되돌리고, 왜곡된 규제를 제거하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며 “이는 곧 시장 신뢰를 지속해서 회복하고, 금융 리스크를 줄여 경제의 외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작업이 순탄치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