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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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자국산 원유 가격에 상한을 두는 서방국 제재의 허점을 활용해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보도했다. 해당 규제의 적용 대상이 아닌 운임을 부풀려 받는 식으로 상한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많은 자금을 쓸어모으고 있다는 얘기다.

FT가 발틱해 연안의 러시아 항구에서 인도로 향하는 선박들의 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 7월까지 3개월간 러시아는 이런 방식을 통해 12억달러(약 1조6000억원)가량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운임 뻥튀기'로 돈 쓸어담는 러시아…"석달간 1조 벌었다"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호주 등은 지난해 12월부터 러시아산 원유에 배럴당 60달러의 가격 상한을 설정했다. 유가 급등 등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 러시아산 원유의 유통 자체는 막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원유 판매 수익이 전쟁 자금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는 매수인이 화물의 적재부터 인도까지 전 과정에서 일체의 비용과 위험 부담을 책임지는 본선인도조건(FOB) 가격을 기준으로 적용된다. 이 때문에 원유 자체의 값은 낮추면서도 운임을 늘려 판매 수익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방 국가들의 대대적인 제재가 단행된 이후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떠올랐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의 약 4분의 1을 사들이고 있다.
'운임 뻥튀기'로 돈 쓸어담는 러시아…"석달간 1조 벌었다"
실제 러시아 세관 기록을 보면 작년 12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인도로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는 러시아 항구에서 상한선 아래인 배럴당 평균 50달러에서 거래됐다. 그러나 인도 세관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인도가 실제 지불한 운임‧보험료포함조건(CIF) 가격은 배럴당 68달러에 달했다. ‘운임 꼼수’로 실제 배럴당 18달러의 초과 수익을 거둬 온 셈이다.

에너지 가격평가업체 아거스가 지난 2월부터 수집한 자료에서도 러시아 우랄산 원유는 발틱해보다 인도에서 평균 14.90달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거스가 추정한 실제 운임(평균 9달러)을 큰 폭으로 웃도는 수준이다. 두 지역 간 가격 차가 평균 17달러에 달했던 5~7월 러시아에서 인도로 1억800만배럴의 원유가 수출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운임 외 ‘바가지 운임’으로 러시아가 번 돈은 약 8억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인도 국영 석유회사의 한 관계자는 FT에 “인도의 수입업자들은 운송 비용이 포함된 가격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고 있으며, 화물 처리 방식이나 비용과 관련해 어떠한 협상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운임을 고려해도 국제 유가보다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간 국제 유가는 15% 뛰어 배럴당 85달러까지 올랐다.

러시아는 유조선 운영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부수입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재 데이터 분석 업체인 케이플러에 따르면 5~7월 인도로 원유를 운송한 선박 134척 중 23척이 보험이나 소유권, 경영권 등으로 러시아 기업들과 얽혀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 국영선사인 소브콤플로트의 자회사 선십매니지먼트의 관할이다. 이 회사는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유조선 운영을 통해 3억5000만달러(약 4659억원)가 넘는 수익을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트해에서 수출된 러시아산 원유의 약 40%가 러시아와 연관된 유조선에 실려 운송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학원(KSE)의 벤자민 힐젠스톡 경제학자는 “러시아가 유조선을 직접 소유하든 아니든 간에 러시아는 초과 운임은 상당 부분 러시아로 들어가고 있다”며 “러시아는 ‘운임 뻥튀기’라는 상한제의 구멍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수십억 달러를 빼돌릴 수 있었다. 이는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