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방정부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토지사용권 매각 수익이 지난해 일부 지방에서 감소했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사용권 경매에 민간 기업들이 참여를 꺼리자 국유기업들이 나서면서 '숨겨진 채무'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4일 경제매체 차이신이 31개 성·시의 2021년 토지사용권 매각 현황을 분석한 결과 윈난성, 허베이성, 광둥성, 장시성, 푸젠성과 충칭직할시의 수익이 2020년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윈난성은 지난해 907억위안의 사용권 매각 수익을 거뒀다. 전년 대비 감소율이 35%로 가장 컸다. 허베이성은 11.2% 줄어든 2454억위안을 기록했다.

중국의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이며, 보통 지방정부가 70년 연한의 사용권을 경매 방식으로 매각한다. 성마다 편차가 크지만 평균적으로 연간 예산의 30%가량을 사용권 매각 수입으로 충당한다. 경제 발전이 더딘 지방일수록 사용권 매각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매각 수입이 줄어들면 재정이 열악한 지방이 타격을 더 크게 입는다.

웨카이증권은 토지사용권 경매가 부진하면 지방정부 재정이 악화되고, 이는 다시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인 지방정부융자기구(LGFV)의 부채 부담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LGFV는 지방정부의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인프라 사업에 투자한다. 그런데 LGFV의 채무는 지방정부 계정으로 잡히지 않아 중국의 대표적 '숨겨진 부채'로 지적된다.

중국 지방정부들은 올해 토지사용권 경매가 부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저장성, 칭하이성은 올해 예산 수입에서 토지사용권 매각 부문을 작년보다 낮췄다. 안휘성은 이 부문 예산 수입 증가율을 작년 13.2%에서 올해 3.9%로 내려잡았다. 하이난성, 윈난성, 허베이성은 작년보다는 늘렸지만 2020년보다는 줄였다. 랴오닝성과 나이멍구자치구, 하이난성은 지난해에도 토지사용권 예산 수입을 줄였다.

중국의 지난해 전체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은 8조7000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3.5% 늘었다. 이는 2012년과 2015년에 이어 역대 3번째로 낮은 증가율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부동산개발업의 비중은 25% 이상이다. 부동산개발업체가 토지사용권을 구매해서 대규모 주택단지를 조성해 판매하는 게 부동산개발업의 일반적 업태다. 부동산업체들은 은행 대출에 의존해서 토지사용권을 구입하는 게 보통이다. 지방정부 재정, 금융업, 건설업, 각종 자재 제조업 등이 부동산시장에 얽혀 있다.

중국 당국이 부동산 부문의 부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출 규제 정책을 내놓으면서 중대형 부동산개발업체 다수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민간 2위 헝다 등 대여섯 곳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부동산업체들의 위기설에 주택 소비자들의 심리가 악화되면서 업체들의 현금 흐름이 더욱 악화되고, 이는 다시 시장을 침체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항저우, 상하이, 선전 등 대도시는 토지사용권 경매에서 보증금을 내리거나 분할 지불을 허용하는 등 경매 활성화에 나섰다. 그럼에도 민간 업체들이 경매에 참여하지 않자 LGFV 등 국유기업들이 동원되고 있다. 지난해 11~12월 중국 21개 도시에서 시행된 경매 중 9개 도시의 경매에서 낙찰 물건의 절반 이상을 LGFV가 가져갔다.

웨카이증권은 톈진시 등 토지사용권 매각 의존도가 높고 부채비율도 높은 지역은 LGFV의 디폴트 우려가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저장성, 광둥성, 상하이시처럼 부채비율이 낮은 지역도 토지사용권 매각이 부진하면 인프라 투자가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진단이다. 윈난성, 랴오닝성, 나이멍구자치구, 칭하이 등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 발전이 뒤처진 지역은 재정난에 대응해 대규모 부채를 다시 일으킬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