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젠그렌 전 미국 보스턴연방은행 총재가 7일(현지시간) 뉴욕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경글로벌마켓 콘퍼런스 NYC 2022'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뉴욕특별취재팀
에릭 로젠그렌 전 미국 보스턴연방은행 총재가 7일(현지시간) 뉴욕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경글로벌마켓 콘퍼런스 NYC 2022' 행사에서 강연하고 있다. /뉴욕특별취재팀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경글로벌마켓 콘퍼런스 NYC 2022’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세션은 에릭 로젠그렌 전 미국 보스턴연방은행 총재의 강연이었다. 투자 전문가들인 청중이 서로 질문할 기회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증시의 관심이 온통 물가와 미 중앙은행(Fed) 행보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로젠그렌 전 총재는 “Fed는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지 않고 연내 두 번에 걸쳐 총 125bp(1bp=0.01%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거비 상승이 끈질긴 물가 주범

예상과 다른 물가 상승세에 Fed 내 통화 정책 위원들도 적잖이 놀라고 있다는 게 로젠그렌 전 총재의 전언이다.

그는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조금 떨어지고 있으나 전반적인 물가는 좀처럼 둔화하지 않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주거비용”이라고 말했다. 주택 임차료의 경우 계약 기간이 갱신되는 1~2년마다 시세 변화를 반영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주거비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32.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로젠그렌 전 총재는 “지난 8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8.3% 뛰었고, 에너지와 식료품을 뺀 근원 물가도 6.3% 상승했다”며 “이런 수준의 상승세가 지속되면 저소득 및 중산층이 가장 타격을 받기 때문에 Fed가 공격적인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로젠그렌 전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원하는 수준으로 낮추는 게 정말 쉽지 않다”며 “지금은 정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물가 상승률이 다시 한 번 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용 둔화 없으면 물가 못 낮춰”

로젠그렌 전 총재는 “미국 실업률이 Fed의 장기 전망치인 4.0%를 오랫동안 밑돌아 왔다”며 “특히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대거 사라졌던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건비 수준을 보여주는 고용비용지수(ECI) 상승률은 5.3%를 찍고 있다”며 “소비자물가를 감안하면 근로자들이 실제로는 매달 3%포인트가량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너무 빨리 뛰고 있어 임금이 오르더라도 실질 소득은 되레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로젠그렌 전 총재는 “과열된 노동 시장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게 Fed의 기본 생각”이라며 “실업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내세우진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가를 잡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Fed가 내년 실업률 전망치를 6월 3.9%에서 지난달 4.4%로 확 높인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Fed가 올 들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고 있으나 노동 시장이 별 타격을 받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로젠그렌 전 총재는 “고용 시장 둔화야말로 물가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심각한 침체 닥칠 가능성도

Fed 내부 사정에 정통한 로젠그렌 전 총재는 Fed를 비판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에는 너무 낮았던 인플레이션을 2%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였는데 달성하지 못했다”며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는 지금 역시 정책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로젠그렌 전 총재는 “Fed가 예상하는 내년 4.4% 정도의 실업률 수준으로는 물가를 잡는 게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5%는 넘어야 Fed가 원하는 인플레이션 경로를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젠그렌 전 총재는 “Fed가 통화 정책 회의를 거듭할수록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전망치를 계속 높이는 것도 현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도 중앙은행이 긴축에 나설 때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도출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으로선 완만한 침체를 예상하고 있으나 심각한 불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에릭 로젠그렌

1985년부터 37년간 보스턴연방은행에서 근무하며 통화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2007년부터 작년 말까지 14년동안 보스턴연은 총재를 맡았다. 현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방문교수를 하고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안상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