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의 상승 동력이던 기술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이 20년 만에 최악의 주가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다. 증시 패권이 기술주에서 가치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P500지수의 정보기술 섹터지수가 올 들어 7일까지 20% 하락했다. 2002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나쁜 성적이다.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14% 하락했다. 두 지수의 격차는 2004년 이후 18년 만의 최대다.
"수직낙하한 기술株…아직 저점 아니다"
자금 유출에도 속도가 붙었다. 모닝스타다이렉트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기술주 중심의 뮤추얼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서는 약 76억달러(약 9조5400억원)가 빠졌다. 수년간 뉴욕증시의 주인공이었던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의 주가도 올 들어 급락했다.

지난 10년간 기술주는 미국 증시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클라우드 컴퓨팅, 소프트웨어, 소셜미디어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최첨단 기술들을 선보였고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이 초저금리 정책을 펼친 것도 공격적인 투자를 자극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020~2022년 사이 90%가량 올랐고 ‘기술주 불패 신화’는 투자자들에게 믿음이 됐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국채 금리가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고 채권 가격은 하락했다. 한때 월스트리트를 달구던 옵션거래와 특수목적인수회사(SPAC) 상장 붐은 사그라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 크게 올랐던 암호화폐 열풍도 죽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시사하자 투자 열기가 가라앉는 모양새다.

10년간 시장을 지배해 온 기술주가 가치주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엑슨모빌, 코카콜라, 알트리아 같은 전통적인 가치주들이 반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WSJ는 “실적과 재무제표에 비해 가격이 싼 가치주를 찾은 투자자들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며 “S&P500에서 상승한 섹터도 에너지와 유틸리티 부문뿐”이라고 했다.

크리스 코빙턴 AJO 비스타 대표는 “이런 현상은 시장 패권이 바뀌는 일”이라며 “기술주들이 지난 시절 이뤘던 성장세를 앞으로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보스턴머니매니저GMO의 벤 잉커 자산분배담당 공동 대표는 “거품이 꺼지면 주가는 단순히 적정 가치까지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며 “투자자와 시장의 관심이 아예 다른 쪽(가치주)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WSJ는 최근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기술주들이 아직 저점에 다다르지 않았다고 봤다. Fed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투자자들도 기술주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조사업체인 S3파트너스에 따르면 S&P500의 11개 업종 중 기술 업종에 가장 공매도가 많았다. 미국 기술주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유통 공룡’ 아마존은 공매도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