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국방부 예산안을 담은 국방수권법에 여군 낙태 비용 지원 중단 등 논란이 있는 조항을 넣어 단독으로 하원을 통과시켰다. 향후 절차에서 여야의 진통이 불가피해지면서 정부 셧다운 위험이 되살아났다.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깨어있는(Woke)' 시민 운동을 둘러싼 갈등의 연장선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하원은 14일(현지시간)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의 8860억달러(약 1127조원)규모 미국 국방 예산과 정책을 담은 국방수권법안(NDAA)을 처리했다. 공화당은 60여년간의 관행인 여야 합의 절차를 무시하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원을 통과한 예산·법률안은 공화당 강경파가 요구해 온 정책이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원정 낙태 시술을 받는 군인에게 비용을 지원하는 국방부 정책이 폐지됐다. 지난해 미 대법원 결정으로 낙태권을 제한하는 주가 많아지면서 이들 지역 여군들은 임신중절을 하려면 다른 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성전환자를 위한 특수 치료나 다양성의 가치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정부 예산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도 반영됐다. 군부대에서 '드래그쇼(여장남자쇼)' 공연도 금지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우리는 디즈니랜드가 우리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 평등과 동성애 옹호 등을 강조하는 민주당 진영과, 이에 맞서 보수주의 ‘안티 워크(anti-woke)’ 켐페인을 벌이는 공화당 진영의 첨예한 갈등이 국방 예산으로 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문화 전쟁이 국방 예산을 강타하면서 새로운 미국 셧다운 위험이 다가왔다"고 했다.

NDAA상하원 병합 심사 과정에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NDAA는 매년 상·하원에서 각각 의결한 뒤 병합해서 단일안을 도출한다.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상원은 이달 내에 자체 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국방예산 집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오는 9월 30일 이전에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해야 한다. 미국 연방 기관 자금 지원 법안에도 비슷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어 오는 10월 광범위한 정부 셧다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편 법률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안보 불안이 가증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 억지력 강화를 위해 예산을 증액했다. 미군 월급은 5.2% 인상했다. 동맹국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무기를 구매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한 방안을 보고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